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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친박세력 집회를 '태극기 집회'로 불러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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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우 친박세력 집회를 '태극기 집회'로 불러도 될까

    언론노조 "태극기가 주는 긍정의 느낌 먼저 전해질 수 있어"… 다른 용어 제안

    (사진=황진환 기자)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거부'하는 뜻을 전하기 위해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묘사하며 그를 옹호하는 세력이 있었다.

    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나옴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기에 '태극기 부대'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들이 여는 집회 역시 자연스럽게 '태극기 집회'로 불렸다.

    단순히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계엄령을 선포하라거나 군대가 일어나야 한다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억지를 마치 '타당한 의견'인 양 쏟아내는 세력이 '태극기 부대'로 불리면서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졌다.

    3·1 운동이나 87 민주화 항쟁 등 독립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나타냈던 태극기가 갑자기 일부 극우 친박세력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태극기 집회'라는 명명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이하 언론노조) 역시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극기 집회'라는 표현의 위험성을 짚는 논평을 1일 발표했다. 언론노조는 현재 올라오는 기사들이 '후대에도 읽힐 역사의 기록'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친박 집회' 혹은 '성조기 집회'라는 말로 대신할 것을 제안했다.

    다음은 전국언론노동조합 논평 전문.

    [논평] 기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적 ‘태극기 집회’라고 쓰십니까? 후대에도 읽힐 역사의 기록임을 잊지 말아 주세요

    <*'태극기 집회' 용어 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편지글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 3월 10일 헌재의 대통령 파면, 3월 30일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4개월여 동안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해외에서도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 기사는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돌아보면 이렇게 오랜 시간 긴장의 밀도가 높은 기사가 끊이지 않고 나온 적이 없었단 생각이 듭니다. 이제껏 촛불 집회와 탄핵 반대 그리고 이젠 친박이라 불릴 수밖에 없는 집회 현장을 집회 참가자보다 더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온갖 욕설과 폭행까지 당했던 기자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뉴스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에 기자들의 공이 크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헌재의 대통령 탄핵 판결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것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며, 취재를 하는 것 역시 진보와 보수와는 무관한 기자의 소임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기자가 촛불 집회와 친박 집회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취재를 하고, 이를 기사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사는 역사의 기록이며, 기자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란 말을 하지요.

    기사 한 줄이 쉽게 쓰여서는 안 되는 이유, 그리고 기사의 가치와 기자의 소임이 역사란 단어와 맞물려 묵직하게 느껴질 만합니다.

    누구 한 사람 이를 부정하지 않을 테지요.

    그래서 오늘은 ‘논평’을 통해 꼭 한 가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얘기를 하려 합니다.

    앞서 밝힌 기자는 사관이란 명제적 아포리즘이 전제가 됩니다. 우리가 적은 글을 후대가 읽을 것이란 얘기지요.

    지난해 12월 아니, 그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과 관련한 기사에서 촛불을 든 탄핵 집회는 ‘촛불 집회’라 불리어 왔습니다. 기사에도 그리 쓰였지요.

    반대로 반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 그리고 지금은 친박으로밖에 불릴 수 없는 집회는 ‘태극기 집회’라 적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까지 되었음에도 친박 집회에 참여한 분들은 여전히 손에 태극기를 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4월 1일자 기사에도 ‘태극기 집회’란 말이 등장하더군요. 하지만 이젠 ‘태극기 집회’라고 적는 기사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사진=황진환 기자)

     

    ‘태극기 집회’란 명칭은 그 전에도 논란이 있었지만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어야 하는 3.1절을 앞두고 정말 많은 반대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라 보입니다.

    기자 수업을 받을 때가 떠오릅니다. 기사에 이, 그, 저 등의 대명사는 쓰지 마라. 많다, 적다 등의 단어가 아니라 숫자로 정확히 써라. 등 익숙하지 않은 기사문의 특징 때문에 힘들었고, 혼도 많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구구절절 그 가르침이 맞습니다.

    그때 배운 기사문의 특징 중 하나가 ‘태극기 집회’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쁘다’, ‘지저분하다’와 자체로 긍정과 부정의 가치를 담은 용어를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논문 등에 가치중립적 단어를 선택하라는 말과 같은 이유지요.

    ‘태극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긍정적으로 다가옵니다. 굳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태극기란 말을 듣는 누구나 경건해지죠. 이는 군사 정권 시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 태극기 도안을 옷이나 상품 디자인으로 활용해 경건함의 무게를 친근함으로 옮겨 보자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 결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태극기 물결이 장관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젠 태극기가 그려진 멋진 옷을 만나는 일도 일상이 되었지요. 아주 오래 전 성조기가 그려진 옷이나 신발이 멋있어 보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태극기 집회’라고 하면 집회란 단어가 주는 긴장감과 달리 ‘태극기’가 주는 긍정의 느낌이 먼저 전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집회 현장에서 나오는 욕설과 서슬 퍼런 구호가 먼저 떠올라 오히려 거북하게 읽힌다는 독자가 훨씬 많지요. 도대체 ‘태극기’와 집회 참가자들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언젠가 이 지독히도 긴장감이 가득했던 2017년이 한참 지난 뒤 후대가 지금의 기사를 접할 때 어떨까요?

    모든 단어와 문장이 가치 중립적으로 잘 쓰여 있더라도 ‘태극기 집회’란 이름 하나만으로 애국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지금 친박 세력이 단어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해 사용하는 것과 참으로 비슷합니다.

    논리학 수업 때 배운 논법을 억지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① 태극기를 들면 애국이다.

    - 뭐 억지 같지만 ‘독립 운동’이 떠오르니 인정할 수도 있겠네요.

    ② 태극기를 들고 친박을 외친다.

    - 엥? 왜 태극기를 들지란 질문이 듭니다. 그러나 태극기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니 손에 드는 걸 막을 순 없네요.

    ③ 태극기를 든 친박은 애국자다.

    - 친박 집회에 나온 분들의 주장입니다. 누가봐도 억지네요. 박 전 대통령은 탄핵에 구속까지 되었잖아요. 태극기를 들고 친박을 외치는 건 막지 않겠지만 애국자란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태극기 집회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과 먼 시간 뒤에 우리의 후손이 ‘태극기 집회’란 말을 접할 때 느낌은 비슷할 것입니다. 단, 외국인에게 태극기는 우리 후대보다 훨씬 가치 중립적인 단어입니다. 사실 이도 맞는 말은 아닙니다. 모든 국민은 국기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게 마련이니까요.

    ‘촛불’도 가치 중립적이진 못하다고요? 그건 여러분이 촛불을 들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후대는 촛불이란 단어를 지금처럼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촛불 집회 초기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란 말처럼 오히려 나약하게 생각하겠지요.

    이제껏 우린 ‘친박 집회’를 ‘태극기 집회’로 적었고, 이를 본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태극기 집회’란 단어는 쓰지 않기로 하지요.

    사실 욕심 같아선 인터넷에 남은 예전에 썼던 기사들의 ‘태극기 집회’란 단어도 ‘친박 집회’란 말로 바꿔 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건 또 다른 논쟁이 필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현장을 지킨 기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모두가 기자 수업 때를 기억해 이제라도 ‘태극기 집회’란 단어는 쓰지 않기를 당부합니다.

    바꿔 쓸 단어가 없다면 차라리 ‘성조기 집회’라 쓰면 어떨까요? 성조기를 정말 많이 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미국의 깃발을 왜 들고 있는지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으니 이것도 안 되겠네요. 기자가 이해할 수 없는 건 기사로 쓰면 안 되는 것도 기자 초년병 때 귀가 닳도록 듣던 말이니.

    사족처럼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의 삼성동 이층집은 ‘대통령 사저’가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자택’이 맞습니다. 그건 이유를 밝혀 적지 않겠습니다. 다 아실 테니.

    고맙습니다.

    2017년 4월 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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