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검찰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피의자든 참고인이든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선 사람들이 으레 내뱉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답변은 성실했는지 조사는 철저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68년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박근혜 대통령도 두 번째 대국민 사과 담화에서 '성실'이라는 말을 빠트리지 않았다.
"저 역시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라고.
박 대통령은 사실상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으로 지목되면서 국민들의 퇴진 요구에 직면해 있는 만큼 '참고인' 명찰을 떼고 정말로 성실하게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
더욱이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고개를 숙인 게 진심이라면 단 한마디의 거짓말이나 침묵의 묵비권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 검찰 수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이 언급했던 '성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이 15일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도 있다"면서 검찰 조사 일정을 늦춰달라고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검찰이 일방적으로 일정을 통보한 내일(16일) 조사는 부적절하며, 대통령 조사도 서면으로 해야 하고, 대통령 직무 수행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설립에 대해 "선의로 추진했던 일이고 그로 인해 긍정적 효과도 적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 매우 가슴 아파 한다"는 박 대통령의 입장도 전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던 모습이다. (사진=황진환 기자)
변호인의 말대로라면 100만 촛불 민심에도 박 대통령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김종필 전 총리가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한 "박 대통령은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도 하야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이 떠오른다.
결국 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늦어지게 되면 최순실 씨에 대한 1차 기소 때 박 대통령의 혐의 사실이 공소장에 적시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일단 돌출변수가 생겨났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검찰의 단호한 의지와 철저한 수사다.
검사 선서의 글귀처럼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있는 검사로서 진정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이미 청와대가 검찰 조사에 앞서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거나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들이 드러난 터다.
때문에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대통령님!'으로 부르는 예우를 지키면서도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명백한 증거들을 대통령에게 들이밀어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검찰이 미덥지 않다.
사진기자에게 들켜버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팔짱 낀 미소가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부랴부랴 창문에 창호지를 붙이는 가벼운 호들갑으로 부끄러움이 감춰지는 게 아닌데 말이다.
현직 대통령은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가 여론이 들끓자 슬그머니 입장을 바꿨고, 최순실씨 31시간 늑장체포에 우병우 전 수석을 '황제'로 모신 검찰이다.
그런가 하면 수백억 원을 갖다 바친 대기업 총수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비공개 소환하는 편의를 제공했다 여론의 비난을 받자 차량 내부에 가림막을 친 채 돌려보내는 모습을 연출한 검찰이다.
검찰의 이같은 행태는 대기업 총수들이 뇌물공여자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가능한 것이어서 결국 박 대통령의 혐의도 제3자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이나 강요죄가 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이 만일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면 국민적 분노가 검찰로 향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역대급 특검과 국정조사도 기다리고 있어 검찰이 특검의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나저나 박 대통령의 퇴진 거부와 검찰 수사, 특검과 국정조사로 이어지면서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해를 넘길 것으로 보여 답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