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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여배우 김윤진이 '개척자'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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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인 여배우 김윤진이 '개척자'로 살아가는 법

    [노컷 인터뷰 ②] "난 시대가 만든 사람…여성 중심 영화 꾸준히 제작돼야"

    영화 '시간위의 집'에서 미희 역을 연기한 배우 김윤진.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길목 앞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겁이 나 뒤돌아선다. 그래서일까. 그런 길을 걸어 온 김윤진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당당한 믿음이 있었다. 대중이 김윤진을 한국 배우 중 '선구자적인' 인물로 평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제가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시대가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만약 제가 늦게 태어났다면 '쉬리'라는 영화에 참여할 수 없었겠죠. 당시에는 '쉬리'가 정말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영화였어요. 주도적으로 뭔가 바꾸는 시대에 태어났으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다고 봐요. 가능성이 하나 트이니까 운 좋게 기회를 잡았고, 또 동양 배우들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된 거죠."

    18년 전 '쉬리'는 지금의 김윤진을 있게 한 작품이지만, 그는 좀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길 원했다. 최근에야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동양인에 여성인 김윤진에게는 시작부터 핸디캡이 주어진 셈이었다. 그럼에도 김윤진은 '로스트'라는 기회를 잡았고, 이후 '미스트리스' 시리즈로 확고히 기반을 다졌다.

    "미국 활동에 대한 자부심은 크죠. 이제 더 이상 동양인 캐릭터를 드라마 안에서 본다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제가 어렸을 때는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희귀한 장면이었죠. 처음으로 한국인 캐릭터가 주요 인물인 '로스트'라는 드라마를 만났고, 그래서 더 애로 사항이 많았어요.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캐릭터는 안 된다고 계속 제작진에게 이야기했죠. 틀린 한국말도 다 수정을 했고요. 상황적으로 그렇게 지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영화 '시간위의 집'에서 미희 역을 연기한 배우 김윤진.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시즌제 드라마에 참여하다보니, 한국에서는 3년 정도의 공백기를 가졌다. 김윤진도 보통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할 만한 작품만 있다면, 얼마든지 뛰어드는 성격이다. 다만 그런 작품이 현저히 적었다는 것이 문제다.

    "바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이 그렇게 많이 없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봤을 때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들에 나오고 싶었거든요. '이웃사람'이나 '하모니'처럼 단독 주연이 아닌 영화도 많이 했는데 찾기 어렵더라고요. 제가 갖고 있는 선택권 안에서 그나마 다양성 있는 영화를 찾다 보니 공백기간이 길어지고 그런 부분이 확실히 있네요."

    김윤진은 '언제나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한국 영화 현장과 미국 영화 현장을 가리지 않고, 작품만 좋다면 중소 영화까지 촬영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배급 때는 눈치 싸움이 대단하더라고요. 여태까지 제가 잘해서 영화가 다 잘된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죠. 힘이 있는 배급사에서 했을 때 특혜를 받은 부분이 작은 배급사에서 하게 되면 또 반대 급부로 다가오는 거예요. 이런 식의 싸움이 늘 있었다는 걸, 그 상황이 아니었으니 몰랐어요.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미국식을 고집하면 여기에서 작업 할 수 없죠. 오히려 미국 드라마 환경보다 노동 시간은 짧아졌어요. 한국은 12시간에 배우 준비 시간까지 포함을 시키더라고요. 예산이 적다 보니 촬영을 많이 할 수 없어서 보통 영화가 40회차 정도 찍는데 25회차에서 촬영이 끝났어요. 긴장을 놓칠 수가 없었고, 현장에서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네요."

    영화 '시감위의 집'에서 미희 역을 연기한 배우 김윤진. (사진=페퍼민트앤컴퍼니 제공)

     

    미국에까지 영역을 넓인 여성 배우로서 한국 영화계에 여성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는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이날 받았던 어떤 질문보다 김윤진은 길고 자세한 답변을 내놨다. 15년 째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어, 선배인 스스로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고.

    "제가 30대였을 때는 여성 배우들이 할 영화가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에 후배들을 만나면 시나리오가 너무 없대요. 속상하죠. 저희 세대 여배우들이 좀 더 열심히 했어야 됐나 싶기도 하고요. 정말 여성 배우 스크린쿼터제를 만들거나 제작사 영화 10편 중 1편은 여성 중심 영화로 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도 해요."

    제작자들한테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여성 중심 영화가 워낙 적기도 하지만, 나와서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드물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윤진은 그럴수록 꾸준히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감독님들도 여자 영화가 너무 없다고 그러세요. 그러면 제가 좀 바꿔달라고 하죠. 그런데 안 바뀌어요.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쉬운 선택을 하게 되니까요. 꾸준하게 여자 중심 영화를 재밌게 만들면 분명히 선택 받을 수 있다고 봐요. 사실 조금씩 변화는 일어나고 있어요. 체감되지 않아서 문제인거고, 제작이 덜 되다 보니 5편 중에 2편만 잘 되어도 괜찮은 비율인데 3편 실패가 더 눈에 띄는 악순환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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