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노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신촌 맥도날드 앞에서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 한국행동’ 기자회견을 갖고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 노동환경 실태 규탄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자료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찜 요리 용기를 열다 팔에 화상을 입었는데요. 그냥 퇴근할 때까지 일하고 학교 보건실에서 약 발랐죠. '산재'요? 그게 뭐죠?"
충남 천안의 한 중학교 3학년 정모(15) 군은 매주 주말이면 집 근처 예식장 식당으로 향한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13시간 넘게 휴식시간도 따로 없이 음식을 조리하고 나르는 고된 하루다.
이렇게 일하고 정군이 손에 쥐는 일당은 최저임금에 턱없이 부족한 대략 8만원. 이마저도 지각하거나 근무 도중 실수할 때마다 시급이 깎이기 일수다.
정군은 "주말 이틀 일하면 다음 주 수요일에 계좌로 입금 받는다"며 "시급은 얼마씩 받기로 따로 약속하지 않아서 잘 모르고, 그냥 사장이 주는 대로 받는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5세 이하 청소년은 보호자 동의서 뿐 아니라 노동청 인허가증도 받아야 하지만, 정군은 근로계약서를 구경조차 한 적 없다.
또 18세 미만 연소노동자는 하루 7시간만 일할 수 있고 연장근로도 하루 1시간씩, 1주일에 6시간만 할 수 있지만, 법에 정한 노동 시간을 지키기는커녕 연장수당도 받은 적 없다.
정군은 "예식장에는 대부분 고등학생 형들이 일하지만, 같은 학교 중학생들도 10여명이 일하고 있다"며 "친구들과 놀거나 옷도 살 수 있고, 부모님 생신 선물도 사드렸으니 어른이 된 것 같아 좋을 뿐"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 중 편의점 아르바이트 씬. (영화 '카트' 스틸컷)
이처럼 겨울방학을 맞아 단기 비정규직 노동에 뛰어들어 일하는 청소년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생애 첫 직장 경험을 불법노동행위와 부당 처우로 얼룩진 채 보내고 있다.
실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5년 청소년 근로실태조사 및 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일하는 청소년 중 27.7%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었다.
또 38.4%는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하고 있었고, 그나마 계약서를 작성한 청소년들도 그 내용을 잘 이해한다는 답변은 33.1%에 그쳤다.
특히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나 변상에 대한 책임을 아르바이트 청소년에게 전가하는 등 부당서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32.8%나 된다.
이마저도 15~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로, 이 가운데 사회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학교 밖 청소년들이나, 더 나이가 어린 중학생들의 노동조건은 더 열악할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해마다 방학이면 시행하던 청소년 집중근로감독을 2015년부터 여성가족부 청소년근로보호 점검 사업으로 넘기거나 기초 고용 질서 감독에 통폐합해 진행하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에 따르면 2010~2014년까지 5년 동안 고용노동부가 방학 중 청소년 집중근로감독을 실시한 점검대상 사업장은 1500 ~ 6700여개에 달하며 점차 증가했다.(2010년 1545개, 2011년 2711개, 2012년 1940개, 2013년 3057개, 2014년 6721개)
하지만 2013년부터 여성가족부가 주관하고 고용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합동 실시한 청소년 근로보호점검에서는 2013년 513개, 2014년 661개, 2015년 438개의 사업장만 점검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초 고용 질서 감독도 청소년들이 주로 일하는 편의점이나 음식점 등을 집중 지도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며 "오히려 전체 감독 사업장은 확대하고, 조사 범위를 집중해 효율적으로 집행한다고 이해해달라"고 해명했다.
반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노무사는 "연소노동자들에 관한 감독 제도를 재편한 것 자체가 고용주들에게는 정부가 청소년 노동 문제를 무시한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년 취업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빠르게 성과를 내기 위해 정부도, 시민사회도 20대 아르바이트 노동에 집중하면서 연소노동자 문제를 경시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