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중대고비를 맞고 있다.
31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퇴임하면 헌재는 8명 재판관 체제로 심리를 진행해야 하고 3월 13일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면 재판관은 7명 밖에 남지 않는다. 이후에는 재판관 2명만 탄핵에 반대해도 탄핵은 기각되고 재판관 1명이 사퇴하기라도 하면 의결정족수 7명을 채우지 못하면서 탄핵심판 자체가 중단된다. 박한철 소장이 지난 변론에서 3월 13일 이전에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측이 ‘중대결심’ 운운하며 탄핵심판 저지 작전에 나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대리인단이 전원사퇴 카드를 꺼내 헌재를 흔들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각종 심판절차에서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한 규정을 겨냥해 새로 대리인단을 구성할 경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들이 전원사퇴하면 심리를 진행하지 못하느냐를 두고 해석의 논란이 있지만 그 자체가 헌재에는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중대결심’은 상황을 봐가면서 하겠다며 자신들이 신청한 증인 39명중 재판부가 채택하지 않은 29명에 대해 다시 신청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통령 대리인단이 이런 카드를 꺼내든 시점이 묘하다. 국회 소추위원단은 탄핵사유를 입증할 증거들이 충분하다는 판단 아래 증인 신청을 대부분 철회한 상태다. 반면에 대통령측은 공개변론 절차가 마무리될 시점에 헌재 발목잡기에 나선 상황이다.
박 대통령측의 추가 증인신청이 받아들여지면 2월 9일까지 잡힌 증인신문 일정도 연장될 수 밖에 없다. 대통령측은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에 대한 증인채택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박 대통령 자신이 심리가 종결돼야 할 즈음에 심판정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경악할 노릇이다.
3월 13일 이전에 선고가 이뤄지려면 2월 안으로는 모든 심리가 종결돼야 하는데 그 무렵에 박 대통령이 직접 변론에 나서겠다고 하면 탄핵심판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측이 이렇게 헌재 심리를 지연시키려는 것은 법조인이 아닌 누구라도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헌재 재판관이 7명으로 줄어드는 기점인 3월 13일을 일단 넘기고 보자는 속셈이다.
또 탄핵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최대한 특검활동 기간이 끝난 뒤로 미루겠다는 의도도 보인다. 특검 활동기간에 탄핵 인용결정이 내려지면 특검에 의해 구속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꼼수를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이 나라 국정을 담당했던 최고 책임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최순실 사태에 치졸하게 대응해 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자신은 검찰과 특검수사를 통해 국정농단의 진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여전히 “엮은 것”이라거나 “음모”라고 강변하고 있고, 핵심 수족들은 국민들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한 채 아직도 도망 다니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아직도 대통령측이 상황을 잘 읽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혹여 탄핵심판 지연전술과 보수층에 대한 여론전을 통해 반전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촛불이 들불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자신의 무지만 자인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제는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오직 헌법에 따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법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신속하게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한 박한철 소장의 신년사는 31일 그의 퇴임 후에도 유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