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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팔도의 명산 유람, 방 안에 누워 감상하다

    신간 '조선 선비의 산수기행'

     

    '두류산 ― 4천 리를 뻗어 온 아름답고 웅혼한 기상'은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의 글 '유두류록'을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은 유몽인이 중앙관직을 사임하고 남원의 수령으로 내려가 있던 1611년 봄 두류산을 유람하고서 쓴 기행문이다. 두류산은 지리산을 말한다.

    "내 발자취가 미친 모든 곳의 높낮이를 차례로 매겨본다면 두류산이 우리나라 제일의 산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만일 인간 세상의 영화를 다 마다하고 영영 떠나서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다면 오직 이 두류산만이 은거하기에 좋을 것이다. 이제 돈과 곡식과 갑옷과 무기와 같은 세상 것들에 대해 깊이 알아 가는 것은 머리 허연 이 서생이 다룰 바는 아니리라. 조만간에 이 벼슬 끈을 풀어버리고 내가 생각한 애초의 일을 이룰 것이다. 만약에 물소리 조용하고 바람소리 한적한 곳에 작은 방 한 칸을 빌릴 수 있다면 어찌 고흥의 옛집에서만 나의 이 지리지(地理志)를 쓸 수 있겠는가!"

    신간 '조선 선비의 산수기행'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팔도의 명산 20곳을 유람한 기록이다. 산을 찾을 시간이 없는 독자들은 방 안에 누워 이 책을 읽으며 선비들이 보았던 나무, 숲, 계곡, 폭포를 쫓을 것이고, 어쩌면 이 책을 읽고 직접 산을 찾아가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물아일체의 경험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조선 선비들은 현대인의 등산과는 다른 목적으로 산과 물을 찾았고, 다른 기록을 남겼다. 건강을 목적으로 산을 오른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인들에게 조선 선비의 산수유람 기록은 매우 비생산적인 행위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글은 집 근처 가까운 산조차 찾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색다른 읽을거리와 인생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 더운 여름,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집에서 산을 유람하는 여유를 이 책을 통해 느껴보자.

    옛 시조에 “靑山도 절로절로 綠水도 절로절로 山 절로 水 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 中에 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 하리라”라고 한 바와 같이 선비들은 산수유람을 통해 자연의 도(道)를 깨닫고 자연과 더불어 늙어가려는 자연관을 드러냈다. 이것은 자연 그대로 관찰하여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내 몸을 자연에 의탁함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자연을 인간 속으로 끌어들여 관념화시키고 철학적인 자연을 읊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퇴계 이황 등 일군의 성리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선비가 자연을 그대로 따라 하나가 되는 것이나 선비가 자연에게 배워서 하나가 되는 것 둘 다 자연과 내가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같다고 하겠다.

    산과 물이 삶에서 더욱 멀어진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사고, 그리고 이들이 남긴 글은 무척 이질적이다. 그렇다고, 누워서 산과 물을 누리는 방법, 즉 와유(臥遊)의 방법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식 건물 안에서 수석을 수집하고, 화초를 키우고 완상하며, 멋진 산수화를 방에 걸어두고 감상한다. 여기에 한 가지 방법을 더 보태자. 옛사람의 글을 통해 갈 수 없는 아름다운 땅뿐만 아니라 개발 등을 통해 이미 사라져버린 산과 물까지 함께 즐겨 보는 건 어떠한가?

    조선 시대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고, 또 사회적, 신분적 제약 등으로 마음먹은 대로 산을 유람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금강산을 오르는 것이 평생소원이 될 정도로, 명산 유람은 소수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일이었다. 산수유기의 작자는 자연히 대부분 선비들이었고, 조선 중기 이후 문학 담당층이 확산되면서 여성의 산수유기가 있었지만 아주 드문 사례였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산수유람 기록은 매우 소중한 독서물이었고, 직접 가보지 못하는 대신 다른 이의 유람록을 읽으며, 사랑채에 누워서 팔도강산의 이름난 산수를 유람했던 것이다. ‘와유록“’(臥遊錄)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이 책의 저본은 정원림의 '동국산수기' 및 한국문집총간, 그리고 개인 문집의 산수유기 수작들이다. 정원림의 '동국산수기'는 당대 여러 문인들의 유산기를 모아 편집한 선집이다. 이 책의 편역자인 전송열, 허경진 선생은 우선 정원림의 책을 완역하고 여타의 산수유기를 좀 더 검토한 뒤, 수작 20편을 선정, 이 작품들을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산의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집필 시점을 기준으로 계절순으로 재배치했다. 각 편마다 말미에 작가 소개와 작품 해설을 수록했으며,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선 영조 때 제작된 '해동지도'를 도판으로 사용했다.

    '한라산 ― 말, 곡식, 부처, 사람을 닮은 산'은 최익현의 '유한라산기'를 번역하였다.

    "산세가 굽었다 펴지고 높았다 낮아지면서 마치 내리달리는듯한 것은 말과 비슷하고, 높은 바위와 층층의 절벽들이 빽빽하게 늘어서서 공손히 절하는 듯한 것은 부처와 같다. 평평하고 넓으며 멀리 흩어져 활짝 핀 듯한 것은 곡식과 닮았고, 북쪽을 향해 곱게 껴안은 듯한 수려한 자태는 꼭 사람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말은 동쪽에서 나고, 절은 남쪽에 모여 있으며, 곡식은 서쪽에서 자라기에 적절하고, 뛰어난 사람은 북쪽에서 많이 나며 나라를 향한 충성심도 남다르다고 한다."

    '두타산 ― 골짜기가 깊고 수석이 기묘하여'은 김효원의 '두타산일기'를 번역한 것이다. 두타산은 강원도 동해시와 삼척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 이름인 ‘두타’(頭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를 닦는다는 뜻이다. 김효원은 이황과 조식의 문인으로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 글은 산행기이면서도 예법에 관한 자신의 논설이 들어 있기도 하고, 또 치자(治者)로서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기도 하며, 그 밖에 자신의 깊은 심회를 드러내기도 하고, 산에 대한 나름의 진중한 철학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을 보고 산을 보면서 여러분은 또 얻은 것이 있었는가? 옛사람들은 사물 하나를 보더라도 거기에서 취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지, 다만 탐구하고 토론하는 것만을 우선으로 하지 않았네. 시냇물이 콸콸 흐르며 밤낮으로 쉬지 않는 것은 누가 그렇게 시켜서 그런 것이겠는가. 가는 것은 가고 오는 것도 끊이지 않는 것은 천기(天機)의 운행이 참으로 이와 같기 때문이지. 만일 이것이 한 순간이라도 멈추어버린다면 그 맥이 끊어져서 시냇물이 말라버릴 것이라네. 오늘날의 공부하는 자들이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밤낮으로 삼가 그 행동을 조심하기를 한 순간이라도 멈추지 말아야만 할 것이네. 그렇지 않고 만일 오로지 애쓰던 그 공력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오래도록 이어져온 그 공부의 힘이 금세 다 폐해지고 말 것이니, 이는 깊이 두려워해야만 할 것이네. 산은 그 푸른빛을 받아들여 천고토록 없어지지 아니하듯, 군자도 그 산의 모습을 보고서 명예와 절조를 갈고 닦아 우뚝하게 홀로 선 자를 생각해야 하네. 또 산은 웅장하게 솟아올라 한 쪽에 버티고 서 있으니, 군자가 그러한 산의 위용을 보고 중후하여 쉬 옮겨가지 않아 모든 사물을 안정시키면서도 마치 아무런 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하는 자를 생각해야 할 것이네. ‘산과 숲은 궂은 것을 감추어준다’는 도량에서 나의 가슴 넓힘을 배우고, 맑고 서늘한 기운에서 나의 누추함과 더러움을 씻어버릴 것을 배우게 하지. 또 게으름과 타락에 떨어지고, 경박함과 조급함으로 성을 발끈 내며 스스로를 작게 여기고, 애걸복걸하며 스스로를 구차하게 여기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산과 물의 도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일세. 나는 나와 동행하는 사람 중에 만일 산수의 이러한 면모를 본받지 않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와 절교하고 북을 치면서 그를 비난할 것이요, 그가 스스로 그 자신을 깨끗이 하고 난 뒤에라야 이를 그만 둘 것일세. 그러니 나의 이 말을 소홀히 듣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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