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180억 원의 주식을 기부해 만든 장학재단에 140억 원의 세금을 부과한 처분을 두고, 선의를 배제한 채 회사 지배 수단으로 낙인부터 찍는 건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부자가 재단 설립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기부 이후 재단을 통해 회사를 실제로 지배할 수 있는지부터 가려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0일 구원장학재단이 수원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를 창업한 황필상(70) 씨는 지난 2003년 2월까지 수원교차로 주식 90% 등을 기부해 180억 원 규모의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수원세무서는 그러나 발행주식의 5%를 넘게받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140억 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이번 사건은 이른바 '선의의 기부에 세금폭탄' 사건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의하면, 출연자가 공익재단에 기부하는 것은 증여세 비과세대상이지만 5%를 초과하는 주식을 출연하면 과세가 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출연자 등이 주식을 발행한 회사의 최대주주가 아니면 과세되지 않는다.
재판에서는 황씨 등이 수원교차로의 최대주주인지 아닌지가 쟁점이 됐다.
먼저 최대주주 판단 시점을 두고, 대법원은 황씨 등이 주식을 출연하기 전 보유하던 주식이 아니라 주식을 출연한 결과 황 씨에게 남은 주식과 특수관계로 묶인 재단의 주식을 합해 수원교차로의 최대주주가 됐는지로 봤다.
재단에 기부해 최대주주 지위를 잃게 됐다면, 황 씨 등이 더 이상 재단을 수원교차로에 대한 지배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어 출연만 하더라도 특수관계인으로 묶인 재단의 보유주식까지 포함해 최대주주로 판단하면 안되고, 출연자가 재단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특수관계인으로 묶을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황 씨가 정관 작성이나 이사 선임 등 재단 설립 과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재단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아무런 방법이 없는 황 씨와 재단을 특수관계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원심이 황 씨 등이 재단 설립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더 자세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재판관 9대 3 의견으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단순히 과거에 최대주주였다는 사정만으로 선의를 배제하고 회사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고 낙인찍는 것은 합헌적 해석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며 "주식 기부 이후 기부자가 공익재단을 통해 현실적으로 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지를 가려야 한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