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애초 '사회간접자본(SOC)' 없는 추가경정 예산을 약속했던 정부가 명목만 바꿔 사실상의 SOC 사업을 편성하는 꼼수를 썼다.
22일 정부는 구조조정 및 대외불확실성에 따른 고용여건 위축 등에 대응하기 위해 총 11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편성해 오는 26일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추경안에 '명목상' SOC 예산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기재부는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SOC사업은 구조조정 직접연관성 부족 등을 감안하여 제외"했다고 명시했다.
또 참고자료로 제시된 추경예산 홍보8선에도 "SOC 없는 추경, 국채상환 있는 추경" 항목이 적혀있다.
하지만 실제 추경 예산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는 '생활밀착형 시설정비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의 SOC 예산을 편성, 약 1조원 가까이 쏟아붓기로 했다.
세부 항목을 살펴보면 정부는 하수관거와 농어촌마을 하수도를 각각 451억원과 115억원을 들여 정비하고, 국가·지방 노후저수지에는 351억원, 연안정비사업에는 45억원을 투입한다.
그동안 충분한 분석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증액하기에만 급급한 대규모 SOC 사업을 추경 편성의 빌미로 삼지 말고,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따른 경기부양책이라는 추경 목적에 충실하도록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미 수차례 제기돼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15일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엄청난 재원을 투입해 SOC 사업을 했는데 효과는 미미했다"며 "추경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기동민 더민주 원내대변인도 15일 대형 SOC 위주 추경 편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일단 편성하고 보자는 식의 정부의 안일한 현실인식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당도 추경 SOC 예산 편성에 반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지난 15일 "지역 간 편차가 우려되기 때문에 SOC 예산은 이번 추경 예산에 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추경으로 편성한 SOC 사업을 대부분 집행조차 하지 않아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국토부는 일반철도 건설 관련 12개 사업에 대해 6422억원을 증액받고 한국철도시설공단에 교부했지만, 사업을 집행하기는커녕 기존 예산까지 합해 8890억원을 2016년 예산으로 이월했다.
고속도로에서도 10개 사업에 대해 5266억원을 증액받았지만, 사업 시행자인 한국도로공사는 82%에 달하는 4341억 원을 집행하지 못했다.
결국 여야정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여야정 민생경제 현안점검회의를 갖고 이번 추경에서 SOC 사업 예산을 포함시키지 않기로 합의까지 했지만, 정부가 '꼼수'로 정치권과의 합의를 파기한 셈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 송언석 2차관은 "(하수관거 정비 사업 등은) 성격상 토목, 건설 공사에 해당되기 때문에 SOC 성격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국제기구에서 재정지출 분리 기준에 따라 국토부가 맡은 도로, 철도 등만 SOC로 인정한다"며 "환경부에서 하는 하수관거, 생태하천 사업이나 교육부의 국립대학 학교 건축 등은 SOC 성격이 다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SOC가 아닌 각 부처의 사업으로 분류한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