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울산 경부고속도로에서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참사가 빚어졌다. 달리던 관광버스가 불에 타 중국 여행을 마치고 울산으로 돌아오던 퇴직자 부부 등 10여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것. '울산 관광버스 화재 참사'로 불리는 이 사고는 전세버스 업계에 만연한 부조리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5개월여가 지난 지금도 안전은 뒷전이고, 버스운전기사들의 처우는 믿지 못할 만큼 열악하다. CBS노컷뉴스는 참사 이후에도 '여전한' 전세버스 업계를 다시한번 파헤쳐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10월 13일 오후 10시11분쯤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에서 달리던 관광버스에서 불이나 10명이 숨지고 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진=자료사진)
관광버스 참사 이후 일부 운전기사들은 울산 전세버스업계에서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했다. 이 신생 노조의 첫 번째 행보는 사고 책임에 통감하며 시민들을 향해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이처럼 운전기사들이 수개월 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이 사고를 낸 태화관광은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취재 결과 최근 태화관광은 부산의 한 관광버스 업체를 인수해 운행 버스를 더욱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전세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했던 오광호(62)씨는 지난해 10월 발생한 울산 관광버스 화재 참사를 떠올릴 때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다.
동료 운전기사에 의해 일어난 사고지만 같은 업종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망자에게 여전히 죄스럽다. 그래서 매일 사죄하는 마음으로 산다.
오씨는 지난달 울산 전세버스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했다. 운전기사들에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전세버스업계에 만연한 부조리를 없애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오씨가 노조를 세운 곳은 동진관광. 이곳은 지난해 사고를 낸 태화관광의 자회사다.
노조를 설립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관광버스 운전기사로서 지난해 참사에 대해 일종의 연대책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원들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들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사죄합니다. 저희의 책임입니다."◇사고 낸 태화관광은 사업 확장 중이달 17일 울산에는 버스 20대를 보유한 '대현관광'이라는 신규 전세버스업체가 들어섰다. 부산에 등록돼 있던 업체가 주소지를 울산으로 이전한 것이다. 전세버스업계는 이 업체가 4월 초부터 본격적인 운행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업체가 태화관광의 자회사, 바꿔 말하면 태화관광이 사실상 인수한 업체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실제 대현관광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태화관광과의 연결고리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취재 결과 울산시에 등록된 대현관광의 차고지는 북구 연암동으로, 태화관광과 같았다. 사무실 또한 태화관광과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상태다. 결국 사업주만 다를 뿐 대현관광은 태화관광이 인수한 자회사라는 것이 전세버스업계의 전언이다.
울산시 또한 두 업체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대표가 다르고 회사명도 전혀 다르기 때문에 두 업체가 법적으로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하지만 차고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미뤄 같은 계열사로 보인다"고 말했다.
태화관광과 대현관광이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모습. 전세버스업계는 태화관광이 최근 대현관광을 인수하는 등 대외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이상록 기자)
오광호 동진관광 노조위원장은 "전세버스 총량제 때문에 신규 업체 등록이 어려워지자 부산의 전세버스 업체를 사들인 뒤 대현관광으로 이름을 바꾸고, 울산으로 주소지를 옮겨 사업체를 확장했다"며 "대현관광의 대표는 태화관광에서 근무했던 간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태화관광 측은 대현관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태화관광의 한 간부는 "차고지는 협약에 따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두 업체는 별개의 회사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같은 건물에 사무실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최악의 기사 처우·안전불감증 여전동진관광에 근무하는 A씨는 지난달 회사로부터 문자 한통을 받았다. '근로 계약기간이 만료됨을 알린다'는 내용이었다.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는 3개월 촉탁직으로 일했던 A씨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수년째 일했던 회사를 떠나야 했다.
A씨는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촉탁직이 목숨을 이어가려면 회사의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며 "동진관광 노조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3명 모두 계약 만료 통보를 받고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고 말했다.
관광버스 운전기사의 열악한 처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관광버스 화재 참사 이후 처우 개선을 기대했던 운전기사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관광버스 운전기사 B씨는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하루에 8차례나 운행을 한 적이 있다"며 "차에서 2시간 가량 쪽잠을 자고 다시 운행을 하다보면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버스 화재 참사 당시 운전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들이 많아 기대를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회사가 더욱 치밀하게 기사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악의 기사 처우와 함께 전세버스업계의 안전불감증도 여전하다.
관광버스 화재 참사 이후에도 업체들은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낡은 차량을 별다른 조치 없이 운행시킨다. 체험학습에 동원된 버스에서 비가 새 초등학생들이 차량 내부에서 우산을 쓰는 웃지 못 할 일도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