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선장으로 있는 배에 큼지막한 틈이 생기고, 박 대통령을 떠받쳐온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주춧돌에 균열이 갔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겠다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김현웅 법무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동시에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의 탈당과 다른 장·차관들의 '사퇴 도미노'를 촉발하는 박근혜 정권의 붕괴 신호탄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철옹성이었던 당·정·청의 3각축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자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대통령 입장에서 검사장 출신의 법무장관과 민정수석은 이른바 '우(右) 현웅·좌(左) 재경'이었을 것이다.
김 장관은 검찰총장을 지휘하고, 최 수석은 검찰과 경찰·국정원을 관장하는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든든하게 보좌하는 역할을 해왔다.
더욱이 검찰 재직 시절 '최고의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렸던 최재경 수석의 경우는 권력 실세로 불렸던 우병우 전 수석의 빈 자리를 메우는 '구원투수'의 임무까지 주어졌는데 결국 세이브는 커녕 스스로 마운드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것도 지난달 30일 민정수석으로 내정된 뒤 박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함께 사진 촬영을 한 지 닷새 만의 결별이다.
왼쪽부터 사의를 표명한 김현웅 법무부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 (사진=자료사진)
두 사람의 사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박 대통령에게 오는 29일까지 대면조사를 하겠다는 내용의 요청서를 보냈다.
그런가 하면 한 현직 검사는 23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검찰은 국민의 명령에 답해야 한다"면서 "체포영장을 청구해 피의자인 박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표는 대통령이 수리하든 하지 않든 대통령과 함께 하지 못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상 초유인 법무장관과 민정수석의 동시 사표는 대통령이 피의자로 입건된 뒤 검찰 수사를 거부하는 상황이 도래된 데 따른 대통령에 대한 도리로 해석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표는 박 대통령이 선장으로 이끌었던 '대한민국호'가 난파선이 되는데 결과적으로 방조했던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책임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100만 촛불이 200만 횃불이 될 지경인데도 선장실에서 두문불출이고, 항해사와 조타수, 기관사 역할을 맡은 장·차관들은 선장의 무능과 리더십 부재에도 자신들을 임명한 대통령에 대한 의리와 보은(報恩)으로 침묵하고 있다.
'눈치 10단' 국무위원들의 '영혼 없는' 무소신은 무엇보다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 가능성을 반신반의하며 주판을 튕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마음 속에서 이미 탄핵된 박 대통령이 '최순실 터널'에서 빠져 나와 정치적으로 살아날 경우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국무위원들은 '이게 나라냐'는 국민들의 한탄을 불러온 데 상당한 책임이 있다.
다만 법무장관과 민정수석 두 사람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들이 낸 사직서가 국무위원들의 양심을 흔들고 대통령으로 하여금 미망(迷妄)에서 깨어나도록 하는 각성제가 돼야 할텐데 과연 그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