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여년을 끌어온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것은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권이 두 쪽 나는 최악의 사태만은 피해야 한다는 고육책으로 보인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시장 직까지 걸고 배수의 진을 친 것이 말해주듯 밀양과 가덕도 중에 어느 한 쪽으로 결론이 났을 경우 그 후폭풍은 여권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김해공항 확장이란 차선책에도 불구하고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은 지역 민심을 달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상황이다.
정부의 발표 직후 새누리당 지상욱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제 신공항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과 갈등도 상생으로 승화해 김해공항이 세계 명품공항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란다”며 후폭풍 진화에 나섰다.
반면 야당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정부와 청와대의 책임론에 무게를 실었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지역 간 갈등의 최소화와 경제성 등을 고려한 선택”이라면서도 “정부가 눈치보기식 태도로 3~4년의 시간을 끌며 지역 갈등을 키운 꼴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경록 대변인의 경우는 “표에만 눈이 먼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행태 때문에 지역민심이 찢겨지는 등 국민들이 치러야 했던 비용과 사회적 부작용이 너무 크다”면서 정부·여당과 더민주를 싸잡아 비판했다.
당사자인 부산과 대구·경북 의원들은 ‘제로섬’의 파국은 면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신공항 유치 실패에 따른 지역 민심의 깊은 실망감을 의식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산 지역구인 새누리당 이진복 의원은 “미봉책이고 죽도 밥도 아니다”고 했다. 하태경 의원은 “과거에 김해는 안 된다고 했던 정부 결정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라며 “이런 결정을 할 거면 지금까지 뭐 하러 지역갈등을 부추겼나”고 불만을 나타냈다.
새누리당 원내 수석부대표인 김도읍 의원은 “김해공항은 지금도 소음 피해가 심한 상태”라며 “김해공항을 확장하면 피해 주민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그러면 24시간 운항을 하지 못해 국제공항으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21일 신공항 백지화 발표에 남부권 신공항 범시도민 추진위원회 강주열 위원장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권소영 기자/대구CBS)
대구·경북의 반발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윤재옥 의원은 “결과에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용역 결과를 찬찬히 뜯어보고 결과에 실망한 대구 경북 시도민들의 염원을 어떻게 수습할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대구 지역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은 “김해공항 확장 결정이 매우 실망스러울 뿐 아니라, 부산 정치권이 터무니없이 정쟁으로 몰고 간 데 대해 부산의 대오각성을 요구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영남권 신공항 무산 책임론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야당 의원들은 반발 강도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김영춘, 박재호, 최인호, 전재수, 김해영 의원 등 부산지역 더민주 의원들은 신공항 백지화와 김해공장 확장에 대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방침을 천명했다.
대구 지역 더민주 김부겸 의원은 “또 한 번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대단히 유감스럽다”면서 “신공항은 유일한 남부권 경제 회생의 혈로이자 활로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경남 창원이 지역구인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의 경우 “냉철하고 현명한 판단이다. 무엇보다 무안,양양,김제,울진공항의 전철을 밟지 않게 되어 천만다행”이라고 밝히는 등 갈등 종식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김세연 의원은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보지는 않지만 지역갈등이 심하게 표출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김해 확장안을 발표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2대 정권에 걸쳐 대선 공약으로까지 거론하며 부풀려온 기대가 일순 허탈한 실망감으로 바뀐 데 따른 파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온 산을 뒤흔들며 요란법석을 떤 결과가 고작 쥐 한 마리(태산명동서일필)였다는 점에서 밀양과 가덕도를 중심으로 한 영남의 민심 이반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