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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북' 등재 욕심내다 고물 전락한 예술품

문화 일반

    '기네스북' 등재 욕심내다 고물 전락한 예술품

    • 2016-06-22 11:17
    지자체 치적쌓기에 수억원씩 쏟아 붓고 얼마 못가 폐기 처분
    쓸모없는데 해마다 관리비 들여 유지하느라 골머리 앓기도

    고철신세된 초대형 가마솥 (사진=연합뉴스)

     

    충북 괴산군 고추유통센터 광장에는 어마어마한 가마솥이 있다.

    지름이 5.68m이고 높이 2.2m, 둘레 17.8m, 두께 7㎝에 달한다. 가마솥 제작에 무려 43.5t의 주철이 들어갔다.

    괴산군이 2005년 세계 최대 조리기구를 만들겠다며 5억1천만원을 쏟아부어 제작한 것이다. 당시 수천 명의 밥을 한번에 지을 수 있다며 성금 모금과 고철 모으기 군민 운동까지 벌였다.

    그러나 정작 솥이 너무 커 밥을 지을 수 없었다. 게다가 호주의 질그릇이 이 가마솥보다 더 큰 것을 확인돼 기네스북 등재마저 실패했다.

    그동안 이 가마솥은 이 지역 특산품인 '대학 찰옥수수'를 삶는 이벤트를 하는데 몇 차례 동원된 것이 고작이다.

    가마솥을 만든지 11년째를 맞는 올해도 뾰족한 활용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쓸모는 없지만 유지·관리는 해야 하는 탓에 해마다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붓는 것이 더욱 곤욕이다. 올해도 가마솥에 녹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유지·관리 예산으로 500여만원을 세워 놓았다.

    제작 당시부터 군수 치적 쌓기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괴산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도 고추유통센터 광장에 걸려 있는 이 가마솥은 역설적으로 성과 내기에 급급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위정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상징이 됐다.

    '세계 최고'라는 과시용 사업에 예산을 쏟아붓고, 기네스북에 등재해 공적(功績)으로 내세우지만, 아무 쓸모 없는 애물단지가 돼 아까운 혈세만 탕진한 사례가 빈번하다.
    청주시도 지난해 9월 국제공예비엔날레를 개최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CD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시민들으로부터 수집한 48만9천여장의 폐 CD로 행사장인 옛 연초제조창 외벽 3면(가로 180m, 세로 30m)을 장식한 'CD 파사드'를 제작했다.

    3억7천만원의 비용이 들어갔고, 제작 기간도 4개월이 걸렸다.

    63빌딩을 눕혀 놓은 것과 맞먹는 크기의 이 작품은 'CD 활용 최대 설치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행사 기간에 이 작품은 수십만 장의 CD가 햇빛에 반사, 빛의 향연으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킬러 콘텐츠'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행사를 마친 뒤 문제가 불거졌다. 작품을 유지·보수하는데 연간 1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데다 안전상의 문제까지 제기됐다.

    결국, 이 작품에 사용된 CD 30여만장은 재활용 폐기물로 처리되는 운명을 맞았다. 남은 CD로 옛 연초제조창 내 문화산업진흥재단 외벽에 비슷한 시설물을 만들었다.

    이마저도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 1년 이상 유치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동군은 2010년 2억3천만원을 들여 지름 5.54m, 지름 6.4m, 너비 5.96m, 무게 7t의 초대형 북을 만들었다.

    이듬해 세계에서 가장 큰 북으로 인증을 받는 데 성공했지만, 보관시설이 없어 임시보관소에서 4년간 방치됐다.

    그나마 2015년 영동군이 지은 국악 체험촌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세계 최고'를 욕심내다 낭패를 본 것은 충북뿐이 아니다.

    2009년 부산 자갈치 축제 때 길이 5m 너비 3.5m로 제작된 초대형 회 접시는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그러나 곧 용도 폐기되는 찬밥 신세가 됐다.

    축제가 2011년부터 초대형 회 비빔밥을 만드는 이벤트로 바뀌면서 이 접시는 쓸모없게 됐다.

    대구 수성구에서는 2012년 '수성 페스티벌'의 부대행사로 1천20m의 김밥이 제작됐다. 국내 최장 김밥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나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다.

    지난해 전남 고흥군이 '거금도(島) 시(示) 락(樂) 대축제' 때 1천344m의 김밥을 만들면서 대구에서 만든 김밥은 국내 최장이라는 '타이틀'까지 내줬다.

    2009년 충남 태안군 이원면에 2.7㎞로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했던 '희망 벽화'는 7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페인트가 바래고, 그림도 희미해졌다.

    당시 기네스북 등재 추진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몰렸으나 지금은 발길이 거의 끊긴 상태다.

    충청대 남기헌(행정학과) 교수는 "자치단체장들이 순간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충분한 검토 없이 세계 최고 이벤트를 졸속적으로 벌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남 교수는 "자치단체장이야 임기가 끝나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제작비 낭비는 물론 두고두고 유지·운영비가 부담이 되는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며 "지방의회와 시민단체가 치적 과시용 전시행정을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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