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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인문학적 성찰…'백설 공주'와 '스펙터클'



책/학술

    동화 속 인문학적 성찰…'백설 공주'와 '스펙터클'

    신간 '동화 넘어 인문학: 미운 오리 새끼도 행복한 어른을 꿈꾼다'

     

    '동화 넘어 인문학'은 동화 속에 숨어 있는 그 ‘무언가’를 끄집어낸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힘과 무기를 전하고, 저자만의 시각에서 동화를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전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소설가이자 동화 작가인 저자 조정현이 17편의 동화를 인문적 시선에서 낯설게 바라보고, 그 동화에 담긴 주제와 관련 있는 인문학 책 17권을 각각의 동화와 연결 지어 쉽게 풀어 낸다. 어렵다고만 생각한 인문학 책을 깊이 있게 사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성냥팔이 소녀는 죽기 직전에야 성냥갑을 열어 불을 피운다. 그리고 성냥불 속에서 맛있는 칠면조와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돌아가신 할머니를 본다. 여기에서 저자는 말한다. 소녀가 자신을 따뜻하게 덥혀 줄 성냥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고.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산업혁명이 발달하고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그 시기에, 소녀는 성냥을 팔아야만 먹고살 수 있었다. 그러니 어린 소녀가 감히 성냥을 꺼내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기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부탁한다. "우리도 죽을 것처럼 외롭고 가난한 삶을 살지라도 성냥팔이 소녀보다는 빨리 우리 안의 성냥(인문학)을 알아채자"고 말이다.

    동화와 인문학을 연결 짓는 방식을 살펴보자. 그림 형제의 『백설 공주』와 프랑스 철학자인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를 연결한 「2-2. 21세기 마녀의 거울 」을 예로 들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백설 공주는 그 미모 때문에 위험에 처한다. 그녀를 괴롭히는 마녀는 어떠한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예쁘다는 데도 성에 차지 않아서 백설 공주를 없애려고 안달이다. 왜냐하면 동화 속에서 여성은 미모 순위에 의해 행복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마녀의 거울이 미모 순위를 정해준 순간부터 쫓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백설 공주는 왕자의 키스로 위험에서 구출되고, 그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며 동화는 끝을 맺는다. 여기서 저자는 그들의 결혼 생활이 행복했을 리 없다고 주장한다. 백설 공주가 난관에 부딪힌 것도, 훗날 난관을 이겨낸 것도 오로지 ‘거울’이 정한 ‘미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백설 공주는 결혼한 후에도 ‘미모’에 집착할 수밖에 없으리라. 왜냐하면 그녀 또한 세월이 흐르면 또 다른 젊은 여인에게 그 미모를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에게 미모만이 지상 최고의 진리인 듯 말하는 사회에서 백설 공주가 과연 아름다움을 잃고도 행복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저자는 백설 공주와 마녀를 불행하게 만든 ‘거울’의 역할을 현대 사회에서 ‘텔레비전’이 대신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텔레비전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정해 주고, 시청자는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며,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를 꺼내든다. 이 책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와 소비 사회를 비판하는데,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저자는 스펙터클을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현란한 구경거리라고 쉽게 정의를 내려주어, 독자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마녀가 거울에 지배되어 불행했듯이, 스펙터클에 지배된 삶은 상대적 박탈감과 초조함 등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책 속으로

    『피로사회』는 책 제목만으로도 한국 독자의 공감을 충분히 살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당나귀를 팔러 가는 부자(父子)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니까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점점 부자의 무기력을 닮아갈 때, 이 책이 좋은 진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 저자는 우리 사회가 ‘규율 사회’에서 ‘성과 사회’로 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학창 시절 내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우리 교육은 규율에 맞춰 살며 질서를 지키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보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서울대에서 4.0이상의 학점을 받은 학생들의 공부 비법을 알아 본 결과, 대부분이 교수의 말을 토씨 하나까지 틀리지 않게 필기한다고요. 충격이었습니다. 우리의 교육 과정은 마치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입시험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게 만들죠. 그래서 질문이 많고 궁금한 것이 많은 학생들이 고득점을 얻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규제하며 좋은 대학에 들어가 고득점을 얻은 사람들은 역시 상명하복을 선호하는 기업과 조직에서 엘리트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니 이 사회가 ‘할 수 있다’의 사회로 옮겨 갔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기도 합니다.
    - 33~35쪽 (제1부/ 1. 우물쭈물해도 괜찮아 - 인문학 『피로사회』)

    새 왕비의 거울은 그녀를 비추는 자성적 물건이 아니라, 그녀를 비판하는 외부인의 시선입니다. 새 왕비는 그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향유하지 못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따위는 눈곱만치도 없죠. 그녀는 거울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말해 외부인의 시선에 의해 최고라고 평가를 받을 때에만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새 왕비의 아름다움은 철저히 남의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 181~182쪽 (제2부/ 2. 21세기 마녀의 거울 - 동화 『백설 공주』)

    조정현 지음 | 을유문화사 | 330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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