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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저귀 몇 살 용이죠?" 육아정보에 목매는 '미혼부'

사회 일반

    "이 기저귀 몇 살 용이죠?" 육아정보에 목매는 '미혼부'

    [미혼부, 아버지의 이름으로 ②] 미혼부 상대 안해주는 엄마들



    결혼은 하지 않고 홀로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 바로 '미(未)혼부' 수가 1만여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주위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제도적 지원도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부모 가정, 그 가운데서도 철저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미혼부 가정의 실태를 통해 현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분유 훔칠 순 없어 구걸도 했죠" 극한에 몰린 '미혼부'
    ② "이 기저귀 몇 살 용이죠?" 육아정보 구걸하는 '미혼부'
    ③ '따가운 시선과 탁상행정' 사각지대로 밀려난 '미혼부'


    ◇ 육아정보 얻기도 힘들어 "미혼부는 왕따"

    놀이공원에서 미혼부 조 씨와 딸이 즐겁게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 (사진=미혼부 조 씨 제공)

     

    경기도 성남시에서 딸아이를 키우는 조 모(35) 씨는 밖에서 자신을 미혼부가 아닌 '이혼남'이라고 소개한다. '어쩔 수없이 애를 떠안았다'라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싫어서다. 엄마들 사이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위축된 탓도 컸다.

    조 씨는 딸의 학예회에 가도 엄마들 기에 눌려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많다고 했다. 조 씨는 "엄마들이 삼사오오 모여 서로 아이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데 비해, 행사 때만 나타나는 자신은 끼지 못해 위축되기 일쑤"라고 말했다.

    한번은 돌아가면서 간식을 챙기는 날인데 학교 선생도, 다른 학부모도 귀띔 한번 해주지 않아 조 씨가 난처한 상황에 빠진 적도 있다. 다행히 조 씨의 친구가 급히 햄버거 세트를 유치원으로 직접 배달해줘 위기를 모면했다.

    미혼부 조 씨와 딸이 썰매장에서 즐겁게 썰매를 타고 있다. (사진=미혼부 조 씨 제공)

     

    조 씨의 소외는 온라인상에서도 이어진다. 조 씨는 한부모가족 인터넷 카페에 아이 개월 수에 따라 어떤 기저귀를 입혀야하는지 물었지만 아무 댓글도 달리지 않았다고 했다. 조 씨는 "미혼부라고 밝히면 항상 '무플(댓글 없음)'이었다"면서 "아이 혼자 키우는 처지인 건 미혼모와 다를 게 없는데 항상 왕따 신세라 서럽다"고 말했다.

    조 씨는 미혼모 행세도 해볼까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겠다는 생각에 관뒀다고 했다. 서로 오고가는 정보가 있어야 미혼모들 사이에서도 관계가 유지되는데 조 씨에겐 정보가 없으니 금세 들통 날 것이 뻔했다.

    올해 11살 난 딸의 장래 희망은 의사다. 하지만 조 씨는 변변한 학원 하나 알지 못한다. 뉴스에선 강남의 '돼지엄마'로 떠들썩하지만 조 씨에겐 '일반' 엄마들 상대하기도 버겁다. 조 씨가 할 수 있는 건 주말 코엑스와 킨텍스에서 열리는 학습박람회를 찾아 딸과 함께 적성검사를 받는 게 전부다.

    4살 난 아들을 홀로 키우는 고 모(37) 씨도 아이는 어리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애기 젖병 먹이는 방법과 트림시키는 법을 알고 싶어 엄마들 카페에 가입하려 했지만 남자라서 거절당했다고 했다. 고 씨가 기댈 곳은 교육방송과 책, 그리고 SNS에서 흘러 다니는 육아정보가 전부다.

    어린이집을 가도 주기적으로 만나는 엄마들끼리만 서로 얘기하기 바빴다. 부모교육수업도 나가봤지만 자신 혼자 남자라 멀뚱히 수업만 듣고 와야 했다. 고 씨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 찾아올 사춘기, 흔히 말하는 '중2병'이 도지는 시기가 제일 걱정이라고 했다.

    ◇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결국 소통 단절

    올해 홀로 키운 아들을 중학교에 보낸 김형진(33) 씨는 아들을 한번 제대로 안아볼 기회도 없었다고 한다. 둘이 같이 찍은 사진도 한 장 없다. 중학생이 된 아들은 아빠에게 잘 다가가지 않는다.

    미혼부 조 씨가 놀이공원에서 딸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미혼부 조 씨 제공)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낸 시간이 적었다. 생활고에 시달렸던 터라 어린 아들을 쿵푸학원에 맡겨가면서까지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했다. 자연히 육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최근 김 씨는 외로워하는 아들을 중학교 기숙사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김 씨에게 육아 의지가 부족했던 건 아니다. 인터넷 육아 관련 카페에서는 남자라는 이유로 게시글을 읽고 쓸수 있는 정회원으로 '등업(등급 업그레이드)'이 번번히 거절당했다. 김 씨는 "육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미혼부가 아이 어릴 땐 더 약자"라고 말했다.

    정부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김 씨는 자주 찾는 동사무소나 병원에 경제적 지원 설명서 하나 제대로 비치돼 있지 않아 유치원비와 방과후수업비 지원도 뒤늦게 서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직원들도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보단 서류만 떼어오라고 주문한다"면서 "그런 한국이 정말 진절머리 나게 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살 난 딸 사랑이를 홀로 키우는 김 모(40) 씨도 기존에 알고 지내던 교회 친구와 동창이 유일한 육아정보 창구라고 말한다.

    김 씨는 "특히 딸아이와 같은 경우 접근방법에서 분명 남아와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면서 "훗날 사춘기가 오면 아이가 아빠에게 속 얘기를 털어놓지 않고 혼자 끙끙 앓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혼부가 아닌 미혼부 '자식'을 바라봐 달라"면서 "정부가 미혼부들에게도 상담서비스나 미혼부 공동체시설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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