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제6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의 헌정문란 사태는 대의 민주주의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선거를 통해 맡긴 권력은 엉뚱한 곳에 쓰였다.
하지만 대중들이 이를 바로잡는 방식은 영리했다. 주말에는 비폭력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평시에는 바로 '손가락'을 이용했다. 전화부터 문자메시지, 댓글, 인터넷 청원운동까지. 대중들의 '손가락' 정치가 국회의 판도를 바꾸는 형국이 되고 있다.
대중들이 쏟아내는 문자 폭탄이나 소액 후원금 항의, 인터넷 청원운동 등 기발한 발상이 선출직 국회의원들에게 '촛불' 민심 만큼이나 무섭게 다가오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1일부터 이같은 대중들의 손가락 정치가 본격화됐다.
특히,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진 국회의원들의 휴대전화번호 공개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모바일 항의가 이어졌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가장 먼저 뜨끔했던 곳은 바로 국민의당이었다. 당초 야당은 탄핵안 1일 발의, 2일 표결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3차 담화로 대오가 흔들리고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 대열에 이탈할 조짐을 보이면서 가결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그래도 2일 표결을 강행하자"는 입장을 보인 반면, 국민의당은 "비박계 설득을 위해 일주일 미루자"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자 국민의당에 여론의 화살이 쏟아졌다. 국민의당은 "탄핵은 가결(성공)이 목표가 돼야 한다. 2일 표결하면 실패할 수 있다"고 진정성을 호소했지만 1일 하루 국민 여론은 무서웠다.
당장, 의원들의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의원 사무실 및 당사로 항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폭주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휴대전화는 불통이 될 정도였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국민의당'이 종일 선두권을 유지했고, 인터넷에 비난과 우려의 댓글이 쏟아졌다. 후원금 18원 보내기 등 기발한 항의가 이어졌다.
결국 국민의당은 가능한 빨리 탄핵안을 발의하는 쪽으로 여론 달래기에 나섰고, 다음날 박 위원장은 "국민들께 사과드린다"며 납작 엎드렸다.
탄핵까지 불과 닷새 남은 상황. 이제 대중들의 손가락은 탄핵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을 향해 집중되고 있다.
6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한 새누리당 해체 요구 집회에서 시민들이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을 당론으로 채택, 탄핵 추진에 제동을 건 새누리당의 대형 깃발을 찢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대중들은 탄핵에 소극적인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문자 메시지와 항의 전화를 보내며 탄핵 동참을 압박하고 있다. 거대한 촛불보다도 지역구 주민들의 문자 메시지나 항의전화는 의원들 개개인에게는 더 큰 심리적 압박이다.
특히 국회의원 300명의 탄핵 의사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의 등장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사진=박근핵닷컴 홈페이지 화면 캡처)
'박근핵닷컴'이라 불리는 이 사이트는 탄핵 찬반에 대해 의원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물어 실시간 업데이트를 통해 상황을 전달해주고 있다. 지역구 의원이 탄핵에 어떤 입장인지 확인하고 적극, 청원하라는 취지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국회의원은 "내가 사이트에서 탄핵 '보류'로 돼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 의견을 보내 수정했다"면서 "의원들이 받는 심리적 압박은 상당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탄핵에 대한 국민적 염원이 큰 상황에서 이같은 현상을 일단 학계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권한을 직접 행사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의 요소가 크게 작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대의민주주의는 '수단'이고,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환기시키는 것이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