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 의혹의 수사팀장을 맡은 윤갑근 대구고검장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수사를 이끌 윤갑근 특별수사팀장(대구고검장)은 '사건 운'이 많은 검사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1차장과 대검강력부장, 반부패부 부장을 지내며 정국을 흔들었던 사건을 수사하거나 지휘했다.
최근 윤갑근 수사팀장이 다룬 대표적 사건이 '국정원 증거조작사건'과 '정윤회 문건수사' 사건이다. 국정원 증거조작사건은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이 중국까지 가서 '공작비'로 상대국 정부의 공문을 위조하며 헛돈을 날린 사건이다.
당시 기자는 "내가 살다살다 국정원이 다른 나라 가짜공문서까지 만들어 간첩을 잡으려 한 사실을 기사로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한탄 했다. 검찰 주변에서 "모르면 몰랐지 국정원이 과거에도 나랏돈 들여 서류를 조작하는 사례가 많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때 섬뜩해 했던 기억이 분명하다.
윤갑근 특별수사팀장은 '희대의 사건'에서 조작 책임자를 규명할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수사결과는 '꼬리곰탕'과 같았다. 꼬리 자르기 수사였다는 의미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였다. 서천호 2차장은 원장 대신 "책임을 진다"며 셀프퇴진했다. 1급 대공수사국장은 서면조사 후 무혐의. 그 아래 2급 대공수사국 최모 단장도 소환조사 후 무혐의처리됐다.
다음은 아랫선. 대공수사국 이모 차장(3급), 김모 과장(4급), 선양 총영사관 부총영사 권모씨(4급), 영사 이모씨(4급) 그리고 국정원 외부조력자 김모씨 등 5명만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겨우 불구속 기소됐다.
간첩을 잡는 일은 그들에게 '승진'을 위한 길이었지 국가를 위한 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검찰과 국정원은 국가를 위해 일하다 과잉충성이 빚어낸 '개인 일탈'이라고 성격을 규정해버렸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윤 팀장의 '면죄부 남발'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은 검사. 국정원은 간첩을 잡더라도 기소와 공소유지권은 검찰 공안부가 갖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안검사 2명은 국정원이 만들어준 가짜 서류를 들고 '피의자'를 간첩이라며 재판정에서 몰아 붙였다. 가짜 증거자료를 갖고 말이다. 헌데 서류가 가짜임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들의 변명은 너무나 허무했다. 윤갑근 팀장은 수사결과에서 "두 검사는 증거위조에 관여하거나 위조된 걸 몰랐다"고 두둔했다. 사법경찰관(경찰, 국정원)을 지휘·감독하고 공익을 대표한다는 검사가 돈 들어오면 상품을 내주는 '자판기'였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당시 진상조사팀장이었던 윤 팀장은 더 힘줘 말했다.
"모두 개인의 일탈이었습니다."◇ 증거날조에도 국보법 피하고 형법 적용 봐주기점입가경도 가지가지이다. 간첩잡는 일도 '개인의 일탈'인데 그들에게 형이 무거운 '국가보안법' 대신 '형법'을 적용하는 건 식은죽 먹기였다.
국가보안법은 간첩증거조작 범죄에 대해서는 12조(무고·날조죄)를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형량이 가벼운 '형법'을 적용했다. 국보법은 '좌파'에나 적용할 법이지 국정원 직원에게는 어불성설이었다.
소환된 국정원 직원이 거짓해명을 하고 묵비권을 행사하고 심지어 조사 도중 "더이상 조사를 받을 수 없다"며 검찰청사를 뛰쳐나가도 검찰은 그들의 진술을 믿어줬다.
◇ '국기문란사건 2호' 정윤회 문건 수사는
정윤회 씨.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국기문란사건 2호로 지목한 정윤회문건 유출사건을 보자. '국기문란 1호'는 대화록 유출사건이다.
윤 팀장은 당시 대검강력부장을 역임하면서 반부패부 부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정윤회 문건사건의 핵심은 '대통령 측근인사들의 인사전횡'을 비롯한 국정농단 논란이었다.
대통령은 수사에 앞서 수사 지침을 내렸다. 새누리당 지도부와 점심 자리에서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며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수사 결과는 세간의 예상을 단 한발도 비켜 나가지 못했다.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이른바 '십상시'가 정기적으로 모여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교체 필요성 등 인사전횡을 한다는 문건이었지만 "실제 그런 식사 모임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검찰은 문건을 '찌라시'라고 규정했다.
대신 '문건유출 수사'는 단호했다. 재판에서 무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조응천 전 공직비서관과 유출에 가담한 경찰이 기소됐지만 조 전 비서관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청와대의 가이드라인대로 결론이 나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검찰이 해우소냐?"는 자조가 터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병우 민정비서관은 '민정수석'으로 승진했고, 그가 첫 관여한 검찰인사에서 윤갑근 팀장은 동기생 중에 가장 앞서 '고검장'으로 승진 발탁됐다.
'고검장'은 일반적으로 '사건'을 맞지 않는다.
그러나 타고 난 '사건 운'은 고검장이 된 뒤에도 그를 비껴가지 못했다. 그는 동기이자 '대통령 팔'로서 살아 있는 권력의 총아,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를 맡게 됐다.
정녕 바늘가는데 실가는 것일까. 윤갑근 수사팀장 개인적으로 '불운'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 우병우 무혐의…이석수 기소?
(사진=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도 우병우 수석 사건을 '국기문란 3호'로 규정했다.
다짜고짜 특별감찰관의 기자접촉이 기밀누설에 해당하는 국기문란이라는 것이다. 따져볼 필요도 없다. 왜일까? 사건의 본질이 '우병우 비리혐의'가 아닌 특별감찰관의 '기밀누설'이라고 가이드라인을 정해버림으로써 검찰수사의 운신의 폭을 확실하게 조여버렸다.
윤 특별수사팀장의 경력은 사법연수원 19기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오히려 걱정되는 대목이다. 수상개화(樹上開花)라는 말이 있다.
'나무 위에 꽃이 핀다'는 말이지만, 속뜻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꽃이 피지 않는 나무에 조화를 꽃아두는 상황'을 일컫는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어 상대방을 속이는 것을 말한다.
윤 팀장의 화려한 경력은 대통령의 지침을 이행하는데 '결정적 도움'를 줄 것이다. 그의 화려한 특수수사 경력은 우병우 민정수석에 면죄부를 주는 일을 합리화 하는데 제격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내용보다 포장이 더 중요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 결론'이 벌써 나돌고 있다. 우 수석은 초지일관 "나는 모두 몰랐다"고 발뺌할 것이라는 얘기다. 부인이 소유한 1인 기업 정강을 비롯한 가족 재산관리에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버틸 것으로 전망된다.
아들의 의경 꽃보직도 '나는 관여하지 않았고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버틸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혐의 밖에 남지 않는다.
이상이 윤갑근 팀장의 수사결과를 의심하는 이유다.
윤 팀장은 '세간의 예측'을 입증해 줄 적임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일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몇년간 그의 이력과 관록은 '정답'을 어렵지 않게 알려주지만 그래도 '반전'이 있었으면 하는 기대는 있다. 윤갑근 팀장 스스로 말한대로 '있는 그대로 원칙대로 수사'해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