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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수필집 <뜬 세상에 살기에>(초판 복간+개정판)



책/학술

    김승옥 수필집 <뜬 세상에 살기에>(초판 복간+개정판)

     

    1977년 출간된 김승옥의 수필집 <뜬 세상에="" 살기에="">를 40년 만에 다시 선보인다. 예담에서 당시의 세로쓰기를 그대로 재현한 지식산업사 디자인 초판본과 가로쓰기로 새로 편집한 개정판을 동시 출간했다.

    <뜬 세상에="" 살기에="">에는 <산문시대> 이야기뿐만 아니라 김승옥의 ‘자작 해설’도 실려 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등 대표 작품들의 탄생 배경과 작가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들을 수 있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순천으로, 여수로, 남해로, 다시 여수로, 순천으로, 서울로…… 작가는 어려서부터 일제강점기, 여순 사건, 한국전쟁, 4ㆍ19 혁명 등 한국 현대사 속 굵직한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됐다. 그사이 타고난 감성은 내외적으로 더욱 예민해졌다. 줄 것이 ‘고통’과 그것에서 비롯하는 ‘초라한 상상’밖에 없다는 말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타인의 상처와 시대의 비극에 함께 아파하고 분노할 줄 알았던 청년 김승옥이 사람들에게 제안한 대처법은 고통을 함께하자는 것이었다. “고통을 함께하는 인간끼리는 행복하다”는 말만큼 지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이승만 하야!”를 외치던 민심의 분노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라앉지 않았다. 청년 김승옥의 수필이 긴 시간을 돌아와 다시 독자들을 위로한다.

    책 속으로

    본문 중에서(개정판)

    내가 소설을 잘 못 쓰는 이유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털어놓자면, 소설을 쓰는 동안 엄습해오는 비현실감 때문이다. 가령 아내가 현실적인 몸을 움직여서 현실적인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지어주는 현실적인 밥을 먹고 앉아서 형체도 없고, 있다고 믿기에도 자신이 서지 않는 이미지를 펜으로 붙잡아보려고 허둥대는 내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며 나 자신이 한 개의 깃털처럼 가벼운 허깨비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비현실감은 나로서는 아직은 견디기 힘들다. 거기에 비하면 차라리 소설이 안 써져 초조하고 불안하고 구상한답시고 밤을 새우고 하는 편이 훨씬 현실감이 있어서 견딜 만하다. 물론 하루빨리 그 비현실감에 견딜 만큼 익숙해져야 하겠지. 따지고 보면 소설을 쓴다는 것은 또는 시를 쓴다는 것은 결코 비현실적인 일이 아니고 비현실적으로 느끼는 것은 단순히 정신노동자들이 육체노동자들에 대해 본래 느끼는 콤플렉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그 비현실감을 이겨내지 않고서는 내가 작가가 된다는 것은 싹수가 노란 것 같다.
    ―41~42쪽

    소설가란 스스로 ‘이것이 문제다’고 생각하는 것에 봉사해야지 어느 무엇에도 구속당해서는 안 된다. 권력자나 부자의 눈치를 살펴서도 안 되고 동시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비위만 맞춰서도 안 된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다만 자기 가치에 비춰 문제가 되는 것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큰 변화가 없으나 그 선배의 마지막 충고 속에 항상 내 가슴에 궁금하게 걸려 있는 말이 있었다. “네가 진심으로 두려워해야 하고 미워해야 할 속물은 따로 있다”고 한 마지막 말이었다. (…) 그 후 때때로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뒤로 미루고 나 자신은 별로 ‘문제’라고 느끼지도 못한 채 다만 돈 때문에, 그리고 ‘이것이 대중의 문제다’고 남들이 주장하는 바람에 일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 선배가 말하던 ‘더 두렵고 더 미운 속물’이야말로 저 정체 없는 대중이고 동시에 그들이 돈을 주니까 그 대중에 봉사하는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되어 소름이 끼치곤 한다
    ―59~61쪽

    이청준은 고등학교 때 한 번 만났다. 그는 광주일고를 다녔는데 광주에 가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 친구가 방학 때 그를 데리고 순천으로 와서 만났던 것이다. 청준이를 데리고 온 내 친구를 통해 그가 중학교 때부터 가정교사를 하며 공부했다는 것, 전남 지방에서는 일류라고 하는 광주서중?광주일고에서 계속 수석을 해온 수재라는 것 등을 알았다.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때 그는 광주일고 학생회장을, 나는 순천고 학생회장을 했으므로 같은 학생회장이라는 사실로 나는 그에게 어린애 같은 친밀감을 느꼈다. 그런 친구를 생소한 사람들 가운데서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뜻밖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독문학을 할 친구같이 보이지 않았다. 전남 지방에 서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수재들은 대개 판검사를 목표로 법대에 진학하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청준도 그러려니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 할 친구로 생각했다. 내가 그런 뜻의 말을 했더니 그는 별다른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84~85쪽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학교에서 가르쳤고 그들의 학교생활을 시작한 4·19세대는 그들에게 ‘주권재민’ ‘삼권분립’ ‘정당정치’ ‘민주주의 정신은 페어플레이 정신’ 등등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어른들이 비록 입으로는 가르쳤지만 얼마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기들의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가를 모른 채 소박하고 순진하게 그것을 자기네 것으로 이해하였다. 한 개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첫 20년을 고스란히 동질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란 4·19세대 이전에는 없었다. 이 점에서도 4·19세대는 행복한 세대이고 그들이 받은 교육을4 ·19로써 구현해 볼 수 있었던 것도 행복한 일이다.
    ―93쪽

    집을 향해 밤길을 가는 동안 나는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마련해놓은 것의 초라함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의 집, 우리의 방도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맞아들이기에는 몹시 초라하다고 생각되었다. 아이가 가지고 놀 장난감, 아이가 볼 그림책, 아이가 앉아서 공부할 의자, 아이가 다닐 학교, 아이를 가르칠 선생님, 아이가 건너갈 한길, 아이가 놀 공원, 아이가 치료받을 병원, 아이가 드나들 관청, 아이를 보호해줄 제도와 법, 아이가 즐길 풍속, 아이가 살아갈 조국, 아이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 우리의 아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수없이 많지만 아이가 우리에게 보내는 완전한 믿음에 비하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둔 것들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볼품없는가! 그 초라한 것 중에는 우리의 문학도 끼어 있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아이에게 초라한 문학을 내밀지 말아야 하겠다.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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