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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문답: 어느 자유주의자의 절규'



책/학술

    '의산문답: 어느 자유주의자의 절규'

     

    조선 계몽사상의 중심에는 담헌 홍대용이 있었다. 홍대용이 저술한 '의산문답'은 당시의 시대정신과 계몽철학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전범이었다. 홍대용은 허자와 실옹을 등장시켜 기존의 주술적 사고와 비과학적 습속을 무찌르는 대화록을 만들었다.

    주자성리학의 주술사회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의 과학철학자 홍대용은 이렇게 절규했다.

    “경계에 서서 바라보면 당신의 학문도 거짓일 수 있다.”
    “만물은 동등하다. 하늘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라.”
    “모두가 중심이다. 둥근 지구에 중심세계는 없다.”
    “음양오행과 점성술의 미신에서 깨어나라.”
    “중화는 없다. 화이론의 허구를 직시하라.”

    '의산문답'은 조선시대 사상계를 지배하던 학문풍토와 기성사상에 대한 저항을 넘어 새로운 과학적 안목을 보여준 책이다. 이 책은 조선실학사상의 진보적 흐름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담헌은 어떻게 우주자연의 과학적 진실을 알게 되었을까? 담헌은 어떻게 그런 과학적 세계관으로 기존의 성리학적 질서를 재구성하고자 했을까? 당시의 시대정신으로 보자면 담헌은 이단자였다.

    지금 우리는 기존의 지배사상과 새로운 염원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한 한 철학자의 심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철학작가 이종란의 통찰력으로 재탄생한 의산문답은 진실과 거짓의 대화를 통하여 허위와의 화해와 시대정신의 진수를 모색하고자 노력하였다.

    책 속으로

    이 글에서 우리는 저자 자신이 공부한 학문이 남과 통하지 않거나 현실의 적용에서 균열이 생긴 변화된 세계를 읽어낼 수 있다. 담헌은 고학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성리학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유교적 전통을 이은 학문까지 공부했다고 본다. 이제는 그런 공부가 통하지 않는 세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불안감을 행간에서 읽어낼 수 있다.
    “주공(周公)이 쇠약하였는가? 사리에 밝은 사람이 없어졌는가? 우리의 도가 거짓된 것인가?” 주공은 주나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다. 조카인 어린 성왕을 도와 주나라 문물과 제도의 기본 틀을 완성한 사람이다. 여기서 말한 '우리의 도'란 바로 유교문명을 말한다. 그가 이렇게 한숨 쉬며 탄식한 말은 자신의 문명에 절망하고 아울러 전통학문이 현실에서 점점 외면당하고 있다는 조짐을 예견한 불안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본문 44쪽에서

    사실 상대주의적 관점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인간의 편견을 다소라도 수정하게 만드는 데는 이만한 입장도 드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객관적 입장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또 다른 방식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수긍하게 하는 데는 차라리 상대적인 관점으로 말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객관성을 빙자하여 절대성을 강조하는 사상이나 종교는 그 나물에 그 밥, ‘도긴개긴’이다. 그래서 장자사상이 서양과학을 저항 없이 부드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매개물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서학의 수용에 따른 반발이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로서 말이다. -본문88쪽에서

    바로 여기서 담헌이 지구가 자전한다는 지전설(地轉說)과 우주가 무한하다는 무한우주설을 제기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담헌이 단지 서양과학을 따르고 모방했다고만 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지만, 또 그 영향으로 전통적인 기(氣)와 음양오행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모, 그에 따른 주자성리학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 나아가 사회나 역사관에서도 생각이 바뀌기도 하였다. 이 점이 바로 이 『의산문답』의 흐름을 이끌어 가고 있다. -본문 112쪽에서

    여기서 담헌이 허자의 입을 빌어 한 말 가운데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종교관을 읽어낼 수 있다. 비록 도교에 한정해 말했지만 나는 그것이 모든 종교에 예외 없이 적용된다고 믿는다. 우선 내가 생각하기에는 대부분 고등종교의 실천적 과제는 한 마디로 ‘자기를 비움으로써 수행하는 삶’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욕망으로 가득 찬 자기마저 부정하지 못하고 현실적 자아가 영생불사하려는 욕망을 갖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역설적으로 말해 현실적 자아인 내가 죽어야 산다. 본문 213쪽에서

    그렇다면 담헌은 도대체 이것으로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이 『의산문답』에서 직접 언급하는 말이 없기 때문에 두 책에 공통된 정신을 반영한 내용만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농민들에게 토지를 골고루 나누어주며 세습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당시의 생산수단으로 보면 토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토지가 부자나 권세가에 집중되어 부가 세습되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본문326쪽에서

    이종란 지음 | 한국설득연구소 | 413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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