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총리(좌)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우)이 10일 백악관에서 미일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미 백악관 제공 영상)
‘협상의 기술’을 쓴 트럼프와 스스로를 ‘톱 세일즈맨’이라 부르는 아베가 만났다. 그래서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첫 시작부터 서로 주고받기식 거래가 두드러졌다.
일본은 미국에 거액의 투자와 일자리를 주고, 대신 미국은 센카쿠 열도와 관련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는 한편 일본과의 새로운 경제규범 논의를 허락했다.
현지시간으로 10일 낮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항행의 자유’라는 표현을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양국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며 이는 지역 내 항행의 자유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보다 구체화됐는데, 바로 중국과 일본이 다툼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야오)가 미·일 안전보장조약 제5조의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중국이 센카쿠 열도에 대한 무력공격을 감행할 경우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영유권 문제에 대해 일본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매우 매우 우선순위가 높다”고 발언하는 한편으로, “주일 미군을 받아들여줘서 일본 국민에게 감사하다”고 말해, 주일미군을 통한 일본 방어 의지도 재확인했다.
◇ 일자리 주고 센카쿠 받고대신 일본은 미국에 대규모 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보따리를 풀었다. 아베 총리는 “미국은 기회의 나라이며 이것이야말로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아베가 특별히 자동차 산업을 언급한 것은 일본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거둔 흑자의 80%가 자동차와 관련 부품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결국 자동차 기업들을 미국에 진출시켜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를 완화시켜주겠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앞서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미국에 70억 달러의 대미투자를 통해 미국에 7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갔다고 보도했다. 결국 경제를 주고 안보를 받는 이른바 ‘거래 외교’가 이뤄진 셈이다.
일본은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의향도 내비쳤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자기부상 열차기술로 이곳 워싱턴 디씨에서 트럼프 타워가 있는 뉴욕까지 한시간만에 주파할 수 있다”며 “일본의 첨단 기술이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 미국의 탈퇴로 힘이 빠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대신할 새로운 경제규범을 만들기 위해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소다로 일본 재무상 간의 공식 협의체를 만든다는 합의도 이끌어냈다.
◇ 아직 논의 안 된 문제도 많아...진짜 거래는 지금부터
그러나 통상협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이견이 표출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은 양국 경제 모두에 혜택을 주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상호적인 무역관계를 추진하기로 했다”며 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염두에 둔 발언을 내놨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통상협정과 관련해서는 기자회견 내내 ‘펜스-아소 협의체’를 거론하며, 미국, 일본과 함께 번번이 ‘아태지역’을 언급해 두 나라만의 FTA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는 모습도 보였다.
공동 성명에서는 ‘미일 동맹에서 일본의 책무 확대’ 부분이 명시돼 향후 일본의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증액될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발언이 나오지는 않았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일본의 인위적 엔저 정책을 두고 ‘환율조작’이라고 비난했지만 이 문제도 아직 논의 대상에 오르지는 않았다.
트럼프와 아베는 백악관에서 기자회견 직후 점심을 함께 한 뒤 에어포스 원을 타고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한 플로리다의 호화별장 마라라고로 향했다. 이들은 만찬과 골프회동을 함께하며 주말을 같이 보낼 예정인데, 협상의 달인과 톱 세일즈맨의 ‘진짜 거래’는 이 과정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