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별세한 민주화 운동 원로 박형규 목사의 빈소가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다. 사진은 19일 오전 박 목사의 빈소 모습. (사진=황진환 기자)
'민주화 거목' 박형규 원로목사가 소천한 다음 날인 19일,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전·현직 유력 정치인과 교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비보를 듣고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최근 정계복귀 수순을 밟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19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민주화 운동 원로 박형규 목사의 빈소에 조문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손 전 고문은 박 목사에 대해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 계셨던 분이면서 기독교를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게 한 선구자"라며 "항상 자신의 것을 전혀 탐하지 않는 거침 없던 교회의 어른"이라고 기억했다.
1970년대 박 목사로부터 세례·주례를 받았다는 손 전 고문은 이어 "박 목사님의 지혜는 유신 시절 기독교가 사회정의 문제에 앞장서게 했다"며 "불평등이나 남북관계 등 오늘날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그의 지혜와 용기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후 더민주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김부겸 의원,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이 잇달아 빈소를 찾았다.
김종인 대표는 박 목사에 대해 "유신시절 민주화운동에 고생을 많이 하신 분으로 알고 있다"면서 "당시 대학교수였던 나도 심정적으로 찬동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에 마련된 민주화 운동 원로 박형규 목사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목사님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인권·평화통일 문제에 많은 기여를 하셔서 모든 국민의 추앙을 받았다"며 "어려울 때 나라를 위해 큰 일 하셨던 어르신들께서 소천하셔서 그 슬픔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오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박 목사가 시무하던 서울제일교회 성도 등 일반인 조문객들과 교계 인사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형규 목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빈소 앞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김성식 의원, 정의당 심상정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 CBS 한용길 사장 등이 보낸 화환 수십개가 설치됐다.
앞서 박 목사는 18일 오후 자택에서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2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1960년 4·19혁명에서부터 민주화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1973년 '남산 야외음악당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만들고 전단을 배포하면서 주목받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형규 목사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그러다 당시부터 독재정권에 저항해 내란음모죄, 긴급조치, 집회시위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6차례에 걸쳐 투옥됐다. 정부의 박해로 교회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6년간 예배하면서는 '길 위의 목사'라고 불렸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조작한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15년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38년이 지난 뒤인 2012년 9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장례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葬) 5일장으로 진행되며, 발인 예식은 22일 오전 9시 기독교회관 조예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