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제공)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이화여대 특혜입학 등 최순실 씨를 둘러싼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드디어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입을 열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각종 의혹과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현재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임 후를 대비해서 재단이 만들어졌다는 세간의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미르나 K스포츠재단은 기업의 순수한 참여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어느 누구든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면서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란이 중단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
박 대통령이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언급하긴 했지만 이날 발언은 한 달 전과 비교할 때 큰 틀에서 달라진게 별로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국가 기강을 흔들고 130년 전통의 사립대학을 혼란에 빠뜨려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데도 박 대통령이 또다시 위기론을 들고 나온 것은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애써 덮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북핵과 경제난을 앞세우고자 했으나 실은 공조직이 아닌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모금에 관여하고 비밀리에 회사를 설립해 딸의 승마교육을 지원하는 등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이 위기의 더 큰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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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재단설립의 순수성만 강조하고 최순실 씨의 '최'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화여대 특혜입학이나 회사 설립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없었다. 대신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체육분야를 집중 지원하고 우리 문화를 알리며 어려운 체육인재들을 키움으로써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수익 창출을 확대하고자 기업들이 뜻을 모아 만들게 된 것이 두 재단의 성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승마 선수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양을 위해 K스포츠재단 직원들이 대거 동원돼 숙소를 구하러 다녔다는 보도까지 나온 마당이다. 또 재단 직원들은 최씨가 설립한 더블루K라는 회사의 직원을 겸하면서 독일에서 승마훈련을 하는 정씨를 지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황제' 대우를 받으면서, '돈도 실력,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SNS 글을 올린 정유라 씨가 '어려운 체육인'이란 말에 과연 누가 동의할까?
박근혜 대통령은 "이처럼 의미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되고 도를 지나치게 인신 공격성 논란이 계속 이어진다면 문화융성을 위한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의지에 찬물을 끼얹어 기업들도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수백억 원 모금의 자발성과 재단 인가 과정, 참여인사의 면면, 불투명한 운영을 둘러싸고 의혹에 휩싸인 상황에서 본말이 전도된 발언이다.
오히려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한 각종 의혹이 재단의 존재 이유를 훼손하고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일 것이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문제가 되는 재단들을 없애야 한다"(김무성 전대표)는 재단 해체 발언까지 나온 지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재단 자금 유용에 대한 엄벌을 천명하고, 더 이상의 의혹이 생기지 않도록 감독 기관이 감시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한 것은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의 의혹은 이른바 비선 실세의 권력 개입인데 사안을 일개 재단의 횡령 의혹으로 좁혔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무엇보다 국가기강이 허물어졌다는데 있다. 대통령의 '나쁜 사람들' 한마디에 국가공무원이 좌천되고, '이사람들 아직도 있어요?' 한마디에 옷을 벗는 현실에서 게이트가 싹트는 것이다. 공무원이나 기업가들은 본능적으로 권력의 냄새를 잘 맡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금수저의 벽을 실감케 하고 입학전형과 학사관리를 불신케 하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의혹을 묵히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는 법이다. 따라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국정의 동력을 그나마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고리를 끊고 권력형 비리 전반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는게 정도(正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