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무알코올 맥주들. (고무성 기자)
#1. 임신 후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었던 A(30)씨는 친구로부터 무알코올 맥주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도 탄산음료 또는 혼합음료로만 표기돼 있었다. 안심하고 모유 수유를 할 때까지 가끔씩 마시던 A씨는 뒤늦게 알코올이 함유된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2. 임신 8개월인 B(33)씨는 인터넷 임신 및 육아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을 때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면 된다는 글들을 봤다. 검색을 더 해보니 이렇게 마시는 임산부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A씨는 무알코올 맥주를 마신 뒤 알딸딸한 술기운을 느꼈다.
일부 임산부들 사이에서 맥주의 대안으로 알려진 무알코올 맥주의 대부분이 1도 미만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
주류코너에 들어서자 수많은 종류의 무알코올맥주들이 일반 술과 함께 진열돼 있었다. 일반 맥주와 똑같이 생겼지만 탄산음료 또는 혼합음료로 표기돼 있었다.
특히, 대부분의 제품에는 식품위생법에 의한 한글 표시에 알코올 도수가 적혀있지 않았다. 임산부에 대한 주의 문구는 모두 없었다.
취재진은 대형마트에 진열된 9개의 무알코올 맥주회사 측에 직접 알코올 함유량을 문의했다.
그런데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소량의 알코올이 함유돼 있었다. 에딩거프라이 0.4~0.5%, 마이셀 0.4%, 클라우스탈러 0.3%, 웨팅어프라이 0.2%, 비트버거 드라이브 0.04도, 논알콜 맥스라이트 0.02%, 산미구엘 엔에이비 0.003%, 하이트 제로 0.001% 등 순이었다.
유일하게 바바리아 레귤러만이 소량의 알코올도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성인인증 없이 청소년도 구매가 가능한 무알코올맥주들. (한 대형몰 화면 캡처)
또한 19세 미만 청소년에 대한 판매 금지 문구는 '산미구엘 엔에이비'를 제외하고 모두 '성인용 음료'로만 표시돼 있었다.
일부 무알코올 맥주 회사는 '성인용 음료'로 표기돼 있지만 음료기 때문에 청소년들도 구매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온라인에서도 일부 제품은 성인 인증 없이 청소년들의 구매가 가능했다.
◇ 무알코올 맥주에 왜 알코올이?…식약처 "개선 중"
주류는 지난 1949년 10월 제정·시행된 주세법에 따라 알코올 1도 이상으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알코올 1도 미만인 무알코올 맥주는 혼합음료나 탄산음료로 분류되기 때문에 도수나 주의문구를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0'도나 무알코올이라고 해도 현행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지난해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이를 지적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정은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9월 14일 열린 식품의약품안전처 국감에서 "무알코올 맥주의 알코올 함량표기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당시 김승희 식약처장은 "무알코올이라고 하면서 알코올이 들어가 있는 음료에 대해서는 알코올을 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무알코올 맥주에 대한 함량표기방안은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다.
식약처는 무알코올맥주를 알코올 함유 여부에 따라 분류하는 내용의 행정예고를 올해 안에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 무알코올 맥주, 임산부들이 마셔도 될까?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식약처와 대부분의 무알코올 맥주 회사 측은 주의 문구도 넣지 않으면서도 임산부나 청소년이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아주 소량의 알코올이 들어있기 때문에 사실은 의사와 상담하고 마시는 게 적절하다"며 "주의문구는 저희뿐만이 아니고 무알코올 맥주를 판매하는 모든 업계에서의 문제라서 조치를 다 같이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임산부나 청소년이 무알코올맥주를 마시면 좋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주의문구도 표기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산부인과학회에서는 임산부의 알코올 섭취 자체를 금기시 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인 최석주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현재 임신 중에 알코올 섭취가 허용된다는 기준은 없다"며 "임신 중에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무알코올 음료도 마찬가지로 판단해야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정책이사 겸 중독포럼 상임운영위원인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주류회사들이)무알콜이라고 쓰는 말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에 모두 고발당해야 한다"면서 "무알코올 음료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나라에서 임산부는 한 방울도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 한 방울은 의학적으로 0.1%이든 0.001%이건 모두 알코올을 얘기하는 것"이라면서 "주세법은 거꾸로 말하면 산모들이 알코올 0.9%까지 마셔도 좋다고 권고하는 셈으로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