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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뀐 창극 ‘흥보씨’…흥보가 기가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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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바뀐 창극 ‘흥보씨’…흥보가 기가 막혀

    [노컷 리뷰] 창극 ‘흥보씨’

    스타연출가 고선웅은 또 고전을 택했다. 연속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가 근래 연출했던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나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도 고전 ‘조씨고아’와 ‘변강쇠타령’이 모티브였다.

    고선웅은 고전을 고전 ‘그대로’ 전하지 않는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고, 자기만의 생각을 넣고 과감히 고쳐 쓴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나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서도 그랬지만, 각색의 귀재라는 그의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창극 ‘흥보씨’ 내용을 보면 원작의 흥보가 기가 막힐 정도이다. 과감해도 이리 과감히 고쳐도 되려나 싶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흥보와 놀보. (사진=국립극장 제공)

     

    먼저 놀보가 흥보를 내쫓는 이유는 둘이 같은 핏줄이 아니어서이다. 자식이 없어 근심하던 연생원이 우연히 길에 버려진 아이를 하나 발견하고 양자로 삼는데, 그가 흥보다. 집안을 '흥'하게 하라고..

    연생원의 부인은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건달과 바람을 피워 득남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를 못 갖던 연생원은 '놀'랍다고 해서 놀보라 짓는다. 흥보가 한 살 위 형이고, 놀보가 동생이다.

    장자권을 놀보에게 넘기는 흥보. (사진=국립극장 제공)

     

    이 정도도 놀라운데, 나중에 흥보가 장자권을 놀보에게 넘긴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출생비화에,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마냥 장자권을 팔다니.

    그뿐만이 아니다. 장자권을 넘긴 흥보는 엄동설한에 길바닥으로 쫓겨난다. 거기서 생면부지에 거지들을 하나씩 구제하는데, 흥보의 심성에 감복한 거지들이 자식이 되기로 결심한다. 원작에서 다산 왕이었던 흥보를, 각색에서는 입양 왕으로 만들었다.

    흥보는 길에 있는 거지들을 자식으로 맞이하고, 그로 인해 부부의 연까지 맺는다. (사진=국립극장 제공)

     

    여기에 별에서 온 외계인 스님과 말하는 호랑이가 등장하고, 박씨를 물어다 줄 제비는 강남 제비가 된다. 이렇게 복잡한데, 흥보는 나중에 득도까지 한다. 이쯤되면 이게 흥보 이야기는 맞는 것 같은데, 대체 뭘 말하려 하나 싶다.

    그런데 묘하게도 비틀 대로 비틀어버린 흥보 이야기는 재미가 있다. 황당한 점은 있지만 고선웅의 생각에 공감이 되기도 한다.

    별에서 온 외계인 스님을 만난 흥보. (사진=국립극장 제공)

     

    (사실 따지고 보면 놀보도 100%는 아니지만) 연씨 집안 사람이 아니기에 쫓겨나는 흥보, 태어날 때부터 천성적으로 착한 게 아니라 깨달음 통해 ‘텅텅’ 비우고 선하게 사는 흥보의 이야기는 개연성이 없지 않다.

    착하게 살았더니 좋은 일이 생긴다가 아니라, 착함이 체화돼 삶의 깨달을음 얻는 것이 핵심이다. 고 연출은 “선행은 베푸는 게 핵심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며 "선행 자체가 내게 복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이 고선웅 식 ‘권선징악’이고,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도식을 과감히 비트는 이유는 지금 시대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고선웅의 말대로 라면, 나쁜 일을 하는 게 뻔히 보이는 사람인데 그는 떵떵거리며 잘 살고, 심지어 그 자식까지 금수저로 태어나 계속 나쁜 일을 하며 떵떵거린 채 살아간다. 반면 좋은 일을 한 사람은 힘겹게 사는데, 그 이유로 자식마저 흙수저가 되어 힘겹게 산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친일파와 그 후손,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이 떠올랐다. 이러니 고전의 권선징악이 현대인에게 동감이 되겠는가.

    그래소 고선웅은 자기만의 권선징악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야기를 비틀어댄다. 원작의 흥보는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면서 박씨를 얻고, 박을 갈라 금은보화를 얻는다. 하지만 흥보씨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

    다만 선함을 통해 득도의 경지에 오른 흥보는 후에 형의 권한을 되찾는다. 흥보의 선한 행위가 거지들과 이웃사람들을 감복시키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선과 악의 대결은 없고, 선함 자체가 흥보를 이롭게 한 것뿐이다.

    고선웅 식 권선징악이 관객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생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대적인 각색을 통해 권선징악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요즘처럼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에는 말이다. ~1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R석 5만 원, S석 3만 5000원, A석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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