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휴직 후 잠적한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의 거취에 대해 "후임자를 한국이 다시 맡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사퇴 수순을 밟고 있다고 인정했다.
유 부총리는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AIIB가 후임자를 새로 뽑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후임자를 한국이 다시 맡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혀 홍 부총재의 후임 문제를 검토 중임을 시인했다.
앞서 홍 부총재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AIIB 연차총회 총회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 27일부터 6개월 간 휴직 처리됐다.
당시 AIIB 총회에 불참했던 홍 부총재는 현재 중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에 귀국했는지 혹은 제3국으로 향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어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에 따라 홍 부총재의 '사퇴설'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6개월의 장기 휴직이 받아들여진 상태에서 AIIB 같은 국제기구의 경우 중요 직책을 장기간 공석으로 둘 수 없기 때문에 홍 부총재가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홍 부총재의 돌출 행보는 대우조선해양 부실에 대한 책임에 관한 언론 인터뷰부터 시작됐다. 홍 부총재는 지난 8일 베이징에서 한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대우조선 지원은 (지난해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결정한 행위로, 산업은행은 들러리만 섰다"고 폭로했다.
이로 인해 홍 부총재가 '팽'당하면서 사퇴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관측이 가장 먼저 제기된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대우조선 사태의 책임을 미루면서 홍 부총재가 청와대와 정부로부터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탄생시킨 AIIB 입장에서도 홍 부총재를 반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자국 내에서 물의를 빚고 AIIB 사상 첫 연차회의부터 불참한 무례한 행보를 벌인 홍 부총재를 그대로 두기에는 AIIB로서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감사원 감사 결과 산업은행의 재무상태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아 검찰 수사까지 앞둔 홍 부총재가 AIIB의 리스크 담당 부총재직을 수행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다.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이와 함께 홍 부총재가 '자진사퇴'를 준비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홍 부총재로서는 '산업은행 들러리' 발언 이후 감사 결과가 폭로되고 검찰 수사까지 준비해야 할 형편에 이르자 자신에게 제기되는 '책임론'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해 여권핵심부가 대우조선 부실의 책임을 홍기택 부총재에게 물리고 사안을 매듭지으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홍 부총재가 실제로 사퇴할 경우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 부총리는 한국인 후임자를 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재차 한국인 부총재를 세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37억달러(약 4조 3200억원)의 AIIB 분담금을 내서 3.81% 지분율로 중국·인도·러시아·독일에 이어 5위에 머물러있다.
지분율로만 따지면 5명의 부총재 중 1명의 자리를 아슬아슬하게 받아낼 수 있지만, 홍 부총재가 실제로 사퇴할 경우 한국이 AIIB 내에서도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견제를 이겨내고 홍 부총재의 후임을 한국인이 맡을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한다.
한국 정부가 상당한 투자와 노력끝에 국제기구 고위직 자리를 얻고도 홍 부총재 사태를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해 어이없이 자리를 잃게될 경우 상당한 비판을 감수해야할 처지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