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짧은 닷새간의 여름휴가를 29일로 마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전날 울산지역을 깜짝 방문한 박 대통령의 사진이 여섯 장 올라와 있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것이지만 대통령의 사진은 국민들에게 다양한 이미지를 공유하게 만든다.
청와대가 공개한 박 대통령의 여름휴가 사진은 권위주의와 불통(不通)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잠시나마 무색케 하는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대나무가 태화강을 따라 10리가 넘게(4.3㎞) 숲을 이룬 '십리대숲'에서 찍은 사진 석 장,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대왕비가 묻혀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대왕암에서 한 장, 울산 남구 봉월로 신정시장에서 상인들과 함박 웃음을 짓고 인사를 나누는 사진 두 장이다.
여기에 선글라스와 평소 매지 않던 크로스백, 흰 블라우스와 검정 치마의 편안한 차림, 그리고 돼지국밥 점심까지….
"고난을 벗삼는다"는 박 대통령일진데 굳이 '서민 코스프레'로 깎아내리고 싶진 않다.
박 대통령이 여름휴가 기간 청와대를 떠나기는 취임 첫 해인 2013년 7월 이후 처음이다. 3년 전 여름휴가지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휴가를 보냈던 경남 거제시 저도였다.
(사진=청와대 제공)
작년과 재작년에는 각각 메르스 사태와 세월로 참사 여파로 청와대 관저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그런데 3년 전이나 올해나 청와대가 공개한 대통령의 휴가 사진을 보면 대부분이 혼자 있는 모습들이다.
올해의 경우는 그나마 시장 상인들과 문화해설사가 등장하지만 나머지는 홀로 사색하거나 먼 곳을 응시하는 사진 일색이다.
각계 각층의 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사진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이제는 관심거리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되다시피 한 오바마의 사진은 미국민들이 대통령과 소통하는 체감거리를 단축시키는 데 기여했다.
물론 대통령이 혼자 있는 사진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통령의 휴가를 '고뇌에 찬 정국구상'의 기회로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마치 고독으로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그러나 고독이 자칫 고립의 이미지로 비춰질 수도 있다. 고독(孤獨. solitude)이 자율 의지의 선택이라면, 고립(孤立. isolation)은 자신으로부터 연유된 소외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휴가 기간동안 발표된 낮은 여론 지지율은 고독이 아닌 고립에 가깝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30.4%로 급락했고,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긍정평가가 31%에 불과했다.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지역에서도 하락 추세는 마찬가지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 사드 배치 논란, 친박 실세들의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 등이 엎치고 덮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임기 마지막 해인 오바마는 취임 초와 맞먹는 56%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강한 오리'라는 '마이티덕(mighty duck)'의 별명까지 얻었다. '임기말 권력누수'를 뜻하는 '레임덕(lame duck)'은 오바마에게는 남의 얘기다.
박 대통령이 올해 여름 휴가지로 찾았던 십리대숲은 '바람이 묻고 숲이 답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보이는 것은 곧게 뻗은 녹색 대나무 군락이고, 들리는 것은 댓잎을 타고 부는 바람 소리 뿐이라고들 하는 모양이다.
지도자의 덕목 가운데 하나는 민심을 헤아리는 경청(傾聽)이다. 이제 휴가를 마치고 공식 업무에 복귀하는 만큼 박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십리대숲 바람의 소리로 듣고 답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