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닭고기 진열대에서 한 시민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정재훈 기자)
"겁나서 뭘 못사먹겠어요"
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한 40대 주부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다 끝나기도 전에 구제역까지 덮치면서 시민들은 그야말로 '멘붕이 왔다'.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며 수입산을 선보인 계란에 이어 닭고기까지 이날 5~8% 올랐고 소고기와 우유, 돼지고기까지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
이정순(55·여·은평구 불광동) 씨는 "안 먹고 덜 쓰고 있다"면서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지 무섭고 지금으로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이마를 찌푸렸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닭고기 진열대. 9일 대형마트 3사는 일부 닭고기 제품 가격을 일제히 5~8% 올렸다. (사진=정재훈 기자)
물가도 물가지만 먹거리 안전은 더 걱정이다.
이 씨는 "고기 종류는 잘 안사먹고 치킨 배달도 끊었다. 대신 생선을 먹는다"고 말했다.
김은순(57·여·은평구 신사동) 씨도 "먹는 것에 예민한데 불안해서 계란도, 고기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매번 고민한다"고 토로했다.
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소고기 진열대 앞에서 시민들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정재훈 기자)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은 불안감이 더욱 크다.
14개월 난 손자를 데리고 마트를 찾은 김규나(60·여·은평뉴타운) 씨는 "손자 안전이 걱정돼 계란이나 고기를 완전히 익을 때까지 더 오래 삶거나 굽는다"면서 "안 먹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젖소가 구제역 걸렸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다.
김 씨는 "아기들은 그날그날 먹어야할 단백질 섭취량이 있어서 고기나 유제품을 꼭 먹여야 한다"면서 "생우유를 먹던 아이에게 분유를 먹일 수도 없고 대책이 없다. 앞이 깜깜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12월 김포 통진읍에 마련된 거점소독시설에서 방역 관계자가 조류 인플루엔자(AI) 차단을 위해 차량 소독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시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뚫리는 정부의 모습에 더욱 분통이 터진다.
이미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으로 위기대응시스템에 치명적인 허점을 보였던 정부는 탄핵정국 속에서 AI의 확산을 하릴없이 지켜봤다. 농가 사육 두수의 20% 정도인 3312만 마리를 살처분했지만 구멍난 방역망만 확인했다.
여기에 구제역 역시 허술한 백신접종 관리로 추가 확산 우려를 더하고 있다.
먹거리 불안에 물가 급등까지 총체적인 난국에 시민들은 할말을 잃고 있다.
김모(65·여·은평구 신사동) 씨는 "고온으로 조리하면 괜찮다고는 하지만 불안할 수 밖에 없다"면서 "시민은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데 정부는 뭐하는지 너무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윤석(32·남·은평뉴타운) 씨도 "시국도 어려운데 물가까지 이것저것 다 오르고 먹거리 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불만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50대 주부는 "너무 짜증난다"며 "환경미화원 아주머니가 한 말처럼 염병하는 것 같다"고 힐난했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대량생산만을 위한 열악한 사육환경과 왜곡된 유통구조 등의 개선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게 시민의 요구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치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