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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낙인찍는 건축물, 차고 넘친다"



문화 일반

    "차별 낙인찍는 건축물, 차고 넘친다"

    [노컷 인터뷰] 건축가 양용기 "장애인 위한 것이 곧 우리 모두를 위한 것"

    한 장애인이 전동 휠체어에 탄 채, 권위적인 건축물의 전형으로 지목되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2015년 11월 3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중증장애인·활동보조인 활동지원제도 예산 확대를 촉구하는 자리에서다. (사진=황진환 기자)

     

    건축물과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평등' 사이에는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을까.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정작 장애인 당사자들은 이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불러야 한다"고 줄기차게 외쳐 온 한국 사회를 겪으면서 드는 물음이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 불리는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있다. 건물의 자동문, 사용자의 신체 조건에 맞게끔 높낮이를 바꿀 수 있는 책상과 의자, 불을 끄지 않은 채 냄비를 들면 경고음이 울리는 가스레인지, 물 등을 손쉽게 넣고 뺄 수 있도록 작은 문을 단 냉장고, 자동차의 파워핸들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러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기본 취지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변질됐다고, 건축가 양용기(안산대 건축디자인학과) 교수는 지적했다. 마치 몸이 불편한 장애인만을 위한 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는 의미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대하는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들조차 이를 마치 장애인에게 내리는 시혜처럼 여기고 있어요. 사실 장애인에게 편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편한 것입니다. 그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의 취지예요.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TV를 켜려고 이동하는 것이 불편해 리모콘을 사용한다고 칩시다.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리모콘으로 편하게 TV를 보잖아요. 핸드폰 진동 기능 역시 청각장애인뿐 아니라 일상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합니다."

    그간 저서 등을 통해 인문학적 가치를 반영한 건축물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 온 양용기 교수는, 18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장애인용 물건이라며 색깔 등으로 따로 표시해 구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 가치인 평등을 해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행위"라고 비판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몰이해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가 양용기 안산대 건축디자인학과 교수(사진=양 교수 제공)

     

    "유니버설 디자인을 다르게 말하면 '스마트 디자인'이에요. 과거에 우리가 휴대폰이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다양한 기능을 추가해 스마트폰이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유니버설 디자인 역시 특정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연령 또는 세대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즉, 어떤 사물이 하나의 기능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키는 보편적 기능을 갖는 것에 목적이 있는 거죠."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는 데 보탬을 주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10여 년 전부터 몇몇 지자체를 중심으로 도입되면서 각광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관심도와 확장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 후퇴한 민주주의만큼이나, 평등의 가치에 뿌리를 둔 유니버설 디자인도 퇴보를 거듭한 셈이다. 양 교수는 "건축에서도 유니버설 디자인은 형식적인 도입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인이라는 특정 계층을 위해 도입한다는 인식이 크죠. 이것이 사회 전분야에 걸친 지속적인 확장을 만들어내지 못한 원인으로 작용했어요. 아직 일반화되지 못한 탓에 가격이 높아 상품 개발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이러한 제품의 개발이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죠. 우리 주변을 보면, 여전히 안내 표지판의 위치나 표시의 난해함, 건물 입구의 자동문 설치, 계단 대신 만들어진 램프의 경사도 등도 규격화되지 않아 불편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는 "재차 강조하지만,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시설은 장애인이나 어린이, 노약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편리하다"며 "하지만 이에 대한 인식과 모든 시스템은 아직 다양한 세대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조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약자이거나, 그러한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휠체어를 위한 화장실의 회전공간은 최소 1.5미터를 넘어야 하는데 형식적으로 만들어졌어요. 램프 역시 경사가 너무 가파릅니다. 세탁기 등 가전기기의 조작 버튼 위치도 너무 뒤에, 혹은 위에 있어 휠체어 사용자에게 불편해요. 문고리의 경우 '알' 형태를 사용하는 건물이 여전히 많아 화재시 어린이 등이 열기 힘든 상황입니다. 특히 거리의 인도는 많은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죠."

    ◇ 유니버설 디자인, 평등 먹고 자라는 민주주의 열매

    유니버설 디자인 사례(사진=양용기 교수 제공)

     

    양 교수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모든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한다는 점에서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 뿌리내린 개념"이라고 역설했다.

    "과거 권위적인 시대에는 기득권층이 차지하고 남긴 부스러기를 다수의 기층민이 사용했잖아요. 이제는 모든 것이 모두에게 열린 시대가 됐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스템을 건축에 적용할 때 약자에 대한 배려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용이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가려는 인식 전환이 요구됩니다."

    그는 "시대의 성격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익숙함에 바탕을 두기 마련인데, 과거가 감성적인 시대였다면 지금은 이성적인 시대"라며 말을 이었다.

    "과거에는 공동체 안에서 습관에만 의존해도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은 많은 것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대처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IT의 발달은 사람에 의지하던 시대에서 시스템에 의지해야 하는 시대를 낳았어요. 이로 인해 사회적 약자의 범위는 신체적인 상황뿐 아니라 지식과 정보로까지 광범위하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보다 폭넓은 사회적 안정성과 보편성이 요구되는 이유죠."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는 데 보탬을 주는 건축은 어떠한 모습를 띠고 있을까. 양 교수는 설명에 앞서 먼저 건축의 역사를 소개했다.

    "고대에는 주로 왕이나 귀족처럼 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권위적인 건축물이 주를 이뤘어요. 기독교가 위세를 떨친 서양의 중세에는 교회가 그랬죠. 권위적인 건축물의 전형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문화에 바탕을 뒀어요. 이집트 피라미드, 그리스의 삼각지붕과 원통형 기둥을 한 신전, 로마의 아치나 돔이 대표적입니다. 지금도 보면, 경제 권력이 모여드는 은행 건물은 권위적인 고대 그리스의 건축 형태를 많이 차용하고 있잖아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2015년 9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 시외 이동권 보장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속버스 탑승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그는 "장식은 범죄다"라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건축가 아돌프 로스(1870~1933)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여기서 '장식'은 없어도 상관없는 것, 떼어 내도 안전에 문제 없는 것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근대 들어 시민혁명을 통해 수직적인 신분제가 완화되면서 권위적인 건축물도 많이 사라집니다. 왕이나 귀족은 자신들의 권위를 폼내기 위해 건축물에서도 장식을 많이 활용했어요. 결국 장식을 떼어 냈다는 것은 실용적인, 민주적인 건축물이라는 말과도 상통하는 셈이죠. 그래서 근대 이후 민중이 주도한 건축물은 장식을 제거하고 기능을 강조하고 있어요. 아돌프 로스가 처음 선보인 것이 연립주택, 아파트라는 점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의사당이나 대법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여전히 거대하고 권위적인 건축물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이 양 교수의 지적이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기관의 건축물조차 권위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예전에 이런 뉴스를 봤어요. 어떤 학교에 장애인이 들어오는데, 학교 측에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냐, 마냐를 두고 고민했고 결국 설치하기로 했다고요. 이런 일이 뉴스가 된다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거잖아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데 미숙하고, 그럴 의지도 약하다는 거겠죠. 만약 우리 사회에 민주적인 평등 의식이 일상에까지 뿌리내렸다면 이런 뉴스를 보지 않게 되겠죠."

    헌법 위에 군림하려 했던 반민주적 대통령 박근혜를, 민주적 절차로 끌어내리고 치러지는 대선이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평등에 입각한 유니버설 디자인을 이해하는 민주적인 지도자 선별법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양 교수는 "결국 건축은 사람을 위한 행위"라며 말을 이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최소'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최다'의 기준을 적용시키는 디자인이에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특별한 계층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전체 생애주기까지 고려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말이죠. 결국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과거 모습을 보라.' 사람의 가치관과 생활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 후보가 언행일치, 미래지향적인 안목을 갖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러한 후보가 건축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평등의 가치에 바탕을 둔 큰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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