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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양심수 강용주 "나는 21세기 사회에서 19세기 법률과 싸우고 있다"

사회 일반

    최연소 양심수 강용주 "나는 21세기 사회에서 19세기 법률과 싸우고 있다"

    14년간 억울한 옥살이…출소 후에도 보안관찰법으로 인권 침해받아

    - 23살에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 선고…엠네스티 선정 '최연소 비전향 양심수'
    - 3개월마다 어딜 갔는지, 뭘 했는지 경찰에 신고해야…집주인, 회사동료까지 경찰 방문
    - 또 하나의 적폐, 보안관찰법 "UN 권고 무시하는 한국정부, 위안부 사과 않는 일본과 다르지 않아"
    - 개인적인 재심청구, 유신체제 같은 '체제 정당화' 위험 있어…집단적 명예회복 받아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7년 4월 18일 (화)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강용주 원장 (前 광주 트라우마 센터장)

    ◇ 정관용> 과거에 광주의 트라우마 센터장을 맡으셨고요. 지금은 서울에서 병원을 개업해서 운영하고 있는 의사선생님 병원 원장 한 분을 초대했는데 이분이 좀 특별한 건 3개월마다 한 번씩 3개월 동안 뭘 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 이런 거 등등을 거주지 관할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랍니다. 바로 이게 보안관찰법에 따른 건데 이걸 어겼어요. 그래서 최근에 경찰에 체포됐고 곧 재판을 받게 된답니다. 이 건으로 재판을 받는 것도 벌써 몇 차례 된다고 하는데요. 도대체 어떤 사연인지. 지금은 서울의 아나파의원 강용주 원장 오늘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강용주>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정관용> 보안관찰법이 뭐죠?

    ◆ 강용주> 보안관찰법, 특정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재범의 위험성을 예방하고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해서 만든 법입니다.

    ◇ 정관용> 특정범죄라는 게 무엇입니까?

    ◆ 강용주> 국가보안법이나 형법상에서 내란, 군 형법죄에서 반란죄, 이런 법률에 3년 이상의 금고를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국보법 그다음에 형법상 내란죄, 반란죄. 그 법으로 3년 이상 받은 사람.

    ◆ 강용주> 그래서 국가보안법 위반자들뿐만이 아니고 전두환, 노태우가 반란죄, 내란죄잖아요.

    ◇ 정관용> 여기에 해당되겠죠.

    ◆ 강용주>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 정관용> 그럼 그러니까 형을 다 살고 이제 출소한 후에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 강용주> 출소한 후에 자기가 그동안에 3개월마다 누구를 만났고 누구랑 얘기를 했고 어떤 모임에 갔고 그리고 어디로 여행을 갔고 그런 내용을 시시콜콜 해야 되는데.

    ◇ 정관용> 매일처럼 누구를 만난 걸 다 써야 돼요?

    ◆ 강용주> 그렇죠. 그런데 거기 그 법률에 따르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요. 기타 관할 경찰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모든 내용을…그러니까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거죠.

    ◇ 정관용> 현재 이 보안관찰법의 대상자는 국내 몇 명이나 있습니까?

    ◆ 강용주> 아까 그 국가보안법 내란, 반란 이렇게 해서 해당이 됐던 사람들이 한 2300명 정도이고요. 그 보안관찰 대상자라고 그러고요. 그 가운데서 이렇게 신고를 하고 하는 사람들을 피처분자라고 하는데요. 처분자들은 지금 한 43~45명 정도.

    ◇ 정관용> 대상자는 2000명인데 그 처분을 직접 해야 되는 사람은 40명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러면 그 처분은 누가 내리는 거예요.

    ◆ 강용주> 그건 법무부 장관이…

    ◇ 정관용> 법무부 장관이?

    ◆ 강용주> 법무부 장관 산하에 있는 보안관찰 심의위원회에서 내리는데요. 그래서 그렇게 국민의 기본권이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법원 판결이 아닌 행정부의 명령이나 처분에 의해서 한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해서 국제사회에서 계속 비판하고 있는 거죠.

    ◇ 정관용> 법무부 산하 보안관찰심의위원회에서 대상자 중에서 이 사람은 필요하다 판단하면 그냥 그 처분을 내리고 그 처분을 받은 사람은 3개월마다 한 번씩 시시콜콜하게 경찰에 신고를 해야만 하고?

    ◆ 강용주> 그런데 그 당사자뿐만이 아니고 그 당사자의 지인들, 직장동료들 그다음에 집주인, 이런 사람들까지 경찰이 전화를 하고 밤에 찾아오고 또 불쑥 집에도 찾아오고.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병원을 하고 있는데 병원에까지 경찰이 오는 거죠. 그리고 제가 인턴, 레지던트를 밟을 때는 수련하는 병원에 있는 원무과 직원이나 간호사직원들한테까지 탐문하고 그런 식이었죠.

    강용주 원장. (사진=시사자키 제작팀)

     

    ◇ 정관용> 거슬러가 봅시다. 왜 강용주 원장은 이 보안관찰 대상이 되었습니까?

    ◆ 강용주> 저는 85년도에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 정관용>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

    ◆ 강용주> 네.

    ◇ 정관용> 어떤 사건이죠, 이건?

    ◆ 강용주> 85년도에 전두환 당시 정권에서 민주화운동이나 그 열기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학원안정법 같은 것을 만들고 노동운동도 탄압하고 이랬었는데 자기의 정치적 반대세력으로 가장 강력한 학생운동을 탄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사건이 구미유학생 사건이죠.

    ◇ 정관용> 그 당시에 여러 건 이런 무슨 조작사건 이런 것들이 있었죠. 그런데 이것도 조작된 사건이다, 이겁니까?

    ◆ 강용주> 그렇죠. 왜냐하면 저 같은 경우 제가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는데 저는 이 사건이 날 때까지 광주를 떠나본 적이 없어요. 전남대를 다니는 학생인데.

    ◇ 정관용> 전남대 의대.

    ◆ 강용주> 네, 그런 학생을 잡아다가 유학생 사건이 구미 유학생이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 와야 할 거 아닙니까? 저는 그런 적이 없는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인데 제가 학생운동 하던 것이 그게 유학 가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연계돼 있고 그 사람들의 지시를 받았다, 뭐 이렇게 만들어서 한 사건인 거죠.

    ◇ 정관용> 그럼 그 일당으로 체포돼서 재판 받고 형을 받은 사람 중에 유학생들이 있나요?

    ◆ 강용주> 그렇죠. 제 사람들 중에 제가 사건 관계자들이 많은데 제가 서열상으로 넘버4인데요. 원, 투, 스리가 미국 유학생들이죠.

    ◇ 정관용> 그 유학생들은 아는 분이세요?

    ◆ 강용주> 그중의 한 분은 제 고등학교 선배인데 고등학교에 하나의 공부 잘하는 사람이 10명씩 모임이 있어요. 그 모임 선배여서 선배가 미국 유학 갔다 오니까 같이 만나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거죠.

    ◇ 정관용> 했는데.

    ◆ 강용주> 그게 빌미가 돼서 그런 거죠. 그런데 저에게 간첩죄 씌웠던 건 뭐였냐 하면 죽음을 넘어 시대를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5.18을 다룬 황석영 씨의 책이 있잖아요. 그 책이 정식 출판되기 전에 타자본으로 운동권한테, 학생들한테 먼저 줬어요. 그 책을 제가 아는 선배가 5.18에 대해서 몰라요. 궁금해 하기에 제가 그걸 준 거거든요.

    ◇ 정관용> 그 책을 줬다, 타자본을.

    ◆ 강용주> 그게 국가기밀인 거고 군사기밀은 뭐냐 하면 공주에 가면 황토산에 31사단이 있잖아요. 그 31단이 광주에 있다는 거, 그게 군사기밀이고 2.11 총선이 되면, 선거 때가 되면 경찰들 경계들이 강화되잖아요. 그래서 오늘 오는데 전경들이 많이 있더라. 그게 군사기밀로 돼 있는 거죠.

    ◇ 정관용> 그리고 그 미국 유학생 서열상 1, 2, 3위 중에 누구 하나라도 예컨대 북한에 갔다 왔다든지 그런 게 있나요?

    ◆ 강용주> 그때 미국에서 북한 방문객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그런 자유스러운 분위기여서 그래서 한 분이 갔다 오시기는 했나 봐요. 그런데 저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거죠.

    ◇ 정관용> 그분은 모르는 사람이고?

    ◆ 강용주> 네.

    ◇ 정관용> 그런데 아무튼 미국에 유학 중인 그 학생이 북한을 다녀온 것을 가지고 하나의 간첩단 사건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주장이신 거죠?

    ◆ 강용주> 그런 거죠. 그런데 저는 유학간 적도 없고 북한 간 적도 없고.

    ◇ 정관용> 그래서 그 사건으로 모두 몇 명이나 실형을 받았어요?

    ◆ 강용주> 그때 당시 실형은 한 9명 정도 받은 것 같은데요.

    ◇ 정관용> 서열 4위가 무기징역이었으면 1, 2, 3위는 뭘 받았습니까?

    ◆ 강용주> 1, 2위는 사형을 받고 3위도 무기를 받았죠.

    ◇ 정관용> 그래서 그분들은 사형집행이 됐나요?

    ◆ 강용주> 아니죠. 다 감형되고 석방돼서 나왔죠. 저보다 더 빨리 석방됐었죠.

    ◇ 정관용> 어떻게 사형 받으신 분이 더 빨리 어떻게 석방될 수 있었어요?

    ◆ 강용주> 저는 이 사건이 조작이고 나는 잘못한 게 없다라고 계속 주장을 했죠. 그래서 저한테 전향을 하라고 요구를 해서.

    ◇ 정관용> 전향.

    ◆ 강용주> 저는 광주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한테 내가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다. 그리고 남산에서 고문당해서 자기들이 써준 대로 텔레비전에 나와서 읽고 그런 내 자신을 나는 용서할 수 없어서 나는 전향하지 못한다.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희 공범들은 다 석방을 하고 저만 혼자 계속 남겨두고 있었었죠.

    ◇ 정관용> 그러면 서열 1, 2, 3위 분들도 다 전향서를 썼나요?

    ◆ 강용주> 네.

    ◇ 정관용> 그러면 다 그냥 풀어주고?

    ◆ 강용주> 그랬죠. 98년도에 풀어주고 저는 전향 안 한다고 그래서 저만 가둬뒀던 거죠.

    ◇ 정관용> 그러면 무기징역이었는데 언제 나오셨습니까?

    ◆ 강용주> 99년 2월에 나왔습니다.

    ◇ 정관용> 99년 2월. 85년에 잡혀가셨으니까 무려 14년.

    ◆ 강용주> 네.

    ◇ 정관용> 99년 2월에는 어떻게 나오시게 됐어요?

    ◆ 강용주> 그 전에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할 때 제가 비전향 상태 저의 공범들을 다 사면, 감형을 했기 때문에 저만 안 되고 있어서.

    ◇ 정관용> 93년도죠, 그때는.

    ◆ 강용주> 그때 김영삼 대통령이 비전향된 무기에서 20년으로 감형을 했죠. 그리고 99년도에는 형 집행정지로 출소를 하게 된 거죠, 김대중 대통령 때.

    ◇ 정관용> 그때까지 끝끝내 전향서를 쓰시지는 않았고.

    정관용 앵커(좌)와 강용주 원장(우). (사진=시사자키 제작진)

     

    ◆ 강용주> 그때는 전향제도라는 게 국제사회에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거다라고 비판들을 많이 받으니까 그 전향제도를 준법서약서로 바꿨던 거죠.

    ◇ 정관용> 준법서약서.

    ◆ 강용주> 그런데 준법서약서도 똑같이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침묵의 자유 그리고 양심을 취재당하지 않을 그런 자유를 침해하는 거고 그걸 이유로 해서 사면에서, 감형에서 제외하는 건 평등권 침해다라는 게 제 주장이었던 거죠. 우리 헌법을 지켜라. 그리고 전향서에 있는 자유가 헌법의 자유다, 제 주장이었죠.

    ◇ 정관용> 전향서는 물론 준법서약서도 나는 할 수 없다?

    ◆ 강용주> 네.

    ◇ 정관용> 그래서 최연소 양심수라고 불리어지셨던 거군요?

    ◆ 강용주> 네, 엠네스트에서 최연소 장기수, 이렇게 무기징역을 받아서 사는. 저때 무기징역 받아서 23살이었으니까, 대학교 4학년. 그러지 않겠어요?

    ◇ 정관용> 그리고 더 주범으로 지목된 사람도 전향서 쓰고 나가는데 그걸 양심을 지키기 위해 거부했다. 그래서 최연소 양심수, 최연소 장기수.

    ◆ 강용주> 네.

    ◇ 정관용> 좋습니다. 그나저나 전두환 정권 때 있었던 그런 온갖 무슨 조작사건들 말이죠. 재심 청구에서 다 무죄 받고 심지어는 피해보상도 받고 이러신 분들 많잖아요.

    ◆ 강용주> 네.

    ◇ 정관용> 그건 왜 안 하셨어요?

    ◆ 강용주> 저는 그러한 생각인데요. 우리가 과거에 잘못된 나라들. 나치라든가 일본 제국주의의 우리나라 지배라든가, 아니면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이나 그런 것들, 남아프리카 아파르트 헤이트나 이런 사회들이 민주화가 되고 더 나은 사회로 됐을 때 그 권위주의적이고 폭압적인 정권에서 피해 받았던 사람들은 그 악법에 의해서 처벌받았다면 일률적으로 구제해 주는 거죠. 그게 집단사면, 집단배상의 원칙이거든요. 하다못해 우리하고 가까운 대만에도 국가보안법이 있었는데 장개석이 죽고 대만이 민주화 됐을 때 대만도 모두 다 예전의, 과거의 악법으로 처벌받았던 사람들을 다 집단적으로…

    ◇ 정관용> 집단사면, 집단배상.

    ◆ 강용주> 그런데 우리나라는 개별적인 사면을, 개별적인 구제절차를 요구를 하잖아요. 그것은 유신체제나 아니면 전두환이 광주 시민 학살하고 체제는 정당하지만 그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불법 연행했던 것만 잘못했다라고 하는 주장이나 같거든요. 저는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과거를 바로잡는 방식에 있어서 인권의 선진국이든 아니면 아르헨티나, 남아공처럼 민주화가 됐든 대부분의 나라들이 집단적인 명예회복을 시켜준다는 거죠. 저는 그걸 요구를 하는 거지.

    ◇ 정관용> 예를 들면 5.18 특별법 같은 걸 만들어서 그때의 피해자분들은 일괄적으로 구제신청 받아서 보상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하려면 그런 방식을 해야 된다?

    ◆ 강용주> 그래야 된다는 거죠.

    ◇ 정관용> 그러자면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국가보안법이 없어지고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받은 사람은 일괄적으로 구제하고 이래야 된다?

    ◆ 강용주> 그렇죠. 왜냐하면 대만 같은 경우에도 국가보안법이 있었는데 국가보안법이 대체입법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과거에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았던 사람들을 다 사면복권하고 현재 대만에는 국가보안법이 대체입법으로 있는데 이 법을 이렇게 이렇게 한다라고 돼 있는데 그 아래 이 법을 위반하면 어떻게 어떻게 한다는 처벌조항이 없어요. 저는 대만의 방식대로 얼마든지 우리 사회에서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개별적 재심청구 이런 거 안 하는 게 옳다.

    ◆ 강용주> 저는 개별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강력한 원칙론자이시군요.

    ◆ 강용주> 꼭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이번에도…

    ◇ 정관용>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99년 2월에 출소하시면서부터 바로 보안관찰 처분 대상자가 된 겁니까?

    ◆ 강용주>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3개월마다 꼬박꼬박 신고를 하셨어야 되는 거예요?

    ◆ 강용주> 저는 제가 사건 자체도 인정하지 않고 고문으로 조작되고 있고 그리고 제가 감옥 안에서 양심의 자유, 전향자에 대해서 반대하고 싸웠던 것은, 싸워서 제가 98년도에 UN에다 개인통보를 냈어요. UN에서 개인통보를 냈는데 UN 인권이사회에서 제 개인통보를 2003년도에 강용주에 대해서 전향을 요구했던 거나 준법서약서를 강요하는 것은 UN이 정한 양심의 자유,표현의 자유, 평등권을 위반하는 거다. 그래서 강용주에 대해서 명예회복을 하고 배상을 해라라는 결정을 받았거든요.

    ◇ 정관용> UN에서.

    ◆ 강용주> UN에서. 2003년도에 받았는데 대한민국 정부에서 지금 그걸 안 해 주고 있는 거죠. 그런데 똑같아요. UN인권이사회에서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성노예다.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하라라고 항상 권고를 하는데 일본 정부에서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있거든요. 그건 과거에 있어서 우리가 조약에 가입하기 전이어서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을 비판하잖아요, 그 인권에 관한 범죄로 왜 그러느냐. 그래서 똑같이 우리 정부는.

    ◇ 정관용> 안 하고 있다.

    ◆ 강용주> 안 하고 있어서 일본한테 비판하는 그 잣대를 똑같이 한국 정부에 대해서. 그래야지 우리 사회가 야만의 사회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로 갈 수 있다.

    ◇ 정관용> 애초에 잘못한 것이 없고 조작되었고 UN마저도 나를 인정했는데 내가 왜 경찰에 3개월마다 신고하느냐. 일절 안 하신 거예요? 99년 출소하신 이후에?

    ◆ 강용주> 저는 할 수 없다.

    ◇ 정관용> 그런데 이 그런데 이 건으로 재판받으신 게, 즉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재판받으신 게 2002년하고 2010년 두 번이 있네요.

    ◆ 강용주> 재판은 신고의무 불이행한 건 2001년도에 재판하고 2002년도에 판결이 났는데요. 그때는 벌금 50만 원으로 했어요. 그때 재판부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이것은 양심의 자유에 관한 것에서 이것은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행법률이 있으니까 그래서 타협적으로 벌금을 내리겠다. 50만 원으로 했던 거죠.

    ◇ 정관용> 2010년도에는요?

    ◆ 강용주> 2010년도에는 검찰에서 약식기소를 해서 벌금 150만 원을 했던 겁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99년 이후 3개월마다 신고할 의무를 한 번도 안 지키셨는데 왜 2001년하고 2010년에만 문제를 삼았느냐 이거죠.

    ◆ 강용주> 그것은 이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자의적인 거죠.

    ◇ 정관용> 그냥 자기 판단으로?

    ◆ 강용주> 제가 99년도에 출소해서 99년 8월에 의과대학에 의예과 2학년으로 복학을 해서 제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요. 의과대학생인데. 의대 공부 많잖아요. 그때 시험기간이 시작돼서 아침에 공부하러 가는데 그때도 공부하러 가는 학생을 새벽 7시에 버스정류장에서 잡아갔거든요. 이번에도 제가 포천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환자 진료하고 있는 오후 2시에 체포해서 갔어요. 병원에 있고 의대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그렇게 관리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그냥 권력이 괘씸하고 꼴보기 싫으니까 너 괘씸죄, 싸가지.

    ◇ 정관용> 한번 하고 싶을 때 한다?

    ◆ 강용주> 그런 거죠.

    ◇ 정관용> 그것도 8, 9년 만에 한 번씩 이렇게?

    ◆ 강용주> 네.

    ◇ 정관용> 이 보안관찰법, 이거 위헌이다. 위헌제청 하셨는데 합헌 판결이 났더라고요.

    ◆ 강용주> 그렇죠.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UN에서 우리나라에 UN권고사항들이 있어요. UN권고사항 중의 하나가 보안관찰법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거니까 폐지하라는 게 UN에서 계속 권고하는 거죠. 그리고 뿐만 아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국가인권발전계획을 4년마다 세워요. 그 4년마다 세우는 데서 보안관찰법이 거주이전의 자유나 프라이버시 자유를 침해하는 거니까 폐지해야 된다라고 주장을 하는데 지금 헌법재판소에서는 계속 결정을,합헌 결정을 내리고 있잖아요.

    ◇ 정관용> 합헌 결정 날 때 몇 대 몇으로 났습니까, 가장 최근에.

    ◆ 강용주> 그것까지는 제가 정확히 모르겠는데 어쨌든 준법서약서 같은 경우도 예전에는 합헌 결정이 났거든요, 전향제도 같은 경우도. 그런데 그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거라고 바뀌었지 않습니까? 옛날에 유신헌법 그게 지고의 법률이라고 생각했는데 바꿔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헌법재판소가…

    ◇ 정관용> 알겠습니다. 보안관찰법 대상자는 2000명이지만 실제 처분 받는 사람은 고작 43명 정도인데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 법도 없앨 때가 되지 않았느냐.

    ◆ 강용주> 그렇죠.

    ◇ 정관용> 계속 싸우고 계신 거군요.

    ◆ 강용주> 이게 적폐죠. 21세기 사회에서 19세기 법률과 싸운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예요.

    ◇ 정관용> 그나저나 내란, 반란죄로 처벌받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사면복권이 다 됐습니다마는 그 이전에 보안관찰 대상으로 3개월마다 신고했답니까?

    ◆ 강용주> 안 했죠. 저도 사면복권 됐어요. 사면복권 됐는데 제가 그랬었죠. 2001년도 재판을 할 때. 법이라고 하는 것은 공평성이 있어야 된다. 그래서 미국 대법원청문에 이퀄 저스티스 온 더 로우라고 써져 있지 않냐. 그런데 왜 전두환, 노태우한테는 신고의무를 부과하지 않으면서, 반란죄인데. 왜 나한테는 부과하는 거냐. 이건 아니다. 더더군다나…

    ◇ 정관용> 똑같이 사면복권됐는데.

    ◆ 강용주> 지금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5.18은 북한에 의해서 된 거라고 그러고 자기는 아무 죄가 없다고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 특수부대가 와서 했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재범의 우려가 높은 사람은 전두환이지 저는 아니잖아요. 그 사람을 보안관찰을 해야지 왜 저를 하는 거예요?

    ◇ 정관용> 그래요. 방송 들으시는 분 가운데 아직도 보안관찰법, 보안관찰처분 옛날에 들어는 봤는데 지금도 있구나 아마 이러시는 분들 많을 것 같은데요. 강용주 원장의 이 외로운 싸움이 참 좋은 결과 맺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 강용주> 그렇습니다.

    ◇ 정관용>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강용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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