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의 심리 결과를 선고하기 위해 대심판정에 입정해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5년 전인 지난 2011년에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부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의(正義)에 대한 대중적 담론도 확산됐다.
당시 학자들은 정의라는 단어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이 대중을 끌어들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정의롭지 못하다는 역설이라고 지적했다.
이듬해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는 한국을 정의로운 사회로 이끌 수 있는 이른바 '김영란법' 제정안을 발표했다.
이후 '김영란법'은 몇 년에 걸쳐 위헌논란이 제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헌법재판소가 28일 마침내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고비를 넘기게 됐다.
이로써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은 앞으로 시행령 확정과 직종별 매뉴얼 마련 등의 후속 작업을 거친 뒤 오는 9월 28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공무원과 언론인, 사립학교 관계자 등 이 법에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가 대략 400만명으로 추산되는 만큼 국민 생활 전반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던져줄 전망이다.
'김영란법'을 포함해 모든 법은 정의(正義)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정의의 실현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무엇보다 평등과 형평에 기반한 공정성(公正性·fairness)이 담보돼야 한다. 더욱이 법률은 범죄의 예방과 처벌을 동시에 목적하고 있는 만큼 촘촘한 법조항과 명확한 기준이 수반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김영란법'도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를 통해 부정과 비리, 부패를 근절하고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우리 사회에는 1%도 안되는 소수 특권층의 부조리한 인식과 행태가 잇따르면서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사진=자료사진)
교육부 나향욱 전 국장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 진경준 검사장의 100억원대 주식 대박,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1천억원대 처가 부동산 매매 의혹 등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99% 보통사람들을 위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김영란법'이 헌재의 합헌 결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점이다.
특히 언론인을 법 적용대상에 포함시킨 점을 정당하다고 판단한 데 대해 자괴감과 함께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 견제하는 민간의 자율적 영역이다. 언론인들이 공익적 역할을 한다고 해서 공직자처럼 신분이 보장되는 직업도 아닌 것이다.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의 본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똑같은 잣대를 적용한 것은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어긋난다. 실제로 김창종, 조용호 재판관은 "과도한 국가 형벌권의 행사"라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공직(公職)은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의 직무를 뜻하고, 공익(公益)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의미한다.
헌재는 언론자유 침해 우려보다 공익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폈지만, 민주국가에서는 오히려 공익을 위해서라도 언론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부정과 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취지 아래 언론을 '잠재적 감시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검찰공화국의 표적수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김영란법'이 선출직 공무원인 국회의원에 대해 부정청탁 금지 관련 조항에서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점도 형평성에 위배된다.
이제 헌재의 합헌 결정에 따라 9월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의 개정 여부는 국회로 공이 넘어왔다. 현재 국회에는 '김영란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된 상태다.
'일단 문제가 있더라도 법을 시행한 뒤 추후 보완하자'는 현실론에 앞서 공정하지 못하고 반민주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만 국민 모두가 동의하는 100% 대한민국을 위한 '김영란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