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설 연휴 앞두고 다시 거리에 나선 쌍용차 노동자들

경제 일반

    설 연휴 앞두고 다시 거리에 나선 쌍용차 노동자들

    정부, 6년 만에 복직하는 쌍용차 노조에 15억 손배·가압류 계속해

     

    세월호 유가족을 필두로 시민들이 모여 저마다 억울한 사연을 쏟아놓는 서울 광화문 광장. 지난 10일 이 곳에는 행인들의 눈길을 끄는 기묘한 천막이 들어섰다.

    구형 코란도 모양의 거대한 하얀 자동차 위에 불쑥 솟아난 굴뚝 2개. '트렁크' 자리에 만들어진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너댓 명의 쌍용차 노조원들이 서로의 온기에 기대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6년 넘게 평택 공장에서, 송전탑에서, 굴뚝에서, 대한문에서 복직 농성을 벌이던 쌍용차 노조원들이다. 하지만 지난해 쌍용차 노조는 사측과 극적인 합의를 이루고 복직에 성공하면서 농성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터로 돌아간 이들을 다시 거리로 불러세운 것은 다름 아닌 정부의 '손해배상·가압류' 폭탄이다.

    쌍용차 노조 김득중 지부장은 "지난해는 노사 합의를 이행하는 한 해로 생각했는데, 회사와 달리 정부는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다"며 "납득할 수 없는 정부의 손배가압류에 시민들의 힘을 모으려 다시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고 소개했다.

     

    앞서 경찰은 쌍용차 노조의 정리해고 반대 옥쇄파업을 진압하면서 장비가 파손됐다는 등의 이유로 쌍용차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42억 원의 손해배상과 8억 9천만 원의 가압류를 청구했다.

    이후 1심을 거쳐 지난해 2심에서 11억 6760만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진 채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여기에 지연이자 3억 5천만원이 얹어졌고, 지금도 하루에 61만원씩 매달 1800여만원의 이자가 불어나기 때문에 경찰이 대법원에서 승소하면 실제 손해배상금은 15억여원을 넘길 전망이다.

    김 지부장은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 천문학적인 숫자여서 어떻게 해야 하나 감도 잡히지 않았다"며 "이미 정리해고 이후 28명의 해고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었는데, 정부의 손배가압류가 해고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찰이 이처럼 거액의 배상액을 청구했던 이유는 헬기 수리비와 기중기 수리비 등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찰이 노조에게 느닷없이 헬기 수리비를 물어내라고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9년 4월, 쌍용차에서는 상하이차의 기술 먹튀논란 속에 경영 악화에 빠졌고, 사측이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자 노조는 다음 달 파업을 선언한 뒤 평택 공장 점거로 대응했다.

    이후 노사가 극한 대립을 이어가자 정부는 경찰력을 대거 동원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진압작전을 펼쳤고, 8월 6일 노조의 점거 농성은 76일 만에 끝이 났다.

    당시 경찰은 연일 헬기를 동원해 보유하고 있던 최루액 10년치를 쏟아붓는가 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장 위로 저공 비행을 하며 위협했다. 또 대형 기중기 3대를 설치해 들어올린 컨테이너로 경찰특공대를 노조원들이 있던 공장 옥상 위에 투입하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조합원들이 하늘을 날아가는 헬기와 거대한 기중기를 향해 고무줄과 철사로 만든 새총으로 저항했더니, 정부는 새총에 맞아 장비가 파손됐다며 십수억원의 수리비를 청구한 것이다.

    김 지부장은 "지금도 헬기 소리만 들리면 하늘을 쳐다보고 움츠리는 등 상처가 남아있어 많은 조합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며 "살인적인 폭력 진압을 하고 그 손해배상을 노조에 청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6년 넘게 가족들도 챙기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돌며 복직을 외쳤던 쌍용차 노동자들은 올해 설 연휴조차 광화문 광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안해본 것이 없는데 이 추운 겨울에 또다시 농성이냐"는 가족의 원망도, "할만큼 했는데 또 나서느냐"는 지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거리로 나선 쌍용차 노조원들이 마음도 무겁다.

    김 지부장도 "사춘기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자녀들이 눈에 밟힌다"며 "내가 길에서 고생해도 가족들이 나보다 더 고생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이미 28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의 죽음을 경험해서 알고 있다. 해고자와 가족들이 살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비단 쌍용차 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많은 사업장에서도 노동자들을 상대로 무분별한 손해배상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정부와 자본이 손해배상소송으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손배가압류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손에 손을 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쌍용차 뿐 아니라 손배가압류를 겪는 사업장마다 '파업을 진압하고 손배가압류까지 하는 것은 죽으라는 얘기'라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윤 활동가는 "뚜렷한 근거 없이 노동자들에게 손배가압류가 이뤄지는데 보호장치가 없어 노동3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며 "헌법적 가치를 지키고 노동자 생존권을 살리기 위해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손잡고'는 오는 17일 국회에 노동3권을 방해하는 손해배상·가압류 남발을 금지하는 '노란봉투법 입법'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결국 다시 거리에 나선 쌍용차 노동자들, 이들의 마지막 호소는 자신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얘기였다.

    "저희가 가장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쌍용차 문제를, 노동자들에게 벌어지는 손해배상이라는 신종 노조 파괴 사태를 잊지 말아달라는 겁니다. 완전히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노동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