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자료사진)
우리 정당사에서 경선은 아킬레스 건이었다. 일부 후보는 경선에 불복하거나 패색이 짙어지면 중도하차해 경선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해 왔다.
2012년 대선 때만 해도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이 일종의 경선이라고 할 수 있는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를 이뤘지만 이후 안 후보 본인의 입장과는 별개로 일반인들이 보기에 그리 흔쾌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당 경선에서 진 손학규 전 대표와 박주선 국회 부의장의 깨끗한 승복과 안철수 후보 지지는 우리 정치문화를 한 단계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국민의당보다 더 많은 국민적 관심과 참여 속에 치열하게 맞붙었던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끝난지 일주일이 지나면서 문재인 후보에 패배한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쿨'한 행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따스하다.
두 달 넘게 진행됐던 민주당 경선에서 문 후보와 안 지사, 이 시장은 적폐청산과 통합의 리더십, 기본소득 등의 이슈를 놓고 '패권주의', '적폐연대', '공짜밥' 등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언어로 경쟁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현재는 민주당 지붕 아래 모여 서로를 다독이며 힘을 모으고 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촉발된 국정농단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러지는 대선이지만 최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문 후보 턱밑까지 추격하면서 위기감도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가장 적극적인 패자(敗者)는 안희정 지사다.
안 지사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패자로서 승복 의무를 다하려 노력했다. 승자의 오만, 패자의 저주가 반복되어 온 우리 정치사에서 오만과 독식, 불복과 저주의 문화를 극복하는 일이 패배 후 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또 "앞으로도 승복과 단결의 새로운 정치문화를 위해 저는 민주주의자로서 최선을 다 할 것"이라며 "이제 (지지자) 여러분들과 우리의 용감하고 아름다웠던 도전을 회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지해준 사람들을 위로하는 성격의 글이었지만 자신의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이제 다음을 위해 하나로 힘을 모으자는 메시지를 오롯이 담았다.
안 지사는 지난 6일과 7일 문재인 후보와 충남에서 1박2일 일정을 함께 하면서 "(지자체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는 입장에서 힘을 적극 모아드리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하지만 정당주의자로 경선 결과가 나오면 모두 승복하고 당의 이름으로 힘을 모으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자료사진/윤창원 기자)
이재명 시장은 더욱 선명한 메시지로 문 후보의 본선 승전을 기원했다.
지난 7일 문 후보를 만난 이 시장은 "경선이 가끔 경쟁이 아니라 전쟁으로 비화해 심한 상처도 남기는 데 이번 민주당 경선은 정말 아름다웠다"며 "앞으로 정책이든, 사람이든, 인물이든, 지지자든 하나로 모으는 시너지를 가지는 경선이 돼야 한다. 거기에 제 역할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공직선거법상 지지선언을 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경선', '지지자를 모으는 과정' 등을 언급하며 문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려 한 셈이다.
이 시장은 또 "(문 후보님이) 우리 집안 큰형님 같으시다.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 삶이 좀 바뀌는 진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를 잘 충족할 것"이라며 "민주당원으로서 법률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특히 "우리의 주장이나 우리를 지지했던 분들, 우리가 하고자 했던 정책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캠프에서 정책으로 수렴돼 문 후보께서 잘 이행해주실 것으로 믿는다"며 최근 안철수 후보쪽으로 이탈되는 지지층을 겨냥한 발언도 내놨다.
두 사람 모두 경선 과정에서는 "질겁하게 만든다" "재정추계가 빠진 헛탕 공약"이라며 날을 세웠지만 "민주당으로 힘을 모으자"며 '대인배' 행보를 이어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호프집에서 경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오른쪽), 이재명 성남시장(왼쪽 두 번째), 최성 고양시장(왼쪽)과 '호프 타임'을 갖고 화합 의지를 다졌다. (사진=이한형 기자)
문 후보와 안 지사, 이 시장, 최성 고양시장은 지난 8일 서울 합정동의 한 호프집에 모여 함께 '통합주'를 마시는 등 경선의 앙금을 말끔히 씻어내는 모습도 연출했다.
안 지사와 이 시장이 선거법에 위배되지 않은 선에서 힘을 실어주면서 문 후보 입장에서는 대선을 29일 앞두고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셈이 됐다.
비록 본선 최종후보로 선출되지는 못했지만 안 지사는 대연정과 통합의 리더십 등 경선에서 보여준 정당정치인이자 민주주의자의 면모를 차기 대선 등에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시장 역시 0.3%p 차이로 아쉽게 안 지사에게 밀려 경선 3위를 차지했지만, 탄핵국면에서 보여준 선명성과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한 복지정책 등으로 당장 유력한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등 대승적 정치인 이미지를 확보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