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하지 않고 홀로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 바로 '미(未)혼부' 수가 1만여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주위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제도적 지원도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부모 가정, 그 가운데서도 철저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미혼부 가정의 실태를 통해 현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분유 훔칠 순 없어 구걸도 했죠" 극한에 몰린 '미혼부' ② "이 기저귀 몇 살 용이죠?" 육아정보 구걸하는 '미혼부' ③ '따가운 시선과 탁상행정' 사각지대로 밀려난 '미혼부' |
◇ 퇴폐업소에서 자란 사랑이…"엄마 사랑 못줘 미안"
어릴적 젖병을 물고 있는 사랑이 모습. (사진=사랑이 아빠 제공)
사랑이 아빠 김 모(40) 씨는 오늘도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렇게 돈을 아껴 4살 난 딸이 좋아하는 짜장면을 한 그릇이라도 사주고픈 마음에서다.
천 원짜리 한 장이 아쉬운 생활이지만, 그래도 요즘은 일이 끝난 뒤 어린이집에 사랑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서 행복을 느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 씨는 예방접종조차 제대로 시키지 못해 쩔쩔매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친모의 행방을 몰라 아이 출생신고까지 1년 이상을 허비한 게 컸다. 출생신고가 안 되니 예방접종을 비롯해 의료보험 혜택을 제때 받을 수 없었다. 김 씨는 "비용 마련 때문에 다음 예방접종 날짜가 아닌 금액부터 묻게 되더라"면서 "주사는 반드시 맞혀야하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10만 원씩은 항상 준비해 뒀었다"고 말했다.
하필이면 이때 김 씨가 구한 일자리가 퇴폐업소에서 카운터 일을 보는 것이었다. 담배연기가 스며드는 내실에서 사랑이를 눕히고 중간 중간 돌보는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먹고 살기 위해 사랑이를 몹쓸 곳에까지 데려온 것이 맘에 걸려 매일 하나님께 손 모아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고군분투했지만 김 씨는 결국 사랑이의 병원비를 버텨내지 못하고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사랑이의 폐에 물이 차 중환자실에 2주간 입원하게 됐고, 김 씨는 병원비를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당시 김 씨는 분유를 훔친 엄마가 선처를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똑같이 범행을 저지를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경찰이 친자등록이 안 된 딸을 자신과 강제 격리시킬까봐 두려워 그럴 수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김 씨는 길거리에 나앉아 구걸하는 신세에 이르렀다. 하루 벌이는 5만 원 정도로 적지 않은 액수였다. 김 씨는 "5만 원에 자존심도 버릴 수 있는 내 자신을 보고 아이를 학대하는 기분이 들어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랑이에 대한 책임감 하나로 다시 일어선 김 씨는 현재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 씨는 "아이에게 부모 둘의 사랑을 주지 못하는 고통을 줬는데, 여기서 양육마저 포기하면 또 잘못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소득 잡히면 지원 뚝…'전쟁터'로 내몰려
백화점에서 사랑이가 사진을 찍어주는 아빠를 향해 웃고 있다. (사진=사랑이 아빠 제공)
미혼부 김형진(33) 씨는 아이가 2살 될 때까지 퀵서비스, 대리운전, 카센터, 안테나 설치일까지 웬만한 일은 다 해봤다. 그러나 정규직 일자리는 없었다. 아이 때문에 유치원과 병원에 시도 때도 없이 불려가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말 그대로 '24시간 대기조' 인생이었다.
힘들게 돈을 모아 트럭운송일을 시작했다. 자신이 근무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만큼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갈 수 있어서다.
하지만 그것이 불행의 시작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트럭이 김 씨의 '재산'으로 잡히면서 '근무 능력이 있는 성인 남성'이라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대상에서 배제된 것이다. 일정 소득이 생기자 월 12만 원씩 주던 한부모가족 지원도 끊겼다.
김 씨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했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쿵푸학원에 등록했다. 원장에게 형들과 저녁 7시까지만 놀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렇게 3살 난 아이는 아빠 곁을 떠나 체육관에서 컸다.
6살이 된 아들은 다른 애들처럼 아침에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쓴 적이 없다고 한다. 김 씨는 "유치원을 가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이미 어린 나이에 알았던 것 같다"며 속상해 했다. 그러면서 "돈 많은 집안이 아닌 이상 누군가가 애를 혼자 키운다고 했을 때 바짓가랑이를 잡고 말릴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아빠는 단 한번도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걸 후회한 적이 없다. 김 씨는 "집에서 내 앞길을 생각해 아이를 입양 보내자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면서 "가족과 인연을 끊게 되는 한이 있어도 아이는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지금 바짝 벌어야" 친구집에 아이 맡기기도
서울 신촌에서 바텐더 일을 하는 고 모(37) 씨는 안정적인 육아 환경을 최대한 빨리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한다고 한다. 아픈 아이를 위해 빚을 내 산 자동차와, 대출받아 마련한 작은 집 때문에 정부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경남 마산에 신혼집을 꾸린 친구가 있어 갓 태어난 아기를 한동안 맡길 수 있었다. 매주 일요일 12시간씩 운전해 아이를 만나고 일터로 돌아갔다.
고 씨는 "4살 전에 바짝 벌면 아이와 다시 만났을 때 더 나아진 환경에서 당당하게 웃을 수 있을 거 같아 그날을 꿈꾸며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고 말했다.
놀이터에서 즐겁게 그네를 타고 있는 사랑이 모습. (사진=사랑이 아빠 제공)
취재진이 만난 미혼부들 대부분은 금전문제를 육아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가정을 꾸릴 형편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덜컥 아이를 가져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다,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정부지원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할 때 근로능력을 본다"면서 "남성은 일용직 노동만 해도 일정한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 정부보조금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