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한다니 '1등 신붓감'이라더라""집에 오자마자 하는 일이 창고로 쓰는 보일러실을 확인하는 일""잘못된 이상향을 심어주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바로잡아야 하는 것"
여성에 대한 지나친 성적 대상화로 논란이 된 사진집. (사진=크라우드 펀딩 홈페이지 화면 캡처)
여성의 자취방을 주제로 한 사진집 크라우드 펀딩의 선정적인 사진을 계기로 온오프라인에서 여성들이 자취하며 느끼는 피해 사례가 연일 공론화되고 있다. "이게 여성의 자취방이다"라는 해시태그도 지난 1일 온라인에 새롭게 등장했다.
◇ '여성의 자취방'에는 수영복 입고 세탁기에 들어간 여성이?지난 2015년, 자신을 평범한 회사원에서 사진가로 전업했다고 밝힌 박 모 씨는 야한 옷차림의 여성이 세탁기 안에 들어가거나 속옷을 입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 등을 촬영해 올렸다.
박 씨는 이 사진들을 소개하며 "나만의 스타일에 욕심이 있다", "특별한 장소를 찾아갔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여성과 공간'을 주제로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상 속 공간을 담은 듯이 사진들을 소개했지만, 사진 속 여성들은 살갗을 드러낸채 바닥에 눕거나 수영복을 입고 세탁기에 들어가 있어 그의 주장과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 사진집에 SNS 여론 '관심'…"내 이야기다" 경험 공론화해시태그를 단 트위터 이용자들은 각자의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Wayn****'는 "(신혼집 초기에 있었던) 내 부인의 이야기다. 이전 주인이 여성 두 분이었다"며 "(우리가 이사한 후에도) 도어락 덮개가 자주 열려있었다. 뚜껑을 사람이 여는 구조라 누군가 열었다는 얘기"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내 부인이 혼자 산다고 생각해서인지) 두 달간 일은 반복됐다"며 "부인이 공포에 질렸고, 나는 더더욱 좀 노골적으로 내가 이 집에 산다는 걸 광고하듯 목소리를 냈다. (이후) 두 달이 지나자 그 일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yeok****'는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사람이 들어갈 일 없는 공간에서 선정적인 포즈를 취한 여성이라니. 그냥 야한 사진이다"라고 일갈했다.
'@soon****"는 "밤 늦은 시각에 밖에서 남자 두 명이 문을 두드리며 '불났다. 빨리 나오라'고 했다. 놀라서 나가려는데 다른 집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며 "뭔가 이상해 119에 전화해보니 우리 동네에서 신고된 화재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miru****'는 "해시태그를 쭉 읽어내리니 남자로 태어난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며 "미안할 정도다. 상상도 못해본 지옥이 펼쳐져 있다"고 적었다.
◇ "자취한다니 1등 신붓감이라더라…무섭고 황당"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자취를 현재 하고 있거나 자취 경험이 있는 이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자취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학생 오 모(22) 씨는 "남성이 같은 층에 내리기만 해도 다른 집에 가는 체하거나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고 다른 쪽으로 가게 된다"며 "하필이면 자취방 주제로 사진을 찍어서 이상한 판타지를 충족하는 이유가 뭐냐"고 일갈했다.
오 씨는 "이상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저런 사진을 보고 범죄의 동기로 합리화할 수 있다"며 "지나치게 성적으로 표현했다"고 꼬집었다.
대학생 피 모(25) 씨는 "처음 보는 남성들의 '어디사니', '고향이 지방이네. 자취하고 있니' 같은 말이 두렵다"며 "아르바이트 가게 사장님이 여자 아르바이트생들끼리의 자취 얘기를 듣더니 '1등 신붓감'이라더라"라고 토로했다.
피 씨는 "직원과 사장이라는 위치로 만난 건데 나를 '혼자 사는 여성'이라고 따로 분류해 이상한 말을 해대는 게 정말 불쾌했다"며 "집에 도착하면 하는 일이 보일러실에 사람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는 일일 정도로 스트레스 받으며 살고 있는데"라고 전했다.
피 씨는 사진집에 대해 "표현의 자유는 의식 수준이 따라가줄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며 "자취방 사진에 그 자유를 들이민다면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증빙"이라고 부연했다.
취업준비생 허 모(26) 씨는 "나는 그냥 길을 가는데 어떤 남자가 바지 벗고 집 앞까지 쫓아온 적이 있다. 그 남자는 내 얼굴을 기억해서 계속 나타나고 집 앞에서 기다렸다"며 "집 앞에서 길 물어본다고 부르더니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허 씨는 "사진집의 의도와 목적이 어찌됐든 단 한 명이라도 불쾌감을 느낀다거나 잘못된 이상향을 심어주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음지의 문화가 양지로 올라온 것…당연한 문제제기"
여성단체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2016년 10월 "1인가구여성, 이기적 선택은 있는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민우회 최원진 활동가는 9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여성 1인가구 거주자들은 성적 농담에 노출되는 게 두려워 '혼자 산다'는 얘기를 밝히지 않는 경향이 뚜렷했다"며 "'성적으로 쉽다'는 이상한 편견에 시달리기 싫어 특히 직장 등에서는 말하지 않는다더라"라고 덧붙였다.
최 활동가는 사진집에 대해 "음지의 문화가 양지로 올라와 정상인 척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2015년에 나왔던 일이 이제서야 논란이 된 이유는 최근의 페미니즘 말하기와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최 활동가는 "속칭 '어둠의 경로'로 올라오던 영상, 사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예술작품인양 올라온 데 대해 이제서야 여성들이 '불쾌하다'는 의견을 말하기 시작한 것으로 당연한 현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