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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 철학 우화, '몽유병자들'



책/학술

    칼릴 지브란 철학 우화, '몽유병자들'

     

    열망

    여기에 나는 앉아 있다. 형 같은 산과 누나 같은 바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우리 셋은 고독 속에서 하나다.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사랑은 깊고 강하고 기묘하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다. 그 사랑은 바다보다 깊고, 산보다 강하며, 광기보다 기묘하다.
    처음으로 회색빛 하늘이 개면서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우리 사이로 영원히 이어지는 무한의 시간이 지나갔다. 무수한 세계가 태어나서 자라고 또 죽어 가는 것을 보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열정적이고 젊고 젊다.
    열정적이고 젊디젊지만 우리에게는 반려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끊임없이 반쯤은 서로를 끌어안고 있어도 우리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억제된 요구와 나갈 길 없는 열정에 어찌 만족이 있겠는가?
    언제나 누나의 자리를 데워 줄 불타는 신이 찾아올 것인가? 어떠 비바람의 여신이 형의 분화를 잠재울 것인가?그리고 어던 여인이 내 마음을 빼앗을 것인가?
    밤의 정적 속에 잠든 누나는 아직 보이지 않는 화염의 신 이름을 중얼거리고, 형은 저편에서 올 차가운 여신을 나직한 목소리로 부른다. 그러나 잠에 빠진 내가 누구를 부르는지 나는 모른다.
    여기에 나는 앉아 있다. 형 같은 산과 누나 같은 바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우리 셋은 고독 속에서 하나다.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사랑은 깊고, 강하고 기묘하다. (59~60쪽)

    '몽유병자들'은 칼릴 지브란이 남긴 세 권의 우화집 '미친놈' '선구자' '나그네'를 한데 엮은 것이다. '미친놈'(The Madman)에 실린 우화들에는 인간의 악의·위선·불의·야망·순응·맹목성 등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교훈이 담겼다. 그래서 읽다 보면 마음을 들킨 듯 얼굴이 붉어질 때가 있고, 미처 몰랐던 의식 너머의 세계로 가만히 이끌리기도 한다.

    '선구자'(The Forerunner)의 시와 이야기들은 우리의 깊은 내면을 일깨워 속속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3주간에 걸쳐 쓴 '나그네'(The wanderer)의 이야기들은 칼릴 지브란 " 자신이 선량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하루하루의 고통으로부터 나온" "그가 걸어온 길의 먼지와 인내로 이루어진" "조용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로, 독자들을 깊은 사유의 세계로 인도한다.

    지브란의 자화상과도 같은 "가진 것이라고는 겉옷과 지팡이 하나와 얼굴에 내리깔린 고통의 베일뿐"인 '나그네'의 모습에서 인생의 쓸쓸함과 더불어 고뇌하며 살아온 사람만이 풍기는 따뜻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칼릴 지브란의 우화들은 인생의 아이러니와 존재의 모순, 거기에서 비롯되는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음, 소통과 관계의 어려움과 쓸쓸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야 하는 생의 절대고독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 실린 우화들은 헛헛한 웃음과 함께 아하! 하는 맑은 깨우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책 속으로

    내가 사는 마을에 잠을 자며 거리를 방황하는 모녀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정적이 이 세상을 감싸고 있을 때, 잠든 채
    걷던 어머니와 딸이 안개로 뒤덮인 집 정원에서 만났다.
    어머니가 말했다.
    “드디어, 드디어, 여기서 만났구나. 이 원수! 너는
    내 청춘을 짓밟고 내 허물어진 육체 위에 너의 생명을 꽃피웠다!
    죽여 버리고 싶어!”
    그러자 딸이 말했다.
    “아아, 이 꼴 보기 싫은 늙어빠진 여자!
    내 자유를 산산이 부수어 버린 계집! 내 인생을 별 볼일 없는
    네 인생의 복제판으로 만들었잖아. 너 같은 건 죽어 버리는 게 나아!”
    그때 수탉이 때를 알리자 두 사람은 눈을 떴다.
    어머니는 부드럽게 말했다.
    “아, 너였니?”
    딸도 얌전하게 대답했다.
    “응, 엄마.”
    -‘몽유병자들’ 중에서

    옛날에 힘세고 현명한 왕이 위라니라는 도시를
    통치하고 있었다. 왕은 그 힘으로 위엄을 세웠고,
    현명함으로 사랑받았다.
    그 도시 중심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물은 차갑고
    수정처럼 투명했다. 주민과 왕과 신하들은 모두
    그 물을 마셨다. 그 도시에는 다른 우물이 없었으므로.
    어느 날 밤 모두 잠든 사이 마녀가 조용히 도시에
    스며들었다. 마녀는 우물에 이상한 액체를 일곱 방울
    떨어뜨리며 말했다.
    “이제 이 우물물을 마시는 자는 모두 미쳐 버릴 것이다.”
    다음날 아침 왕과 시종장을 제외한 도시의 주민 모두가
    우물물을 마시고 마녀가 말한 대로 미쳐 버렸다.
    그날 모두 미쳐 버린 주민들은 길거리나 시장에 모여 이렇게 수군댔다.
    “왕이 미쳤어. 시종장도 미쳤어.
    이렇게 미친 왕의 지배를 받을 수는 없지. 왕을 퇴위시키자.”
    그날 저녁, 왕은 금잔에 우물물을 떠오라고 말했다.
    잔을 받은 왕은 단숨에 물을 마셨다.
    왕에게 잔을 받아든 시종장도 그것을 마셨다.
    그리하여 위라니라는 도시에는 다시 커다란 환희가
    터져 나왔다. 왕과 시종장이 제정신을 찾았으므로.
    -‘현명한 왕’ 중에서

    옛날 아흐칼이라는 고도에 두 학자가 살았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의 학식을 혐오하고 경멸했다.
    한 학자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고, 다른 학자는 신을 믿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시장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은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해 논쟁을 시작했다.
    몇 시간이나 논쟁을 벌인 다음 그들은 헤어졌다.
    그날 밤 무신론자는 사원으로 나아가 제단 앞에 엎드려
    신의 길에서 벗어났던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렸다.
    같은 때, 신을 믿었던 학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많은 성전(聖典)을 불살라 버렸다.
    그는 무신론자가 된 것이다.
    -‘두 학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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