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뉴델리. 이동천 박사는 서명의 필체를 근거 삼아 이 작품을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천경자 화백 1주기 추모전에 가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동천 감정학 박사는 자신이 펴낸 '미술품 감정 비책'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현재 추모전에 전시 중인 천 화백의 작품 '뉴델리'가 명백한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1주기 추모전에는 천경자 화백이 서울국립중앙박물관에 직접 기증한 93점과 민간이 보유한 14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뉴델리'는 민간이 보유한 14점 중 하나다.
이동천 박사는 특이하게도 이 작품이 서명만 봐도 위작이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뉴' 자 중 아래로 뻗은 두 획을 서로 연결되듯이 쓴 천 화백과는 다르게 '뉴델리'의 '뉴'는 두 획 중 앞의 'l'획을 확연하게 왼쪽으로 삐쳤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서명에 '뉴' 자가 들어간 11점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일반인들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명에 무심했던 천 화백의 평소 습관과는 다르게 '뉴' '리' '子' 세 글자에 개칠(덫칠)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칠을 하게 되면 반드시 물감이 뭉친 흔적을 남기므로 누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다른 화가들이라면 개칠의 흔적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천 화백은 생전에 오자가 나도 서명을 고치지 않았고, 물감이 번져도 수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잘못 쓴 글자는 뭉개 버리기도 하고, 줄을 찍 긋기도 했다. 그런 천 화백이 개칠을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뉴델리'가 위작이라는 결정적 근거라 할 수 있다.
가짜서명과 그 아래 지워진 가짜 서명.
이동천 박사는 '뉴델리'가 위작이라는 결정적 근거로, 가짜 서명 아래 숨겨져 있던 또 다른 가짜 서명을 제시했다. 현재 '뉴델리'의 서명도 천 화백의 평소 서명 습관과 다르게 위조된 것이지만, 그 아래에서 발견된 서명은 더욱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박사가 제시한 '색 분해' 자료를 보면 '델'자 아래에서 현재의 '뉴'와 다른 '뉴' 자의 흔적이 보인다. 서명한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같은 위조자가 같은 장소에서 빨리 지우고 다시 서명한 흔적이라는 것이 이 박사의 주장이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천 화백도 서명을 다시 하긴 했지만, 그림을 고쳐 그리기 위함이었지 결코 잘못 쓴 서명을 지우기 위해 한 번 했던 서명을 지운 적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오로지 서명을 수정하려는 목적으로, 다시 서명을 한 뉴델리는 명백한 위작이라는 것이다.
이동천 박사가 21일 오전 대한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미술품 감정 비책' 출간기념 기자 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 외에도 이 박사가 제시한 위작의 증거는 더 있다. 천 화백은 독특하게도 붓이나 연필이 아닌 검정색이나 고동색 펜으로 채색화 작품의 밑그림 드로잉을 했다. 아무리 두텁게 채색을 해도 작품 속 어딘가에는 펜 드로잉 필선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뉴델리'에서는 펜으로 드로잉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울시립미술관은 '뉴델리' 작품 이력이 너무 확실하다고 밝혔다. 임선혜 전시과장은 "'뉴델리'에 대한 작품 이력 확인 절차를 거쳤고, 대여자가 작품보증서를 보내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임 과장은 "이 작품 대여자인 I화랑은 천 화백이 20년 간 거래해왔고, I화랑의 대표가 '이 작품은 천경자 화백으로부터 직접 받은 작품이다. 잠시 팔았다가 되사 오랜 기간 소장해왔다'는 얘기를 했다. 2008년 옥션 경매에도 나온 작품이이서 검증을 거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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