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나를 담다: 한국의 자화상 읽기'는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소개하는 글을 써온 이광표 기자가 한국의 자화상에 대해 깊이 천착하여 집필한 책이다.
이 책은 화가의 내면을 읽어내고 더 나아가 한국의 자화상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관점으로 자화상 속 배경과 소품, 시선과 눈빛에 집중한다.
또한 윤두서, 강세황, 채용신, 고희동, 나혜석, 이쾌대, 이인성, 장욱진 등이 그린 한국 미술사에 길이 남을 자화상 명작들을 화가들의 굴곡진 삶에 비추어 감상한다.
자화상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화가의 얼굴을 떠올린다. 하지만 "얼굴엔 그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는 말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주관적인 오류에 빠지기 쉬울뿐더러, 얼굴만으로 화가의 내면을 읽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얼굴 이외에서도 자화상을 그린 화가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자화상 속 배경과 소품에 주목한다. 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그리면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배경과 소품을 선택해 그려 넣는다. 특히 소품의 경우, 사람들이 오랜 세월 사용해온 것이기에 시대적 의미와 상징이 축적되어 있다. 화가의 의도와 내면을 객관적으로 읽어내는 단초가 바로 배경과 소품인 것이다.
대화하며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 가운데 하나가 시선의 마주침이다. 초상화나 자화상을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다. 화가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을 시선과 눈빛에 담는다. 감상하는 사람은 그림 속 주인공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눈은 초상화나 자화상 속 주인공이 관람자와 만나는 통로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자화상의 배경과 소품, 시선과 눈빛이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해왔고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를 살펴본다.
이 책의 4부에서는 한국 자화상의 명작 8점을 깊이 있게 감상한다. 조선 시대 최고의 초상화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은 충격적이다. 귀도 없고 목도 없이 탕건까지 잘라낸 채 화면 위에 둥둥 매달린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1937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사료집진속'에서 윤두서의 자화상을 찍은 사진이 발견되었는데 목과 상체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적외선 촬영한 사진에서는 옷선뿐만 아니라 귀까지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윤두서의 자화상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서 선구적인 삶을 살았던 나혜석의 '자화상'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망연하고 우울한 듯한 눈빛과 얼굴 표정, 어두운 색조의 배경 등 전체적으로 좌절과 고독에 빠진 주인공의 불안함이 밀려온다. 그런데 이 자화상은 세계 일주 여행 도중인 1928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세상으로 나아가 새로운 미래를 꿈꾸던 시기에 왜 이렇게 우울한 자화상을 그린 것일까? 세상으로부터 외면받고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하게 될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했던 것일까?
이외에도 모순 화법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절묘하게 드러낸 강세황의 '자화상', 무관 출신 인물화가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준 채용신의 '자화상', 한국 최초 서양화가로서의 고뇌가 담긴 고희동의 '자화상', 해방 공간에서 미술의 현실 참여를 당당히 선언한 이쾌대의 '자화상', 한 시대를 풍미한 천재 화가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시한 이인성의 '자화상', 탈속의 경지로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자 했던 장욱진의 '자화상' 등을 화가의 굴곡진 삶에 비추어 살펴본다. 이들은 하나같이 과감하고 파격적이며, 긴장감과 생동감이 넘친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입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광표 지음 | 현암사 | 332쪽 |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