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라오스를 방문 중인 한미 양국 정상이 6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순수한 북핵 방어수단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라오스 비엔티안의 한 호텔에서 이날 오후 50분간 이뤄진 회담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같이 입장을 정리하고, 합의내용을 공동 발표했다.
청와대는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한 엄중한 경고 메시지와 미국의 굳건한 대한 방위 공약, 자위적 방어조치로서 사드 문제에 대한 양국의 기본입장을 정상 차원에서 분명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임기 종료를 앞둔 오바마 대통령과의 사실상 마지막 한미 정상회담이었던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감사인사와 덕담을 주고받았다.
◇사드는 순수 방어체제 = 두 정상은 '사드는 북핵 방어용'이라는 양국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 두 정상은 사드 배치를 포함한 연합방위력 증강 및 확장억제를 통해 강력한 억지력을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최근 우리는 어떠한 위협에 대해서도 방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는 사드도 포함된다"면서 "사드는 순수한 방어체제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 의지를 분명히 하고 나섬에 따라 한중 및 미중 간 사드 마찰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전략적 안정을 저해하고, 분쟁을 격화시킬 것"(한중 정상회담), "미국은 중국의 안보이익을 존중해야 한다"(미중 정상회담)면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날 한미의 사드 공조의지 재천명이 갈등을 촉발할 가능성에 대해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은 "양국이 이미 밝혀왔던 기본 입장을 재확인한 것일 뿐이어서 새로운 부정적 요소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고한 북핵·미사일 억제 = 회담에서는 중국 항저우 G20 정상회의 기간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에 나선 데 대한 규탄도 이뤄졌다. 두 정상은 강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확고한 대북 억지력을 유지한다는 데 합의했다.
박 대통령은 "연초 북한의 핵실험이나 연이은 탄도 미사일 발사 등은 동북아 지역의 안보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는데, 한미 양국은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모든 수단을 다해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했다.
"북한은 어제 또 노동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이와 같이 무모한 도발을 지속하는 것은 자멸을 초래하는 길임을 강력히 경고한다"는 말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한국에 위협일 뿐 아니라, 일본 등 이 지역 다른 동맹국과 미국에도 위협이 된다"고 단언했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 제재, 유엔 결의안을 준수하지 않으면 더욱 더 고립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중국의 '대북 역할' 촉구 = 양국 정상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사실상의 대중 압박이다. 회담에서는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각자 시진핑 주석과 가졌던 정상회담 내용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양국은 안보리 결의의 충실한 이행과 함께, 제재 이행에 있어 구멍을 더욱 촘촘히 메우기 위한 노력을 더 한층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며 "대북제재의 효과적 이행이나, 북핵문제 해결과정에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양국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중국 측과도 계속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제재 조치의 빈틈을 메우고 더욱 효과적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앞서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한미중 3국간 소통을 제안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우리나 미국이 중국과 가지고 있는 채널은 다양하다. 향후 상황전개에 따라 필요하다면 여러 형태의 대화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변 4국' 전체와 북핵·사드 논의 = 지난 3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오바마 대통령까지 대면한 박 대통령은 한반도 주변 4개국 모두와의 북핵·사드 관련 논의를 마무리할 단계에 도달했다. 아베 일본 총리와의 회담은 7일 오후로 예정돼 있다.
러시아·중국 순방 중 이들 나라 정상을 상대로는 사드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는 데 집중한 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북핵 대응 공조의지를 재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중·러를 상대로 한 사드 외교에서 '동의'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들 나라로부터 '북핵 불용'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 받은 점은 나름의 성과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 "안보리 결의를 완전하고 엄격하게 계속 이행해 나가겠다"고, 푸틴 대통령은 "평양의 자칭 핵보유 지위를 용인할 수 없다"고 각각 밝혔다.
청와대는 "내일로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 등 연이어 주변 4국과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은 전례가 없는 것"이라며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연이은 미사일 도발로 야기된 현재의 엄중한 상황에 대해 집중적인 협의를 적기에 가졌다"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