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Pi가 제시한 김해공항 확장안. 기존의 활주로에서 서쪽으로 40도 가량 기울어진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해 V자 공항으로 만드는 방안이다. (자료=ADPi 제공)
결국 김해공항을 V자로 늘려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으로 결판이 났다. 그동안 지역이 밀양과 가덕도로 갈려 극도의 갈등을 빚었던 점을 감안하면, 김해공항 확장안은 실현가능성을 감안했을 때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 밀양 vs 가덕...끝 모를 치킨게임
“인천공항은 너무 멀다” 대구, 경북과 부산, 울산, 경남 등 영남권 5개 지자체는 인천공항까지 가지 않고도 국내선과 국제선을 원활히 이용할 수 있는 대형 공항을 원했다. 여기까지는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2011년 3월 백지화됐던 ‘동남권 신공항’은 결국 이듬해 11월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대선공약에서 ‘영남권 신공항’으로 부활하기에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6월 파리공항엔지니어링의 최종 후보지 선정작업까지 시작되면서, 영남권 신공항 건설계획은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공항을 어디에 건설할 것인가를 놓고 또다시 밀양과 가덕도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유치경쟁을 자제하기로 한 합의는 휴지조각이 되고, 끝 모를 치킨 게임이 시작됐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가덕도 신공항이 무산되면 시장직을 던지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용역 결과가 임박해서는 “가덕도가 탈락한다면 시장으로서 갖고 있는 모든 권한과 책임을 다해서 잘못된 결과를 반드시 바로잡겠다”며 불복 의사를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대구와 경남북 지역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남부권신공항 범시도민추진위원회’도 결의문 등을 통해 밀양 신공항을 전제로 "백지화나 연기, 제3안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불을 놨다.
여기에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밀양이나 가덕도 어느 곳이 되더라도 민심이 폭발하며 메가톤급 후폭풍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갑자기 튀어나온’ 김해공항 확장안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용역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장 마리 슈발리에 ADPi 수석연구원. 장규석 기자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김해공항 확장안이 그야말로 갑자기 튀어나왔다. 사전타당성 조사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21일 용역결과를 발표하면서 밀양도 가덕도도 아닌 김해공항의 손을 들어줬다.
용역책임자인 슈발리에 ADPi 수석연구원은 “김해공항 확장안은 기존의 시설과 교통을 활용할 수 있고, 비용이나 실현가능성 측면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김해공항 지역을 영남권 신공항 입지로 추천한다”고 말했다.
ADPi가 제시한 김해공항 확장안은 김해공항 외곽 서쪽에 3200미터 길이의 새로운 활주로 1본과 터미널 1개를 새로 건설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김해공항은 연간 3800만명 규모의 대형 공항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김해공항 확장에 들어가는 건설비는 37억8700만 달러(약 4조2천억원)로 추산됐다. 반면 비슷한 규모(연간 4000만명)로 활주로 2개짜리 밀양공항을 건설하는데는 52억9200 달러(약 5조8천억원), 가덕도는 활주로를 1개짜리만 건설해도 매립비용 때문에 67억9400만 달러(7조5천억원)가 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슈발리에 수석연구원은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지역간 갈등 문제를 잘 알고 있고, 신공항 입지를 평가할 때 공항 건설과정에서 법적, 정치적으로 어떤 애로사항이 있을지를 판단했다”는 것.
ADPi는 밀양과 가덕도, 김해공항 세 곳의 후보지에 대해 기준 시나리오와 함께 A, B, C 세 개의 별도 시나리오를 두고 평가를 진행했다.
ADPi가 시나리오별로 매긴 각 후보지별 점수. 김해공항이 모든 시나리오에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정치적 요인에 가중치를 둔 시나리오 C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자료=ADPi 제공)
김해공항은 모든 시나리오에서 가장 점수가 높았지만, 특히 시나리오C에서 1000점 만점에 832점으로 최고점을 받았다. 2위인 밀양(활주로 2본짜리)이 710점을 받은 것에 비해 점수가 120점 이상 월등히 높았다.
시나리오C는 법적/정치적 도전(legal/polotical challenges)이 포함된 위험성과 실행가능성(Risk&Deliverability)에 큰 가중치를 두고 있다. 결국 정치적 논란을 피해 실제로 건설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안이 김해공항 확장안이었다는 것이다.
밀양과 가덕도 어느 곳으로 결정되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상황에서 김해공항 확장안은 사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ADPi의 결론이다.
◇ 이스탄불 공항 닮은 V자 ‘김해 신공항’..A380도 이착륙 가능 ADPi가 제안한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해 국토부 서훈택 항공정책실장은 “사실상 김해공항 옆에 새로운 공항을 짓는 김해 신공항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해공항 서쪽 외곽지에 14-32 방향의 3200미터 길이 활주로를 새로 건설하고, 여기에 관제탑과 주기장, 터미널 등도 모두 새로 들어서게 된다. 기존 터미널은 국내선으로만 활용하고 새로운 터미널과 활주로는 국제선 전용으로 쓴다는 계획이다.
이용객으로 붐비는 김해공항 출국장. 기존 출국장은 국내선 전용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사진=부산CBS 송호재 기자)
슈발리에 수석연구원도 “3200미터 길이의 활주로는 보잉787이나 에어버스380 등 장거리 초대형 여객기도 이착륙이 가능하다”며 “90%이상 새로운 공항을 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기존 활주로가 북쪽에 있는 신어산이나 돗대산 때문에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과 달리, 새로운 활주로는 안전성 문제도 해결했다는 설명이다.
서 실장은 “40도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활주로를 신설하게 되면, 김해공항의 가장 큰 안전 문제인 북쪽 돗대산과 신어산으로 착륙하는 절차가 없어지기 때문에 안전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김해공항의 V자 활주로와 비슷한 곳이 현재 터키 이스탄불의 아타투르크 공항이다. 슈발리에 수석연구원은 “이스탄불 아타투르크 공항과 비슷한 형태”라며 “한쪽 방향으로만 활주로를 사용하면 추가로 소음에 노출되는 가구도 1000가구 미만으로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 김해공항 확장, 그 전에는 왜 생각 못했나 그러나 의문점은 남는다. 왜 국토교통부가 진작에 김해공항 확장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지역갈등을 부추겼느냐 하는 점이다. 실제로 2011년 동남권 신공항 용역에서는 김해공항 확장안이 아예 검토 대상에서 제외됐다.
서훈택 실장은 “당시에도 김해공항 활주로를 X자로 확장하는 안 등이 검토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그 당시에는 왜 이런 생각(V자 활주로)을 못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획재정부와 국토부, 국방부, 미래부, 환경부, 국무조정실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22일 오전 영남권 신공항 후속조치를 위한 관계장관회의를 열 예정이다.
김해공항 확장안은 내년쯤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기본계획과 실시설계, 토지보상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실제 착공까지는 적어도 3~4년의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또 접근교통망을 확충하기 위해 동대구와 김해공항을 환승없이 직결하는 지선을 신설해 대구에서 김해공항까지 소요시간을 1시간 15분으로 줄일 계획이다. 아울러 대구 부산고속도로와 남해 제2고속 지선에서 국제선 터미널로 직결되는 연결도로도 신설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