애플이 중저가 세그먼트 시장을 노리고 내놓은 아이폰SE 언락폰(공기계)의 국내 출시가격이 미국 판매가보다 15만원 이상 비싸게 책정되자 국내 통신업계와 소비자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애플은 20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아이폰SE의 가격을 16GB 모델 399달러(약 45만원), 64GB 499달러(약 57만원)에 출시했지만 국내 애플 코리아는 16GB 59만원, 64GB 73만원에 내놨다.
환율 변동 폭과 유통 비용을 포함하더라도 평균 15만원이 더 비싸다. 이에 국내 소비자들은 애플과 이동통신사들의 꼼수가 빚어낸 가격정책 아니냐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원/달러 환율로 비교해보면 한국 출시가 16GB 59만원은 약 519달러, 64GB 73만원은 약 642달러로 미국 출시가보다 16GB 약 120달러, 64GB 약 143달러 더 비싸게 책정된 셈이다.
◇ 애플 아이폰SE 가격 15만원 더 비싸…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애플의 해외 가격정책 논란은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중국도 마찬가지다.
일본 애플 재팬의 경우 아이폰SE 출시가는 16GB 5만2800엔, 64GB 6만4800엔이다. 이를 원화로 환전하면 각각 약 54만7000원, 약 67만2000원이다. 나라마다 달러대비 환율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엔/달러 환율로 비교해보면 16GB 약 481달러, 64GB 약 590달러로 각각 82달러, 91달러 더 비싸다.
중국 애플 차이나의 경우 아이폰SE 출시가는 16GB 3288위안, 64GB 4088위안이다. 이를 원화로 환전하면 각각 약 57만6300원, 약 71만6500원이다. 역시 달러대비 환율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위안/달러 환율로 비교하면 16GB 약 507달러, 약 630달러로 각각 108달러, 131달러 더 비싸다.
유럽으로 건너가보자. 영국 애플 유나이티드킹덤(UK)의 경우 아이폰SE 출시가는 16GB 359파운드, 64GB 439파운드이다. 이를 원화로 환전하면 각각 약 58만4000원, 약 71만4300원이다. 파운드/달러 환율로 비교하면 16GB 약 514달러, 약 629달러로 각각 115달러, 약 130달러 더 비싸다.
단순히 비교하더라도 일본 출시가격이 가장 저렴하다. 이같은 변동 폭은 세계 경제와 묶여 움직이는 환율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환율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100달러 이상 가격 차이가 심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신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를 애플과 세계 각국의 이동통신사 간의 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자체적으로 언락폰을 출시하지만 대부분의 출하량은 세계 각국의 통신사들이 차지한다"며 "이통사들에게 출시가보다 저렴한 도매가로 넘겨도 수천만대를 팔기 때문에 애플이 거기에 더 주력한다. 이는 삼성이나 LG도 마찬가지고, 통신사들은 출시가보다 더 저렴한 가격 프로그램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애플, 언락폰 직판보다 통신사 대량판매가 이익…통신사도 반사이익
휴대폰 대리점 (사진=자료사진)
애플의 출시가는 소비자 가격 기준일뿐 이통사들이 넘겨받는 가격은 별도 책정되어 있고 이는 더 저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엔 마케팅 비용 등 부가적인 비용들이 더해지는데 그 중 공시지원금과 같은 경우 출시가보다 더 저렴하게 보일 수 있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된다.
즉 브랜드 신뢰도가 높은 애플이 본토인 미국 시장에서 가격을 저렴하게 내놓고 해외 시장에서는 각국 이동통신사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가격에 출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애매한 가격'으로 출시하고 이동통신사들이 다양한 가격 프로모션으로 고객을 유인하는 구조에 이미 소비자들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가격만 보면 통신사들이 반사이익을 취하는 형태다.
아이폰SE가 중저가 세그먼트 시장을 노리는 제품이기는 하지만 스펙은 아이폰6s와 견줄만한 수준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아이폰SE가 '특수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특별한 제품'이라고 한다.
한 IT 전문가는 "새롭게 출시된 아이폰SE는 특정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출시된 제품이지 결코 20-30만원대 저렴한 스마트폰을 사려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은 아니다"며 "제품의 스펙을 보면 외형적인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아이폰6나 6s를 그대로 이식한 제품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아이폰SE '중저가 폰'이 아냐…'4인치+프리미엄+저렴' 원하는 '특별한 소비자용'
아이폰SE의 스펙은 크기와 무게, 외형적인 특성을 제외하고는 아이폰6s와 성능이 흡사하다.
해외 IT 전문매체들도 아이폰SE가 미국에서 출시된 직후 사용후기를 게재하면 5s와 외형은 같지만 성능은 프리미엄폰 수준이라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데일리메일은 "아이폰SE에 6s와 동일한 A9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속도는 매우 빠르고 파워풀하다. 5s의 외형을 지녔지만 6s의 성능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고, 테크레이더(TechRadar)는 "아이폰의 생김새가 아이폰5s와 유사해 손에 쥐는 착용감이 매우 사랑스러웠다"며 "프리미엄 아이폰에서 볼 수 있는 정밀함과 성능을 아이폰SE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이폰SE의 배터리 수명이 기존 아이폰들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아이폰SE가 그동안 4인치의 폰을 사용했던 사람들에게 충분히 만족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매체들은 다만 아이폰SE에 이전 모델에 비해 혁신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과거 디자인을 그대로 고수하고 다른 제품과 차별화를 주는 요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제외하면 미국시장에서는 대체로 6s의 성능을 지닌 SE 가격이 399달러, 499달러로 책정된 데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경제수준, 공산품·전자제품 시장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
애플은 4인치 디스플레이를 원하지만 성능은 뒤떨어지지 않는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사이즈는 작고 단종된 제품(5s)의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성능은 최신형 6s를 이식한 상대적으로 저렴한 프리미엄폰이라는 컨셉을 유지한다. 마치 조금 더 싼 라인업은 있지만 품질과 가격, 브랜드 이미지는 최상, 하지만 갖고싶다면 넘볼 사람만 넘보라는 프라다(PRADA) 처럼.
4.7인치 디자인도 성능도 최신형이지만 가격은 높은 6s냐, 4인치 구형 사이즈지만 한 손에 잡히고 성능은 6s와 같은 최신형, 가격은 중간인 SE냐, 아니면 아예 다른 브랜드로 갈아 탈 지는 소비자의 몫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