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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무시한 '규제완화'…예고된 지하철 사고

사건/사고

    안전 무시한 '규제완화'…예고된 지하철 사고

    머나먼 스크린도어와 늙은 지하철의 탄생

    하루 평균 승객 700만 명이 이용하는 '시민의 발' 서울 지하철과 관련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와 5호선 김포공항역 사고 등 잇따르는 사고 이후 안전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총체적 난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 10㎝, 생사를 가르는 공간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상일동 방향 전동차의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의 거리가 약 30cm 정도인 것으로 측정됐다. (사진=김구연 기자)

     

    30㎝와 20㎝.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서울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과 애오개역의 '안전문(스크린도어)-출입문' 사이를 측정한 거리다. 불과 10㎝의 차이지만, 생사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애오개역에서는 승객이 스크린도어와 열차 출입문 사이에 끼일 틈이 작지만, 충정로역에서는 사람이 끼일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오전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김 모(36) 씨가 출근길에 몸이 안전문과 출입문 사이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이한형 기자)

     

    최근에도 서울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승객 이 모(36) 씨가 스크린도어와 출입문 사이에 낀 상태에서 열차가 출발하는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이 씨가 안전문 쪽으로 최대한 몸을 붙여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

    스크린도어와 출입문 사이의 거리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승강장의 모양새다.

    승강장의 구조가 곡선일수록 스크린도어와 출입문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다. 안전문이 곡선부에 따라 설치되지 않고 직선으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반대로 안전문 설치가 쉬운 직선 구조의 역들은 대부분 스크린도어와와 출입문 사이의 거리가 20㎝ 안팎이다.

    곡선부 형태를 가진 승강장은 서울 지하철 1~8호선 277개 역 가운데 127개(49.9%)에 달한다. 사람이 스크린도어와 출입문 사이에 낄 공간을 지닌 지하철역이 절반이나 되는 셈이다.

    ◇ 20년 이상 늙은 지하철, 1~4호선 60.6%

    (자료사진)

     

    지하철 전동차와 각종 설비 등의 노후 문제도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과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 등에 따르면, 지하철 4호선 노선을 달리는 전동차 470량은 모두 20년 이상 된 열차다.

    지하철 2호선 열차의 약 60%(500량), 1호선 열차 40%(64량), 3호선 열차 30.6%(150량)도 20년 이상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22일 서울 2호선 잠실새내역으로 진입하던 중에 불이 났던 열차도 27년째 이용됐던 노후 열차다. 당시 열차 하단에 설치된 '단류기함'에서 불꽃이 튀면서 화재가 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메트로는 올해 1085억 원, 내년부터는 6791억 원을 투입하는 등 2022년까지 모두 8370억 원을 투자해 2, 3호선 노후 전동차 688량을 전면 교체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지난해에만 1376억 적자, 2015년 1426억 적자 등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서울 메트로가 실제로 열차를 교체할지는 미지수다. 서울시는 지난해 정부에 2017년도 전동차 및 시설 교체 명목으로 1054억 원의 국비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올해로 출범 24년째에 접어든 서울도시철도는 조만간 열차 노후 문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도시철도의 전동차도 내년이면 20년 이상 된 열차가 51%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노후한 것은 전동차뿐 만이 아니다.

    지하철 교량의 53.1%, 터널 44.5%가 30년 이상 사용됐고, 광전송설비 100%, 전구형 신호기 100%, 전선로 60.1%, 변전설비 50% 등 전자.통신.신호 실비들도 기대수명을 지난 것들로 나타났다.

    ◇ 머나먼 스크린도어와 늙은 지하철, 어떻게 탄생했나?

    2005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스크린도어는 출입문과의 거리가 원칙적으로 10cm 이내로 제한돼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법안이 개정되면서 관련 규제가 모두 사라졌다. 현행법에는 '최소한의 거리'라고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결국 느슨한 규제가 안전문과 출입문 사이의 공간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객원연구원은 "모호한 규제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과정에서도 안전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면서 "안전보다는 속도나 효율 측면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메트로를 지배하는 늙은 지하철도 과거의 규제에 따랐더라면 사라졌을 퇴물이다.

    전동차의 법적 수명은 20년으로 규정돼 있었지만, 2014년 철도안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열차의 기대수명(내구연한)은 무한정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한번 풀린 규제는 다시 원상복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공공연구원 김철 연구실장은 "규제가 완화됐다가 다시 강화된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안전과 관련한 규제는 신중히 다룰 필요가 있다"면서 "경제적 비용이나 효율성의 논리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커다란 사고가 나고 문제가 공론화돼서야 다시 규제에 대한 문제를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안전에 대한 제도적.법률적.문화적 접근이 모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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