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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안부 합의 6개월···"하여(何如) → 여하(如何)로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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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위안부 합의 6개월···"하여(何如) → 여하(如何)로 바뀌어야"

    (사진=자료사진/설민석 페이스북 캡처)

     

    톡톡 튀는 시각으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설민석은 요즘 대세인 '스타 강사'다.

    그가 최근 '하여(何如)'와 '여하(如何)'의 속뜻을 해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에 따르면 직역(直譯)이 아닌 의역(意譯)으로 '하여(何如)'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으니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뜻이다. 반면에 '여하(如何)'는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는 의미다.

    결론은 지도자는 국민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열심히 듣는 '경청(傾聽)'을 잘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여(何如)'가 아닌 '여하(如何)'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하여(何如)'가 불통(不通)의 일방향이라면 '여하(如何)'는 소통(疏通)의 쌍방향인 셈이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정부간에 체결된 위안부 합의도 '하여(何如)'와 '여하(如何)'에 적용해보면 문제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합의 6개월이 지났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민들은 합의내용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한국내 반발기류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원인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여하(如何)'라고 물어보지 않은 때문이다.

    '여하(如何)'의 핵심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것은 또한 다름 아닌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며 '하여(何如)'를 고수하면서 피해자 지원재단 준비위원회를 무리하게 출범시키는 등 합의사항 이행만을 서두르고 있다.

    급기야 이준규 주일 대사 내정자는 지난달 29일 "올 하반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며, 비밀사항인 대통령의 해외방문 일정까지 공개하는 경솔함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 국가기관센터장이 사석에서 '천황폐하만세'를 삼창했다는 의혹마저 불거졌는데 이 정도면….

    박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인데, 박 대통령의 방일이 성사되면 이는 취임 후 첫 일본 방문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외교적 이벤트다.

    왜냐하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해결이 일본 방문의 전제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23차례나 해외 순방에 나섰지만 가깝고도 먼 일본은 단 한 차례도 찾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임기 말에 접어든 박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면 지난해 12.28 합의가 명분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문제는 12.28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한국내 반대 분위기다. 한일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제1237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집회의 명칭 자체부터『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다. 1992년 1월부터 시작돼 올해로 25년째를 맞는 집회다.

    양국 정부의 주장대로 12.28 합의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면 열릴 이유가 없는 집회다. 이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 무효와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를 거듭 촉구했다.

    (사진=온라인 화면 캡처)

     

    특히 집회에 함께 한 이용수, 길원옥, 김복동 할머니에게 한 민간업체가 모은 2억4000만원의 정의기억재단 설립기금이 전달되기도 했다.

    '재단법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은 한국정부가 주도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재단(화해와 치유의 재단)에 10억엔을 지원하겠다는 일본정부에 반발해 일반시민 10만여명이 참여해 기금을 모아 재단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또 지난달 29일에는 서울 남산 옛 통감관저 터에서 오는 8월 15일 광복절 개장을 목표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원인 '기억의 터' 기공식이 열렸다. 통감관저 터는 '경술국치(庚戌國恥)'인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와 국민 사이의 커다란 입장차이 속에 자칫 이 문제가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오점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뀄으면 두 번 째 단추를 꿸 것이 아니라 빨리 풀어야 한다.

    2007년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우도 오바마 행정부의 거듭된 요구로 결국 추가협상이 아닌 재협상이 이뤄졌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수식어는 박근혜 정부의 족쇄가 될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하여(何如)'가 아닌 '여하(如何)'로 위안부 문제를 다시 풀어야 한다. 12.28 합의 6개월이 지났지만 정부는 시계 바늘을 다시 돌려 피해 할머니들의 한 맺힌 절규와 소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 모 할머니가 지난달 22일 별세하면서 올해 들어서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다섯 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1명(국내 39명·국외 2명)이다.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한다. 차갑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 평화의 소녀상에 흘러 내리는 빗물이 눈물이 아니었으면 싶다.

    몇 년 전 비오는 어느날 소녀상에 우산을 받쳐 주는 사진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던 경찰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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