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칼럼] '기춘 대원군'과 '유신의 잔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을 모른다고 잡아떼다 거짓말이 들통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껍질처럼 김 전 실장의 음습한 공작정치와 권모술수의 실상이 연일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야 3당은 직권남용 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된 김 전 실장을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으로 규정하고 구속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7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면 별도로 일정을 정해 이른바 '김기춘 청문회'도 추진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의 최고 실세로 '기춘 대원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김 전 실장이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 2014년 12월 17일자 내용. (사진=자료사진)

 

더욱이 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을 통해 김 전 실장이 휘둘렀던 반민주적인 권력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7개월 동안 김 전 실장의 지시 내용을 적어 놓은 비망록은 그야말로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몰아세워 탄압하고 말살해 버리는 유신의 잔재 그 자체다.

실제로 5 ·16 장학회의 장학생이었던 김 전 실장은 1970년대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하고 중앙정보부의 대공수사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런데 비망록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당시 이틀 전에 미리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김 전 실장이 헌재를 좌지우지했다는 명백한 증거인 동시에 박한철 헌재소장과 통진당 해산 결정을 조율했다는 의미여서 헌재의 정치적 독립성도 큰 상처를 입게 됐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이번 주 국회를 통과해 헌재로 넘어갈 경우 과연 헌재가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결정을 내릴 지 여부에 관심이 배가될 전망이다.

비망록에는 또 세월호 참사를 유병언 일당의 탐욕으로 몰아가고, 공영방송 KBS를 통제하며,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을 축소 은폐하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의 교체를 지시한 내용도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런가 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법외 노조화에 청와대가 개입하고,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비판한 현직 판사를 직무에서 배제하는 등 어디 하나 김 전 실장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미 김 전 실장은 과거 검찰총장 때 전두환 5공 비리를 졸속으로 수사하고, 법무부장관 때는 지역감정을 조장한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켰으며, 2004년에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는 등 다분히 음모적인 인물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또 다른 열쇠를 쥔 김기춘 전 실장의 별명은 이제 대원군에서 법률 미꾸라지로 전락했다.

철저하고도 완벽한 특검 수사를 통해 김 전 실장이 무소불위로 휘둘렀던 유신의 잔재들이 말끔히 청산되어야 하는 것도 국민의 명령인 것이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