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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위로시, '괜찮아 다 사느라고 그랬는걸'



책/학술

    김연수 위로시, '괜찮아 다 사느라고 그랬는걸'

    김준연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

     

    사랑도 미움도 벗어나라
    환희도 괴로움도 놓아버려라

    괜찮아, 괜찮아 다 사느라고 그랬는걸 그것이 인생이잖아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제몫의 세상살이
    살아내느라 그랬는걸
    _<본문 중에서="">

    김연수 시인의 시집 '괜찮아 다 사느라고 그랬는걸'에는 유독 '기도'가 많이 나온다. 가족을 위한 기도, 삶을 위한 기도, 세상을 위한 기도. 그 기도는 시인의 언어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이 시집은 많이 내려놓고 더 낮은 곳에서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도와가며 살자고, 김연수 시인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쓴 시들을 엮은 것이다. 이 안에는 시인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가 있고, 시인 자신에게 하는 위로가 담겨 있다.

    이번 시집에는 2개의 연작시가 함께 담겨 있다. 직접 두 발로 히말라야를 걸으며 쓴 트레킹 연작시는 높은 고도를 오르며 느꼈던 삶의 무게, 잘 씻지 못하고 잘 쉬지 못하고 잘 자지 못했던 순간들이 인생의 스냅사진처럼 시 속에 녹아 있다.

    그리고 뒤이어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기도하듯 쓴 연작시가 함께 담겨 있다. 이 연작시에는 봄이 있고, 여름이 있고, 가을이 있고, 겨울이 있다. 1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를 쓴 시인의 목소리가 잘 담겨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시인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시와 함께 살았다. 수녀 시인으로 살았던 지난날, 그리고 목사의 아내로 영성지도자로 살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을 위해, 타인을 위해 희생하며 기도하며, 나누며 가졌던 마음들이 시로 다시 태어나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책 속으로

    “괜찮아 다 사느라고 그랬는걸.”
    이 한마디, 한 문장에 힘들고 아프고 슬프고 때로 멀어졌던 당신의 마음이 따뜻하게 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5p<작가의 말=""> 중에서

    너를 사랑해
    변치 않을 님의 한마디 말
    눈밭에 심었더니
    얼음장 밑 땅 속에서도
    뿌리 키우며 봄을 잉태하네
    -15p_<말의 씨앗=""> 중에서

    어제가 아무리 고달프고
    큰 걱정을 안고 잠들었어도
    어제는 이미 지나갔어요.
    이제까지 단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새로운 날
    오늘이 밝아왔으니까요
    -44p<오늘> 중에서

    꿈결에도 엄마는
    네 이름 부르며 기도하느니
    네가 걷는 길이
    먼먼 훗날
    인생의 마지막 해안에서
    네가 보기에도 네 생이 아름답기를
    너를 사랑하는 이들 눈에
    눈부시게 빛나기를
    성삼위 하나님 보시기에도
    천상의 빛으로 고귀하기를
    -51p<아들에게> 중에서

    휘적휘적
    산 등성이 오르며 내리며
    나는 지금
    내 인생의 몇번째 등성이를
    내려서고 있는 걸까
    오르고 있는 걸까
    -77p<트레킹2> 중에서

    주여, 7월엔
    사랑하며 살기에도
    너무나 짧은 한 생애에
    우리가 만나게 하신 뜻을 깨달아
    서로서로 작은 수호천사가 되어 주게 하소서
    -115p <7월엔 우리 서로서로> 중에서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168쪽 | 11,800원

     

    김준현의 첫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이 출간되었다. 김준현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뿌리 깊게 고정되어 있던 언어, 종교, 사랑이라는 가치들을 흔들고 의심한다. 그는 쓰였지만 보이지 않는 흰 글씨로, 합의되고 분류된 존재에 대해 ‘있지만 정말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시를 써 나간다. 인간성에 가 닿기 위해 인간으로부터 가장 먼 곳의 감각을 불러 온다는 점에서 김준현의 시 쓰기는 산책이 아닌 순례에 가깝다.

    나는 싫어와 실어를 함께 앓았지 머리카락속의 육, 육, 육을 고기, 고기, 고기로 읽고 싶은 날을 참고 나를 참으며 백팔 배를 해야 해 뱀이 빠져나간 뱀 허물의 수만큼, 평생을 벗을 무엇을

    (……)

    또 시를 썼니?
    나의 시어들, 나의 싫어는 나의 실언은 언제나 나의 시어들
    볼일을 보는 개처럼 말야
    볼일도 안 보려는 사람들의 얼굴을 말야

    ―「이 시는 육면체로 이루어져 있다」에서

    김준현의 비인간적 의식과 감각은 가장 먼저 언어로 향한다. 그는 익숙한 법칙대로 쓰인 단어들을 쪼개고 덧대어 새로운 의미를 증식시킨다. ‘싫어’와 ‘실어’와 ‘실언’과 ‘시어’처럼 닮은 동시에 다른 단어가 지닌 동일성과 이질성을 선연하게 보여 주는 식이다. 이것은 마치 집중하는 부분에 따라 오리로 보이기도 하고 토끼로 보이기도 하는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인접해 있으나 완벽하게 다른 둘을 자유자재로 떼었다 붙이는 김준현의 말놀이는 우연처럼 생겨 필연적으로 남는다. 놀이의 기발함으로 발생해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사유를 남긴다. 이 발랄하고 지적인 언어 감각은 그의 시를 따라 인간의 감각 바깥을 순례하며 인간을 탐색하는 이들의 걸음에 경쾌한 속도를 붙인다.

    두 갈래로 나뉜 이어폰이
    귀와 귀로 이어져 있다

    귀와 귀가
    어긋나는 젓가락처럼 어긋나는 가락처럼
    다른 귀와 닮은 귀

    (……)

    속으로 이어지는 두 가지 감정을
    하나의 감정으로
    믿고 사랑하다가 죽겠다고 말하는 단 하나의 감정

    ―「둘의 음악」에서

    하나이면서 하나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쓰기. 이것은 시인이 ‘인간적인 감정’에 대해 부정하며 감정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다. 시집의 2부, ‘둘’의 세계에서 사랑하는 이들은 동일한 기관이지만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양쪽 귀나 이어폰처럼 동시에 같거나 다르게 존재한다. 그는 함께인 것들에 대해 말하지만 함께 있음에도 각각 단독자로서 지닌 차이와 이질성에 주목한다. 둘이지만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의 속성이다. 그러나 시인은 사랑의 속성을 거부하며 사랑에 대해 말한다. 김준현이 그려 내는 사랑의 관계는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융합이 아니라 함께이면서 동시에 각자로 존재하는 공존이다. 언제나 사랑을 의심했던 섬세한 독자들에게, 이 멀고도 가까운 사랑의 속성을 권한다.

    책 속으로

    묵언도 수행이라면 우리는 태생부터 바람이었을까요, 몇 가지 손짓과
    눈빛으로 허공이 따뜻해질 때
    고개를 뒤틀다가 꽃이 피었고
    침대 시트를 물들이는 노을 맨몸을 드러낸 시신들이
    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시간
    ―「시간여행자」에서

    세계는 두 사람의 것인지도 몰라, 비가 내린 다음 날
    세계는 천천히 식어 가고
    세계는 겨우 두 글자로도 쓸 수 있지
    (……)
    이제 우린 둘이다 사람을 자주 바꿔 가면서 나는 둘이 되었다
    ―「음과 악」에서

    김준현 지음 | 민음사 | 188쪽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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