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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은 왜 이승만·김구 이름을 지웠나?

사회 일반

    독립기념관은 왜 이승만·김구 이름을 지웠나?

    "이름 나오면 다 지워"…개인정보 보호 위해? 책임 안 지려는 면피행정

    1948년 4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통일을 위한 남북지도자 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38선을 넘는 김구 일행. (사진=자료사진)

     

    독립기념관이 보관하고 있는 영상 사료(史料)에서 이승만·김구 등 역사적 공인을 포함한 모든 이름들을 지우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개인정보 보호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야 할 독립기념관의 무책임한 행정 처리로 인해 사료의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 "거론되는 이름은 전부 지우라"는 지시

    독립기념관이 인명들을 지워나가고 있는 자료는 독립기념관 측에 보관된 멀티미디어 영상 자료들.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았던 독립 운동가 등이 당시 상황을 증언·구술하는 영상들로, 당대에 학도병으로 동원된 피해자, 교육 운동에 힘 쓴 운동가, 청년 운동가 등이 있다.

    2004년과 2005년에 녹화됐으며, 현재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공개돼있다.

    독립기념관 측은 해당 자료들을 재가공· 편집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이는 '소장자료 DB(데이터 베이스) 구축사업' 의 일환으로 실시됐다.

    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독립기념관 측은 구술자의 증언 내용 중 "인명이 거론되는 순간 전부 비식별화 처리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워지는 이름에는 현대인부터 이승만, 김구, 여운형 등 역사적 공인들까지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어떤 이름이 거론되든 이름이 나오기만 하면 누군지 알아볼 수 없도록 하라는 것.

    (사진=독립기념관)

     

    CBS 노컷뉴스가 입수한 독립기념관의 편집 지시서에 따르면, 붉은색으로 처리된 인명은 성을 제외하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런 참…. 이승만이 말 한마디에 수만 명이 죽었다가 또 수만 명이 살았다카는 그런 시댄데. 그래 무모한 정치를 해왔다 이겁니다."라는 문장에서 '이승만'이라는 이름은 성을 제외하곤 비식별화 처리가 됐다.

    ◇ 개인정보법 때문이라고?

    사실 확인에 나선 취재진에게 독립기념관 측은 이 같은 작업이 '개인정보법' 등 관련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립기념관 측이 첫째로 거론했던 법은 개인정보보호법. 사람 이름은 개인 정보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름을 전부 지워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정보법은 '살아있는 개인'에 해당하는 법. "이 법이 망자에게도 해당되느냐"고 취재진이 물었지만 독립기념관 측은 "개인정보법과 정보공개법이 강화돼서 그렇다"는 답을 보내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법에 저촉되냐"는 질문에는 "한 개인이 다른 역사적 인물에 대해 나쁘게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구술 내용으로 인해 특정 인물의 명예가 훼손될 우려가 있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법과 관련해 상급 기관의 지시가 있었냐"고 물으니 "그런 건 없었고, 각 기관들이 알아서 판단한다"고 답했다.

    독립기념관의 이 같은 법 해석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김지미 사무차장은 "개인정보법이든, 정보공개법이든, 명예훼손이든 현재 상황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아 보인다"며 "그러한 답변을 하는 독립기념관 측도 여러 법을 다 혼동해 애매하게 대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립기념관 측의 마지막 답변인 '명예훼손'과 관련해서는 "명예훼손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겠다는 고의성이 있어야 한다"며 "역사적인 사료를 위해 구술된 자료를 명예훼손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라 진술하는 건 전부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 "그건 그냥 연구를 안 하겠다는 것"

    문제는 독립기념관이 취급하고 있는 자료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자료들이자,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사를 연구할 책임이 부여된 기관이라는 것이다.

    해당 사업의 목적을 묻는 취재진에게 독립기념관 측은 "한국 독립운동사 자료의 활동도를 제고하고, 국·내외 학술 연구를 지원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독립운동사 자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훼손 방지 및 영구적인 자료 보존 체계를 확립하기 위함"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료 관리 방식이 "독립운동사 연구 지원 및 훼손 방지"라는 당초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구술자가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내용인데, 이름이 빠지면 맥락이 없어지고 사료적 가치가 훼손된다"며 "그런 식으로 연구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독립기념관이 왜 그런 식으로 일을 하는지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만일 그들의 설명처럼 구술에 문제가 있다면 그 진위는 후대 연구사들이 밝혀내면 될 일인데 책임 있는 기관이 그런 식으로 하겠다는 건 연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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