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미국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한 공식 지지를 선언했다. 무소속 샌더스 의원이 지난해 4월말 민주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지 441일 만이다.
초반 돌풍을 일으키다 지난 3월 1일 수퍼화요일을 계기로 돌풍의 위력이 감소했고 지난달 초 클린턴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수 '매직넘버'인 2383명의 대의원을 확보하면서 경선은 사실상 마무리 됐다.
그렇지만 샌더스는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선언했고 5주가 지나서야 클린턴에 대한 공식지지를 선언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버니 샌더스 왜 이리 늦게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을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버니 샌더스, 힐러리 클린턴 (사진=공식 홈페이지 캡처)
▶ 공식지지선언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그렇다. 샌더스 의원이 미국 민주당 대선경선에 참가를 선언한지 441일만이고 클린턴 후보가 '매직넘버'를 달성하고도 35일이 지나서야 공식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샌더스는 13일(미국 현지시간 12일) 클린턴 전 장관과 처음으로 공동 유세를 하면서 "클린턴 전 장관이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샌더스는 "나는 오늘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을 지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나는 그가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제 우리는 한편이 돼 이번 선거가 더욱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를 무찔러 11월 대선에서 승리하고 우리 모두가 믿을 수 있는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힘을 합칠 것"이라고 화답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이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버니 샌더스 (사진=버니 샌더스 페이스북 캡처)
▶ 샌더스의 클린턴 지지가 얼마나 늦어진 거냐?= 상당히 많이 늦었다. 클린턴 진영의 애를 많이 태운 것이다. 8년전 2008년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가 대선후보 경선을 벌였다. 당시에도 초접전을 벌였는데 힐러리는 6월 초순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면서 경선을 포기했다. 샌더스는 당시 힐러리보다 한 달 이상 경선을 이어간 것이다.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지난 5월 3일 2위를 달리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인디애나주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참패한 뒤 경선 포기를 선언하면서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공화당 후보에 비해 두 달 이상 늦어진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사진=자료사진)
힐러리 클린턴은 지난 3월 1일 슈퍼화요일 경선에서 승리한데 이어 3월 15일 미니슈퍼화요일 경선에서 압승하면서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예약했다. 특히 샌더스가 전력을 기울였던 오하이오와 일리노이 등 중서부 '러스트 벨트(낙후한 공업지대)'에서도 승리를 거두면서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샌더스는 애리조나주 연설에서 "억만장자들이 금권 선거로 미국 민주주의를 흔드는 것을 결코 보고 싶지 않다. 7월 전당대회까지 경선을 완주하겠다"며 빈부격차 해소, 월가 개혁 등 그의 개혁 의제를 끝까지 놓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6월 5일과 6일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와 버진 아일랜드 경선에서 승리하고 수퍼 대의원들이 잇따라 지지를 선언하면서 경선 과정에서 확보한 대의원 1812명과 수퍼 대의원 571명을 합쳐 대의원 과반수를 넘기는 '매직넘버'를 달성했다.
그러나 버니 샌더스는 6월 7일 캘리포니아 주에서 한 연설을 통해 "우리는 다음 주 화요일(14일) 마지막 경선지인 워싱턴 D.C.의 프라이머리(예비투표)에서 싸움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그 다음에 사회, 경제, 인종, 환경 정의를 위한 우리의 싸움을 필라델피아로 가져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선포기가 아닌 완주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공식지지 선언이 늦어진 것이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 샌더스는 왜 이렇게 늦게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거냐?= 첫 번째는 보수적 성향인 힐러리 클린턴의 공약을 진보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이었다.
미국에서는 샌더스의 행보를 두고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샌더스가 2015년 4월29일 출마를 선언하면서 "힐러리 클린턴의 정책을 조금이라도 진보적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으니까 절반의 성공이 아니라 출마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진=버니 샌더스 페이스북 캡처)
샌더스는 전 국민 건강보험과 공립대 무상교육 등 급진 좌파들이나 주장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진보적 의제들을 미국 정치의 한가운데로 옮겨놨다. 그래서 "(후보)지명은 클린턴이 되겠지만, 토론은 샌더스가 이겼다"거나 "샌더스는 민주당이 근본적인 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클린턴은 샌더스의 최저임금 15달러 주장 등을 수용한 데 이어 공립대 등록금 면제 정책도 받아들였다. 클린턴은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출마한 2000년 및 대선 후보에 처음 도전했던 2008년과 비교해 확실히 중도에서 진보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두 번째는 보수적이던 미국 민주당의 정강정책을 진보적으로 변모시켰다. '정치혁명'의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샌더스가 경선 완주를 선언하고 끝까지 버티면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 뿐만아니라 민주당도 변화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지난 1일 역대 가장 진보적인 강령을 발표했다. 대부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주요 공약을 민주당 공식 정책으로 상당 부분 반영한 것이다.
최저임금 시급 15달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현행 7.25달러인 최저임금은 사실상 '기아임금' 수준에 불과하며 이를 주거와 교육 문화생활 등에 필요한 비용을 고려한 '생활임금'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명시한 부분이다. 이어서 "미국인은 시간당 15달러의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고, 누구나 노조를 결성하거나 가입할 권리를 갖는다"라고 명시했다.
샌더스 진영은 민주당 사상 가장 진보적이라는 정강 채택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샌더스 캠프관계자는 "샌더스의 공약 80% 정도는 관철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샌더스 키즈'들에게 희망을 주고 샌더스 지지층을 정치세력화 하기 위한 과정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버니 샌더스는 지난 6월 16일 지지자들에게 한 온라인 연설에서 "아래로부터 이 나라를 바꿔달라"며 "캠페인 자원봉사자들이 각자 지역에서 교육위, 시·군·주의회, 주지사 등에 도전해달라"고 당부했다. 샌더스는 어떻게 하면 지방선거 공직 출마자가 될 수 있고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는지 자신의 선거 웹사이트에 소개해놓았다고 덧붙였다.
이 연설 하루만에 67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지방 공직선거 도전에 관심을 표명했다고 샌더스 캠프가 밝혔다. 직접 후보자로 나서지 않더라도 다른 샌더스 지지자가 출마하면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1만1000명에 달한다.
샌더스는 "사람들이 참여할 준비만 돼있으면, 우리 선거운동이 보여준 이러한 에너지와 열정으로 우리가 엄청난 수의 지방, 주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이것은 우리나라를 아래로부터 바꾸는 일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샌더스가 지난 6월 24일 뉴욕 연설에서 "정치 혁명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고 밝힌 것처럼, 도처에서 태동하고 있는 '버니크래츠'(Bernie+democrats)들은 샌더스가 한때의 '돌풍'이 아닌 많은 열매를 맺을 '밀알'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샌더스 지지를 밝힌 뒤 공직에 출마한 후보들을 소개하는 '버니크래츠 네트워크' 통계를 보면, 7월초 현재 상·하원 선거와 주지사 선거 등에 출마한 버니크래츠가 434명에 이른다.
특히 샌더스의 '풀뿌리 선거자금 모금' 모델은 버니크래츠들에게 현실 정치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샌더스는 큰손들이 주무르는 슈퍼팩에 의존해 선거를 치르는 민주당 경선 관례를 뒤집고 오로지 소액 정치후원금만으로 '27달러의 기적'을 일궈냈다. 샌더스는 740만명한테 평균 27달러(약 3만원)를 후원받아 2억1200만달러(약 2453억원) 이상을 모금했다.
1%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99%를 위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네 번째는 샌더스 지지층을 설득하기 위한 숙성과정을 거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다. 출마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러나는 것도 중요하다. 명분없이 물러난다면 샌더스 지지층이 클린턴 지지로 돌어설 가능성이 더 낮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초 힐러리 클린턴이 대의원 과반을 달성했을 때 샌더스가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면 어떻게 게 됐을까? 샌더스 지지층인 젊은이들이 클린턴 지지로 돌아 설 수 있었을까? 민주당 전권위원회가 역대 가장 진보적으로 평가되는 강령을 선택했을까?
지난 2012년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을 기억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후보진영이 화학적 결합을 하지 못하면서 안철수 후보 지지층이 이탈했고 결국 본선에서 패배했다.
클린턴 진영과 샌더스 진영은 지난달부터 마라톤 협상을 벌여왔다. 그래서 샌더스 지지를 끌어낸 '햄버거집 만찬'이 열렸고, 두 후보 클린턴과 샌더스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경선에서 샌더스가 위세를 떨친 지역을 중심으로 샌더스 지지자들을 회유하기 위한 노력으로 샌더스 측 대의원을 접촉했으며, 클린턴 캠프는 샌더스의 참모들을 받아들였다.
결정적인 장면은 민주당 정강정책위원회가 샌더스 공약의 상당 부분을 수용해 '좌클릭한 정강'을 채택하면서 샌더스에게 14개월의 경쟁을 접고 클린턴의 손을 들어줄 명분을 마련해준 것이다.
샌더스의 한마디로 지지자들이 모두 클린턴 쪽으로 돌아서기는 어렵겠지만 샌더스가 얼마나 진심으로 클린턴을 지원하느냐에 따라 시너지 효과가 달라질 것이다. 샌더스 지지층 일부에서는 배신감을 표하기도 하도 엄청난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자신의 후보가 사라진 지금 이번 대선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샌더스 의원이 연설에서 "우리의 목표는 공화당 트럼프를 쓰러트리는 것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그 목표를 위한 역할을 다하게 된다"며 지지층에게 클린턴 지지를 호소했다. 클린턴은 샌더스의 슬로건인 '우리가 믿는 미래'란 표현까지 사용하며 화답했다.
오는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이기기 위해서는 샌더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수적이다. 샌더스의 돌풍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젊은이들을 선거로 끌어들여야 하고 99%를 위한 정치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