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디밴드 스카웨이커스. 스카 레게는 자메이카에서 시작된 대중음악으로 식민지 시절 민중의 한과 해방의 기쁨이 어우러진 장르다. 그들은 스카 레게를 기반으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다. (사진=부산CBS)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여전히 촛불 정국이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 분노한 시민들은 새해에도 촛불을 든다. 저잣거리에서 술잔을 쥐고 한탄만 할 수 없다. 나라 꼴을 최악의 사태로 이끈 이들에 대한 가장 품격있는 행동이자 엄중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진다. 백만 촛불을 경험한 시민들의 가슴에 '희망'이 싹튼다. 하나의 촛불은 연약하지만, 열 개, 백 개, 백 만개가 모여서 폭발하는 함성과 뜨거움을 경험했다. 다시 정의와 공평함을 세우자는 열망이 커진다. 촛불을 켤 때는 분노였지만, 촛불을 끌 때는 더 나은 사회가 되길. 간절한 염원을 품는다.
매주 부산 서면 촛불집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이들이 있다. 촛불은 패배가 아닌 시작이라고. 또 우리의 연대는 분명히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위로와 응원을 노래에 담아 외친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 '스카 웨이커스(SKA WAKERs)다. 드럼 이광혁, 보컬·퍼커션 정세일, 색소폰 최정경, 트럼펫 천세훈, 트롬본 이준호, 베이스 이종현, 건반 박재영, 기타 안병용. 모두 8명으로 구성된 레게 밴드다. 일상의 정치를 지향하는 이들을 만났다.
부산대 인근 원룸촌의 한 지하. 이들의 작업실 입구에 자메이카 국기가 걸려있다. 가운데는 스카웨이커스의 로고가 찍혀 있다. 도깨비 형상을 따왔다. 왜 도깨비일까?
"우리나라 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사람을 해치기보다 짓궂은 장난을 하고 놀죠. 약한 자들의 편에서 권선징악을 실현하기도 합니다. 술과 음악, 풍류를 사랑하죠. 우리의 정체성도 그렇지 않나 싶어요. 음악을 하는 그룹을 넘어 서민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밴드, 음악은 즐겁게, 부조리한 사회문제에는 스스럼없이 분노를 표하고 말입니다."
스카웨이커스는 지난해 11월,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백만인파 앞에서 무대를 가졌다. 시대와 철학이 녹아있는 메시지를 음악에 버무려 자메이카 리듬에 담아내는 이들의 음악은 세 차례의 앨범발매와 두 차례의 성공적인 단독콘서트 개최를 통해 대중에게 그 힘을 인정받았다. 자체 레이블 ’루츠레코드(roots record)' 설립을 통해 지역기반 후배 뮤지션 양성과 루츠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는 국내외 뮤지션들의 초청공연도 기획∙진행해오고 있다. (사진=부산CBS)
스카웨이커스는 촛불집회에서 '하야송'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아리랑 목동의 후렴구에 맞춰 "하야~하야하야~하야하야하야하야" 쉬운 가사를 붙였다. 이제 부산의 대표적인 촛불 집회 행진곡이 됐다. 그 밖의 노래도 귀에 익다. 촛불집회에 한 번이라도 참석한 시민이라면 이들의 노래를 쉽게 따라부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멤버들 서로의 합과 내공이 어느덧 10년이다.
"부산대 동아리 노래패에서 민중가요를 불렀어요. 그런데 민중가요가 너무 딱딱하잖아요. 많이 부르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공감하고, 우리의 젊음을 대변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까. 여기서 출발한 것이 스카웨이커스죠. 여러 음악 가운데 스카 레게가 묵직하게, 그러면서도 재밌게 다가왔어요. 자메이카가 식민지였던 시절 민중의 가슴에 쌓인 한과 해방됐을 때의 기쁨을 표현한 장르죠."광우병 촛불집회, 제주 강정마을 사태, 밀양 송전탑,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 집회, 고리원전 폐쇄, 평택쌍용차 노동자 집회, 세월호 집회, 위안부 합의 무효, 사드 배치 반대 집회까지. 주로 어디서 연주를 하냐는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이다. 10년간 신문 사회면에 나온 굵직한 사건에는 모두 참여했다고 보면 된단다.
"저희 8명이 실은 모두 정치적 지향점이나 지지 정당이 다 달라요. 그래서 우리끼리 '진보 대통합밴드'라고 부르곤 하죠. 하지만 삶의 큰 방향과 목표는 같습니다. 건강한 공동체가 잘 유지되는 것, 좋은 세상을 바라는 것, 여기에 미약하게나마 나의 힘을 쏟는 것이죠."
다음달 스카웨이커스의 두 번째 정규앨범 'The Greatest dictator'이 발매된다. 지난 앨범이 8년간 그들의 변천사를 담아낸 기록이었다면 이번 싱글은 스카웨이커스가 추구하고 있는 음악적 색깔과 방향을 보다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사진=부산CBS)
말이 10년이지 쉽지 않은 여정이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한판승부가 아니라지만, 외쳐도 외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패배감을 느끼기도 했다. 많이 울기도, 힘이 부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는 달랐다. 시민들의 공감, 참여, 가능성을 모두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백만 인파 앞에 공연을 하기도 했다.
"대한문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가는 데 2시간이 걸렸죠. 무대에 오르기 바로 직전에 멤버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는데, 이런 거 저런 거 할 정신이 없었어요. 백만 인파가 든 촛불. 그 함성이. 파도처럼 밀려왔죠. 역사의 현장에서 노래하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무대에서도 충분히 감격했는데, 다리를 다친 멤버가 이동하면서 두고 간 휠체어를 한 시민이 나무에 묶어 놓으셨더라구요. '주인있음. 가져가지 마시오' 그 장면이 촛불집회에 나온 모든 시민들의 배려,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에 더 울컥했죠."자칭 타칭 '집회 전문 밴드'. 음반 작업에도 게을리 할 수 없다. 다음달 두번째 정규앨범 'The Greatest dictator'이 발매된다. 지난 앨범은 그들 음악 작업의 변천사를 담아낸 기록이라면 이번 앨범은 이들의 미래다. 추구하고 있는 음악적 색깔과 방향을 보다 명확하게 담아냈다. 탄핵, 촛불 정국이 올지 모르고 기획했다. 박근혜 정부의 민중탄압, 부조리 등을 비판하는 컨셉인데 시국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강자가 약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탄압하고 지배하는 것에 대한 일침을 담고 있죠. 정치적 분노를 최대한 많이 담으려해 어찌보면 음악이 시끄럽고 강할 수 있어요.여러분들이 앞에 몇 초만 듣고 꺼버리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됩니다.(웃음)"멤버들 모두 전문 연주인이 아니라 자영업, 맥주회사, 공연기획, 대학원생 등 다른 업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삶이 녹록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도 큰 고민 중 하나다. 그래도 10년간 그랬고 앞으로 10년, 20년 60년까지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음악이 필요한 모든 곳에, 아픈 이들이 있는 장소에 함께하리라는 것. 투쟁의 과정은 가치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