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열공 우리말'이라는 책이름은 '국어 실력 열 배로 늘려주는 우리말 공부'에서 나온 제목이자 우리말을 '열심히 공부하자'는 중의적 의미도 담고 있다.
이 책은 우리말에 대한 130가지 질문과 답을 통해 1천여 표제어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다시 그 표제어와 분류별, 유형별, 실생활 사용례별로 연관된 1만2천여 단어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설명한 우리말 어휘 공부의 보고이다.
이 책은 하나의 제시어에서 시작해 그에 대한 궁금증과 지식을 풀어가면서 관련되는 수십 가지 우리말 어휘를 익힐 수 있게 구성했다.
예를 들어 302쪽을 보자. ‘담배가 기호 식품이라는데, 정말 식품이긴 한 건가요?’ 라는 질문에 이 책은 먼저 ‘기호품’의 정의를 자세히 알려준 뒤, 찾아온 손님에게 담배 한 대를 권하며 인사를 나누는 옛 풍습에서 나온 ‘대객초인사(對客初人事)’라는 말을 설명한다. 피우면 걱정 근심을 잊는다는 뜻으로 ‘망우초(忘憂草)’, 심심풀이로 피우는 풀이라서 ‘심심초’ 등 담배 자체를 일컫는 어휘를 익힐 때쯤이면 어느덧 ‘담뱃대’, ‘물부리’, ‘고불통’ 등 흡연 기구에 대한 낱말을 지나 ‘골초’, ‘철록어미(담배를 쉬지 않고 늘 피우는 사람을 놀리는 말)’, ‘담배씨네 외손자(성질이 매우 잘거나 마음이 좁은 사람의 비유)’ 등 흡연자를 지칭하는 낱말과 ‘담배씨로 뒤웅박을 판다’ 같은 흡연에서 비롯된 속담과 관용어까지 익힐 수 있다. 결국 담배라는 제시어에서 시작한 설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담배와 관련한 낱말, 속담 등 45가지 우리말 어휘를 상세히 이해하는 구성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우리말의 개념을 바로잡아 밝히는 데 특히 공을 들였다. 풍부한 어휘가 국어 실력의 세포들이라면, 정확한 개념은 우리말의 뼈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책의 첫 질문과 답은 ‘비행기를 우리말로 하면 날틀이 됩니다’라는 문장에 담긴 오류를 풀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많은 한국인들이 국어, 우리말, 순우리말, 한자어, 외래어, 표준어 각각의 개념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우리말과 순우리말(토박이말)을 같은 말로 착각하기 쉬운데, 두 말은 서로 다른 뜻을 지닌 말들이랍니다. 비행기나 철수를 飛行機나 哲秀로 적으면 우리말이 아니지만(외국어이지만) 비행기나 철수로 적으면 우리말입니다. 한자어와 외래어는 한글로 적으면 우리말이 됩니다. 이를테면, 알파벳으로 적은 bus는 외국어이지만 한글로 적은 버스는 외래어로서 우리말에 듭니다. ...(중략)... 다만,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한다고 해서 모두 외래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어심의회에서 심의를 거쳐 외래어로 인정을 받으면 국립국어원이 발간·관리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오릅니다.
이런 식으로 책의 1장은 표준어와 비표준어를 2장은 옛말, 북한어, 사전에 오르지 못한 토박이말 등 공인받지 못한 우리말의 내력을 3장은 우리말의 중요한 원천인 한자어를 4장은 우리말에서 점차 비중이 높아지는 외래어를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1장부터 4장까지를 읽으면 국어라는 넓은 바다가 어떻게 구성된 세계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5장부터 8장까지는 먹을거리, 식생활, 생활 용어, 동물과 관련된 말, 단위 등 일상에 켜켜이 쌓인 우리말의 깊은 자취를 더듬는다. 자주 접하면서도 그 뜻이나 유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말들을 비롯해 몇 가지 단어만 사용하던 언어 생활을 풍성하게 해줄 수많은 어휘와 국어 지식을 다룬다. 5장~8장의 이 후반부는 대륙붕처럼 얕은 바다에서 깊은 심해까지 국어의 바다에 얼마나 다양한 층위가 있는지 알려준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을 보면 주인공 이강모와 허효원의 첫날밤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신부 효원은 다리속곳, 속속곳, 단속곳, 고쟁이를 입고 그 위에 또 너른바지와 대슘치마, 무지기를 입고서 마지막으로 다홍치마를 입은 것으로 되어 있지요. 모두 해서 여덟 가지인데, 겉치마인 다홍치마를 빼도 속옷만 자그마치 일곱 가지가 됩니다. 소설 속에서 표현된 대로 “몇몇 겹으로 싸고 감”은 탓에 신부는 마치 옷을 “갑옷처럼 입고 앉은” 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대슘치마, 무지기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나면, 무지기를 입고서 그처럼 앉아 있는 일이 실제로 가능할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겨야 하겠지만요. (412쪽)
이 책에는 또한 마디마디에 60여 항목의 ‘덤’을 두어 우리말에 관한 뜻밖의 재미와 정보를 선사한다. ‘역사로 보는 우리말 팔자’(24쪽), ‘성서에 북한어 표기가 상당수 들어간 까닭’(99쪽), ‘한자어의 경제적 조어 능력’(124쪽), ‘한국인 열의 아홉이 실수하는 외래어’(267쪽), ‘엉덩이/궁둥이/방둥이는 어떻게 다를까?’(288쪽), ‘마블링과 소고기 등급 이야기’(495쪽), ‘탕과 국은 어떻게 다른가?’(540쪽), ‘낱말 안에서 글자의 순서’(589쪽),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말’(591쪽), ‘옥스퍼드 콤마’(602쪽) 등 평소에 궁금하거나 알쏭달쏭했던 문제들, 한국어의 현황과 역사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흥미진진한 외전(外傳)처럼 펼쳐진다.
'열공 우리말'은 영어 환경에서 도리어 국어의 필요성을 느끼고 모국어를 천착해온 저자의 30년간 우리말 농사의 알곡을 담았다. 1장부터 체계적으로 읽으면 우리말 개념이 바로잡히고, 어느 페이지나 내키는 대로 펼쳐 읽어도 꼬리를 무는 국어 지식과 어휘 실력을 가외로 얻을 수 있다. 초심자부터 국어 공부를 제대로 깊게 해보고자 하는 독자 모두에게 넓고 깊은 우리말의 바다를 자유로이 헤엄치는 기쁨을 알려줄 책이다.
책 속으로이와 같은 경우가 “속상한 일이 있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들쑤시거나 부추기는 것”을 뜻하는 염장을 지르다입니다. 염장에는 다양한 뜻이 있는데, 염장1(炎?, 더운 지방의 개펄에서 나는 독한 기운)과 염장2(鹽醬, ①소금과 간장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음식의 간을 맞추는 양념의 총칭)이 대표적이지요. 염장을 지르다에 쓰인 염장은 염장2의 “소금과 간장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그렇잖아도 상처/생채기 때문에 쓰라려 죽겠는데 거기에 소금과 간장을 지르니(뿌리니), 오죽하겠느냐는 것입니다. (64쪽)
우선 답부터 말씀드리면 묘령(妙齡)이란 방년(芳年)과 마찬가지로 “스무 살 안팎의 여자 나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묘령의 중년 여성”이란 표현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지요. 방년(芳年)에는 스무 살이라는 나이 외에도 한창 꽃답다는 뜻이 더해져 “이십 세 전후의 한창 젊은 꽃다운 나이”를 뜻한답니다.
[해설] 묘령 운운한 사람은 어쩌면 질문자가 추측하신 대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여인에게 알맞은 말일 듯해서 그런 추정만으로 썼을지도 모르지만, 묘령은 엄연히 스무 살 안팎의 나이를 뜻하는 말이랍니다. 이처럼 잘못된 뜻으로 묘령을 써야 할 경우에는 “나이를 짐작하기(가늠하기) 어려운” 등으로 쉽게 풀어 쓰면 도리어 의미가 명확해지죠. (148쪽)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