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정책을 세우고 방송·통신사업자들을 규제하는 등 폭넓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제공)
TV조선은 스스로 지키겠다고 밝힌 콘텐츠 투자 실적이 현저히 낮은 데다가, 일상적인 막말·편파방송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가장 많은 제재를 받았다. TV조선은 재승인 합격선인 650점(1000점 만점)에 들지 못했음에도 '개선 의지'와 '시청권 우선'이라는 이유로 조건부 재승인을 따냈다. 이미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 확인된 후에도, '잘하겠다는 선의'를 믿고 정해져 있는 기준을 사실상 무력화한 것이다. 이같은 결정을 내린 곳은 바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다.
방통위는 방송·통신정책을 수립하고 방송통신사업자가 금지행위를 했을 경우 규제를 하는 등 많은 권한을 가지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정작 시청자와 이용자 입장에서는 방통위가 왜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앞서 예로 든 TV조선 재승인 건이 대표적이다.
"방송, 통신, 정보 융합의 새로운 성장 엔진을 활용해 국민에게 다양한 첨단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는 본래 취지가 잘 살아날 수 있는 기구는 없을까.
정의당 추혜선 의원·언론개혁시민연대·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매체비평우리스스로는 10일 오후 2시,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청자·이용자 중심의 방송통신정책 및 기구개편'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 시청자·이용자가 중심이 된 '방송통신이용자위원회'언론시민단체들은 '시청자 복지'와 '이용자 권익'을 우선시한 '방송통신이용자위원회'라는 새로운 기구를 제안했다.
'시청자 관점에서 본 방송 정책 및 거버넌스 기구'를 발제한 한국여성민우회 강혜란 공동대표는 △공공성·공익성에 대한 고민 결여 △정치적 줄세우기 노골화 △종편·통신사업자의 이해관계에 우선을 둔 편파적 미디어정책 △미디어 환경 변화·새로운 위험에 대한 적극적 개선 노력 부재 등을 이유로 박근혜 정부의 미디어정책을 혹평했다.
강 대표는 "더 이상 정부주도형 거버넌스 체계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며 "촛불혁명으로 인해 시민들의 역량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대의제가 아닌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가 드러난 만큼, 시청자·이용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대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공익성과 산업성의 조화를 이루고, 시청자·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며, 콘텐츠 중심의 생태계를 만들고, 글로벌 미디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송통신이용자위원회'(가칭, 이하 이용자위원회)를 제안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언론개혁시민연대·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매체비평우리스스로는 10일 오후 2시,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청자·이용자 중심의 방송통신정책 및 기구개편'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수정 기자)
과거 방송위원회와 같은 합의제 민간기구를 지향하는 '이용자위원회'는 국회 교섭단체가 추천한 6인(여야 동수)과 정파를 아우르는 시청자·이용자협의회가 추천한 3인으로 구성된다. 이때 시청자·이용자협의회는 소비자기본법에 명시된 협의체 추천방식을 준용한다.
이용자위원회는 △공영방송을 포함한 공공서비스 획정 및 안정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동의 △공영방송 이사, 방송사 시청자위원회 및 시청자평가원 공모 추천 기능 △보편적 서비스 고도화 및 정보격차 해소 정책 △성별 연령별 지역별 미디어다양성 확대 정책 △주요 산업진흥정책에 이용자 영향평가 및 동의 권한 △방송·통신심의 대안 마련 및 다양한 자율심의 기구 지원 및 사후 모니터링 기능 △ 지역 및 공동체미디어 활성화 지원 △미디어리터러시 통합 지원 △공정이용 △수신료 산정 △이용자 영향평가를 통한 미디어 산업정책 견제 △이용자 정책연구 활성화 △시청자·이용자 피해구제 등의 역할을 맡는다.
◇ 누가 주도할 것인가, 현실성은 있는가 등 한계도 존재패널들은 시청자 참여 확대라는 방향성에는 모두 동의하면서도 '이용자위원회'가 갖는 한계를 지적했다. KBS 대외정책부 김대식 연구원은 "시청자 참여 확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어떤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누가 주도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방송위 모델은 어디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PD연합회 오기현 회장은 "(방통위 등 과거 모델이 실패한 것이) 조직구조가 문제였는지 정책 실현자가 문제였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시민참여형 위원회의 이상은 합리적이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유홍식 교수 역시 "지금까지의 기구 개편 논의에 비해 상당히 파격적"이라며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보지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어, "(방통위와) 충돌 지점이 많고 상당한 권한을 갖는 만큼 (이용자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국미디어센터협회 최성은 이사장은 "대부분의 논의가 사업자 중심, 지상파 중심으로 되었다는 점과 지역 이야기가 빠진 것,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미디어에 대한 논의가 빠진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한석현 팀장은 "지금까지 시청자들은 별 꼴을 다 본 상태다. 재송신 블랙아웃도 경험했고, ICT 강국이라고 하지만 디바이스를 편리하게 옮겨다니면서 콘텐츠를 소비하기에는 장벽들이 존재한다"며 "여전히 제도적·법적 장치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얘기만 하는 것은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결국 기본과 원칙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매체비평우리스스로 노영란 사무국장은 "누구도 안 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위 측면에서 마련했다"며 "정보격차 해소, 미디어 교육은 이제 '기본권'적인 측면에서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용자위원회가 현실성이 있느냐가 아니라 의도도 제안도 좋다면 현실화시켜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