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자료사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이후 처음으로 한 시간 분량의 대담 프로에 출연했다. 국민들에게 본인을 알릴 절호의 기회였지만 구체적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일부 현안에 대해서는 말을 바꾸는 등 허점을 드러냈다.
또 핵심 현안에 원론 수준의 답변만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면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경험과 경륜이 부각되기 보다는 오히려 이해 부족과 준비 부족의 모습만 보여줬다는 박한 평가도 나왔다.
반 전 총장은 23일 밤 KBS 방송에 출연해 "87년 개헌은 몸은 컸는데 옷은 맞추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대선이 실시되기 전 하면 좋겠다"며 대선 전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지난 16일 김해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선 전 개헌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어 말바꾸기 아니냐는 시비가 일 가능성이 있다.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자는 의견도 피력했다. 앞서 이날 오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국가를 통합하고 화해를 도모하려면 대선과 총선을 하루에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기단축,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염두해 둔 대목으로 보이다.
그러나 "대선과 최소한 국회의원 선거라도 같이 하면 대선에 훨씬 치중을 하기 때문에 분열될 소지를 줄일 수 있고 국가적 재원도 절약할 수 있다"며 "그런 것이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우리도 도입하는게 바람직한다"고 말한 부분은 논란이 될 만 하다.
미국만 해도 대선과 상·하원 선거가 완전히 동시에 치러지지 않는데다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국가들도 많은 상항에서 우리 실정을 따지지 않고 선진국이 하고 있으니 우리도 하자는 주장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김종인 전 대표를 만난 것으로 알려진 반 전 총장은 "김 전 대표를 만났는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두 차례 만난 사실을 공개를 했다.
이와 관련해 김종인 의원은 반 전 총장과의 만남 자체를 부인해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거나 이뤄졌다고 해도 의미있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자료사진)
답변이 원론 수준에 그친 경우도 많았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보복을 어떻게 풀어가겠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오래 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외교적으로 빨리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답했지만 '어떻게'에 대한 대답은 내놓지 않았다.
심각한 청년실업 해소 방안을 묻는 질문엔 좋은 일자리, 중소기업 확대·육성, 중소기업이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 등을 얘기했지만 정확한 핵심에 접근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갈등 현안 파악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해법에서는 초보라면서 "국민들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게 없다. 답은 거의 나와 있다"고 다소 허무한 답변을 내놨다.
선거 연령 만 18세 인하에 대해서는 몇 시간 만에 미묘한 입장 변화를 드러내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방송에서 "선거권을 많은 국민들에게 부여한다는 대원칙에는 찬성한다"면서 "18세로 하향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논란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의견을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며 사실상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오전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헌법적 권한인 참정권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원칙에는 매우 찬성한다"면서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 나갈 것인지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전 인터뷰에서는 긍정에 무게가 실린 것이라면 이날 밤 방송에서 밝힌 내용은 신중론 또는 회의론에 가까워 보인다.
지방 행보 중에 기자들에게 '나쁜놈들'이라고 막말한 데 대해서는 후회한다며 '쿨하게' 사죄했다. 그러나 지방 '순시'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해 아직도 관(官)의 물이 빠지지 않았음을 노정하기도 했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하라고 한 데 대해서는 "누가 봐도 충분히 납득이 갈 수 있는 충분한 자료(일기)를 공개했다"며 이미 해명이 된 일로 치부를 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법률대리인의 해명은 오히려 의혹을 더 키운 측면도 있다.
금강산 관광 개재와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질문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때문에 당분간 어렵다면서 영유아 지원, 이산가족 상봉 추진 등 비정치분야 교류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