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횃불을 든 참가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헤쳐 온 시인 고은(84)이 엄중한 시국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한국 문단의 거목이자 민주화의 산증인 고은은 5일 CBS노컷뉴스에 "고결한 시민혁명의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아주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다섯 번째까지의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제가 걱정했던 것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무너뜨린 1960년) 4월혁명이 떠올라서…. 그때는 청년학생들이 경무대(청와대의 옛 이름) 앞 거리에서 쓰러지고 '피의 혁명'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지난 3일 전국적으로 232만 명이 운집한 여섯 번째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그런 것에 대한 걱정이 아무 필요 없는, 아주 씻은 듯이 전부 다 사라졌죠. 고결한 시민혁명의 시기에 제가 살고 있다는 것이 아주 큰 축복으로 다가옵니다."
최순실 등 비선 조직의 끔찍한 국정 농단 사태를 부른 대통령 박근혜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며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를 두고, 그는 '11월 시민혁명'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질서로 혼란을 극복하고, 몇 백만의 위대한 행렬이 촛불의 밤을 이룬 것은 우리 건국 이래,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나는 세계 역사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하나의 예술로서 이뤄진 시민혁명은 달리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번 11월 시민혁명은 세계 각국에게 하나의 모범이 될 겁니다. 하나의 정치 축제, 문화 축제로서 널리 감염돼 퍼져 나가지 않을까 전망을 하고 있죠."
◇ "완전무결한 탄핵, 국민에 대한 국회의 마지막 남은 예절"
시인 고은(사진=고은 공식사이트 화면 갈무리)
고은은 "11월 시민혁명은 우리에게 엄숙한 사명을 던져 줬다"고 진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역 정계의 사람들이 크게 깨쳐서 국민의 뜻을 그대로 실천해 줘야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더 무서운 해일과 같은 국민의 열화가 또 나타날 겁니다. 우선 정치인들이 그동안 해 오던, 자기 이익에 집착하던 입장을 초월해서 정말 시민들, 남녀노소의 순결한 이 정신을 그대로 정치에 이입을 시켜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장 국회에서는 오는 9일 박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있다. 고은은 "(국회는) 당연히 완전무결한 탄핵을 결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국회의 마지막 남은 예절이기도 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탄핵이 물건너갈 경우) 지금까지의 정치에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게 되죠. 그러면 결국 시민들이 나설 것입니다."
'광장의 시민들에 의한 직접 혁명이 일어난다는 뜻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네, 나오겠죠"라고 재차 확인해 줬다.
"저쪽(박 대통령 측)에서도 패를, 대안을 다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망명도 생각할 것이고, 계엄령도 생각할 것이고,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을 테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의 망상에 그칠 것입니다."
그는 "지금의 시민들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시민의 초상'을 그려냈다"고 강조했다.
"저는 우리 시민들에게 때때로 절망하기도 합니다. 시민의 동향, 정세는 급변하기 일쑤고, 때로는 무책임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니까요. 한 표, 한 표를 행사하는 대의 정치 속에서 그 한 표는 그냥 던져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정치는 시작된다는 것, 지금의 촛불시위라는 위대한 역사 행위를 통해 시민들도 깨달은 바가 아주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시인 고은은 "박근혜 탄핵, 정권 교체뿐 아니라 이 아름답고 커다란 운동을 통해 우리네 정치사·문화사·사회사에 소중한 씨앗이 뿌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도 우리는 큰 꿈들을 많이 실현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이뤄 놓지 못한 역사들이 있죠. 앞으로 새로운 정권의 탄생과 함께 우리는 분단 고착을 녹여서 정말 우리 자손들이 사는 '하나의 동산'으로서의 조국을 만들어놓고 이 세상을 떠나야 되겠죠. 하나의 동산, 그것은 바로 통일입니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